배우, 영화감독, 작가. 차인표를 소개하는 직업은 3개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 무작정 귀국해 199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듬해 드라마「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전 국민에게 ‘차인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상대역이었던 신애라 배우와 백년가약을 맺는 겹경사를 맞았다. 독실한 크리스천 부부는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며 대표적인 연예인 잉꼬부부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다룬 첫 장편 소설 『잘가요, 언덕』을 내며 소설가가 됐고, 이 책의 개정판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 지난해 옥스퍼드대 아시아·중동학부의 한국학 전공 필수 교재로 채택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았다. 2019년에는 직접 다큐멘터리를 연출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2월 7일 대학본부 열린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발전후원회 신년회 및 이취임식’ 2부「소설『그들의 하루』작가 차인표가 말하는‘우리에게 하루 동안 생기는 일들’」강연에서 차인표 작가는 대중연예인에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로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해 온 읽기, 쓰기, 운동하기 3가지 습관을 꼽았다. 그의 습관은 방송대 학우들이 학습 근육을 만드는 데도 유용해 보인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배우로 출발해 영화감독을 거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차인표 작가가 2월 7일 방송대 열린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방송대와 인연이 있다고요.
어머니가 1980년대에 이혼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삼형제가 학업을 마칠 수 있게 경제적 지원은 해주셨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아이 셋 딸린 이혼녀가 살아가기는 녹록치 않았습니다. 미국행을 결심한 어머니께서 비행기를 타기 전 방송대에 입학해 영어를 공부하셨어요. 비록 졸업은 못하셨지만요. 저 역시 작가의 꿈을 꿀 때,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나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끝까지 마칠 수 없을 것 같아 등록하진 못했지만요.
방송대는 작가님 말씀대로 하루를 쪼개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강연하면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눈을 크게 뜨며) ‘포스’가 딱 느껴졌습니다! 무대와 객석은 마주보는데요, 한 분 한 분의 표정이나 반응들이 바로 느껴지더라고요. 연배들이 있으셔서 제가 경험한 부분들을 이야기했을 때 바로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다는 걸 보는 순간 알겠더라고요. 시쳇말로 ‘내공’이 있다고 할까요?(웃음) 지금 인터뷰를 해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평소에 저는 정말 방송대인의 학구열을 굉장히 높이 사요. 공부에 대한 열의가 얼마나 크면 지금 연세에, 또 다른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려고 방송대에 왔는가 하는 점에서요. 실제로 노력하고 실천하는 분들이잖아요.

배우로 출발해 영화감독을 거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차인표 작가가 2월 7일 방송대 열린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최근 네 번째 장편소설 『그들의 하루』를 출간하셨습니다. 작가님에게 ‘하루’는 어떤 의미인가요?
하루의 개념을 재정의해보면 고정관념에 빠지지 않고 살 수 있는 공부가 될 거 같아요. 하루가 가진 특징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한 번에 한 개씩만 주어지며, 끝까지 오늘을 산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거죠. 그렇다면 살아있는 동안은 연속적으로 하루가 주어지는 겁니다. 그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1년이 되며, 삶 전체가 되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루를 시간 개념으로 보는 데 익숙해서 그런 거 같아요. 시간의 흐름으로 본다는 건, 태양이 중심이 되는 거죠. 나를 중심에 놓고 태양을 보면 어떨까요? 하루를 채운 내 생각과 행동이 결과로 나타나 나날이 축적되는 결과의 장이 됩니다. 그러면 하루는 강물처럼 흘러가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산처럼 쌓이는 겁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저는 약 2만1천 번의 하루를 경험했어요. 현시점에서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면, 하루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삶은 너무 크고, 복잡해서 한 번에 안 바뀌죠. 그런데 누구나 하루는 바꿀 수 있어요. 하루를 바꿀 수 있다면, 삶 전체도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게 제가 내린 하루에 대한 정의입니다.
작가님이 하루에 반복적으로 하는 일들은 무엇인가요?
아침에 40분 정도 아내와 밥을 같이 먹어요. 아내가 주로 이야기하고요.(웃음) 그 시간이 제게는 굉장히 소중한 시간입니다. 건강한 음식들 먹으라고 주고요, 일상, 삶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오전 8시가 되면 어머니께 전화드려요. 밤새 편히 주무셨는지 여쭈죠. 저녁 8시에도 오늘 하루 잘 보내셨는지 전화를 드려요.
통화를 마치면 제가 강연에서 말씀드렸던 루틴을 합니다. 일기를 쓰고 큐티(QT,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행위)를 20분 하고요, 라틴어 공부 20분, 영어 공부 20분을 합니다. 그리고 독서를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날그날 스케줄에 따라 하루를 보냅니다. 저녁은 심플해요. 5시 이후에는 늘 집에 있으려고 합니다. 운동도 하면서요. 약속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 방송대에 온 것이 2025년에 첫 저녁 외출이네요.
저와 가족에게 방송대는
학문을 가르쳐주는
가장 친절한 형 같은 존재
하루하루 온전히 살아내며
독자 위로하는 글 쓰고파
좋은 습관을 만드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좋은 질문을 하셨는데, ‘좋은 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결국 어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어떤 식으로든 발아가 돼야 행동이 바뀌고, 그 행동이 반복되면서 혁신을 낳는 거죠.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대신 저는 ‘가능한 습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아요. 작은 성공을 계속 경험해야 합니다. 제가 올해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박사가 된다거나, 매일 5시간 공부하기는 실현 불가능하죠. 그런데 아침밥 먹고 20분만 하는 건 현실적으로 누구에게든 실현 가능해요. 출퇴근길에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습관을 ‘다운사이징’해서 구체적인 목표를 만드는 게 필요한 거죠.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들에서 작은 성공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정말 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요(웃음)
그럴 때가 있죠. 제일 도움이 되는 건 나를 지켜봐 주는 한 사람,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좋아요. 배우자든 친구든 부모님이든요. ‘내가 널 지켜볼게’, ‘해낼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봐요. 대부분 그런 사람이 없어요. 어른이 되면 그런 말을 하기도 싫어하고요. “올해 네 목표는 뭐니? 새로운 거 뭘 하고 싶니?”라며 질문해주고 관심가져주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올해 매출 얼마야?”라는 건 내가 안 물어봐도 되는 거잖아요.(웃음) 다행히 저는 많아요. 어머니도 있고, 배우자, 자식과도 그런 관계입니다.

배우로 출발해 영화감독을 거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차인표 작가가 2월 7일 방송대 열린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요즘에는 어떤 책 보고 계세요?
제가 유일하게 과소비하는 분야가 바로 책입니다.(웃음) 한 달에 10권에서 많으면 20권까지 사요. 책을 사긴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으려고 사는 건 아니예요. 궁금해서요. 어떨 때는 전문서적도 사요. 예를 들면 키에크케고르가 쓴 『공포와 전율』은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책인데요. 왜 샀냐면 얼마나 난해한지 궁금해서요.(웃음) 몇 페이지라도 읽어보려고 산 거죠.
그러니까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한 번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저를 가슴 설레게 하는 것 같아요. 헤겔의 『종교현상학』도 그래요.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한데, 그렇다고 자랑하려고 사는 건 절대 아닙니다. 좀 읽다 말죠. 『서양음악의 역사』 같은 쉽고 재미있는 책도 읽어요. 모차르트보다 베토벤이 더 뒤에 태어났다는 거나, 하이든이 베토벤 스승이라는 사실들처럼 몰랐던 걸 알게 되면 재미있잖아요. 동시에 대여섯 권씩 읽고 있습니다. 침대 머리맡에 늘 책을 두고요.
인간 차인표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사람으로서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 때 ‘오늘 하루를 완전하게 다 살았다’라고 하는 거죠. 모든 에너지를 다 쓰며 최선을 다했다는, 그 충족감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매일 하루의 목표입니다.
작가로서의 목표를 말씀드리면, 저는 운 좋게 소설가로 알려져서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잖아요. 예전에는 독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실체가 없으니 만날 수도 없었거든요. 이제는 제 독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북토크에서 실제로 만날 수도 있고요. 이분들이 제게는 한 사람의 소중한 인격체로 다가와요. 제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지는 모르지만, 정말 이분들을 위로하는 글을 써야겠다, 그냥 치기 어린 글이 아니라 독자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배우로 데뷔해 영화감독을 거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차인표 작가가 방송대인들에게 사인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방송대인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머니께서 미국 가시기 전 학업을 이어가시겠다고 방송대에 등록하셨을 때부터, 또 제가 어머니 뒤를 이어갈까 고민했던 때까지, 저와 제 가족에게 있어서 방송대는 학문을 가르쳐주는 가장 친절한 형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못한 걸 실천에 옮기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마음 깊이 존경합니다. 2025년 여러분이 걷는 길에 행복과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