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대에 처음 발을 디딘 신·편입생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학금이다. 국가장학금을 비롯해 다양한 교내 장학금이 있지만, 동문들이 장학금을 지급하는 다양한 장학회도 있다. 충북의 청명장학회, 대전·충남의 금강장학회가 대표적이다. 인천, 대구·경북, 경남총동문회는 동문회 산하에 장학위원회를 두고 재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 서울총동문회와 울산총동문회도 장학위원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42대 서울총학생회장에 나서며 공약으로 ‘장학회 설립’을 내놓고, 임기를 마치면서 약속을 지킨 최우영 학우(생활과학부 4학년)가 눈길을 끈다. 지난 1월 18일 서울지역대학 대강당에서 진행된 학생회장 이취임식에서 ‘서명장학회(이사장 안영구)’ 출범을 선포한 것. 당시 정준영 학장은 “서명장학회는 ‘서울의 밝은 빛’이라는 이름의 장학회로 오랫동안 준비해 오다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40~42대 학생회가 주축이지만,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길 기대한다”라고 소개했다. 2월 19일 그를 만나 선후배들과 함께 장학회를 만든 사연, 졸업을 유보한 이유 등을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장학회 설립 공약을 실천한 최우영 학우(생활과학부 의류패션전공·4학년)
1년에 10명씩 장학생 선발
학과에서 모범 학우 등 선정
청년 학우들에게 우선 지원
취지 공감, 후원하는 분들 늘어
42대 서울총학생회장에 취임할 때 공약 가운데 하나가 장학회 설립이었다. 서명장학회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저는 2023년 11월 서류 마감 3일 정도를 남겨놓고 갑작스레 서울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2023년 생활과학부 학생회장 출마를 결심하고 전대 회장님들의 노하우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우연히 학생회 카페에서 전대 회장님들이 내놓은 공약들이 모두 비슷한 문구와 비슷한 내용의 공약임을 알게 됐다. 서울총학생회장 출마를 갑작스럽게 결심하고, 평범하되 정말 학우들을 위한 공약을 고민하고 찾다가 3만8천여 명이 넘는 서울지역대학에 장학회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서울지역대학에 장학회를 설립해 보라는 안영구 고문의 조언을 받아 공약으로 내놓았다. 41대 서울총학생회(회장 안영구)가 발판을 다진 학생회의 발전을 42대 학생회가 계승해 단단하게 잘 다듬고 중심이 바르게 설 수 있게 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는데, 이 연장선에서 장학회를 꼭 출범시키겠다고 결심하고 늘 방법을 모색했다.
서명장학회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장학기금 마련 방법도 궁금하다
서명장학회는 서울총학생회 40~42대 학과 학생회장님들이 이사로, 정준영 서울지역대학 학장님이 자문위원님으로 참여하는 장학회다. 서명장학회는 서울총학생회와 각 학과 학생회에서 1년에 10명씩(한 학기에 5명) 장학생을 선발해 지급할 예정이다. 대상은 선정 기준에 적합한 학우로서 학과에서 모범이 되는 학우 등이다. 특히 ‘젊은’ 청년 학우들을 우선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이분들이 꿈과 열정을 잃지 않도록 희망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장학금 수여는 2025학년 1학기부터 시작할 예정이고 시작은 1년에 10명씩 선정해 점차적으로 인원을 늘려나갈 것이다. 장학기금은 15명의 이사진이 100만 원씩 기부해서 마련했고, 서명장학회 출범 이후 이사진이 아닌 일반 학우들도 장학회에 100만 원씩 기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크고 작은 기부금을 기부하는 기부 천사 학우님들의 동참이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학교와 학생회 행사 등에 참여해 봉사활동을 펼치면서 서명장학회 홍보활동을 하고 기금도 마련할 계획이다.

서명장학회 깃발과 상징물.
사실 2월 25일 졸업해야 했는데, 졸업을 유보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졸업가운도 준비하면서 사회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43대 전국총학생회가 출범했는데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저뿐만 아니라 이민숙 42대 대전·충남총학생회장, 김희순 42대 제주총학생회장이 함께 ‘백의종군’해서 도움을 드리려고 한다. 모두 2월 25일 졸업해야 하는데, 졸업을 유보하고 1학기 등록금까지 냈다(웃음). 총학생회장 경험을 살려 학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회장’이 아닌 실무 차원의 임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50대 중반에 방송대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누군가의 권유에 의한 것인지, 아니라면…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지 못해 늘 목마름이 있었다. 1989년에 결혼했는데, 남편이 당시 방송대 경제학과 1학년이었다. 당시에 혜화동 본교 행사 때도 남편을 따라간 기억이 있고, MT도 몇 번 남편과 같이 간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남편도 학생회 활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내, 며느리, 세 아이의 엄마로 시간적인 여유 없이 살면서 세월은 흘러갔지만, 막내인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자신과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혼자 계획했던 것은 ‘60세 전에 대학을 졸업하자!’였지만, 2020학번 동기들과 함께 졸업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현재 6학년이 됐는데 또다시 ‘만 60세에 졸업하기’로 정정해야겠다. 내년에는 꼭 졸업하겠다(웃음).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또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19라는 방해꾼이 있어서 처음엔 정말 캄캄했다. 컴퓨터도 서툴고 궁금한 건 많은데 참 답답하고 막막했던 때였다. 그래서 무엇이든 둘째에게 물어보았는데 처음엔 친절하게 알려주던 딸아이가 며칠 지나니 단호하게 ‘이제부터 엄마가 알아서 해보세요’! 하면서 한 번 이상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곤 결혼해서 출가했다. 그때부터 눈이 벌겋게 날을 샌 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할 일이 밀리면 자다가도 잠이 깨고 그럴 때마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덕분에 실력은 빠르게 늘었고 과제 하나 작성하고 나면 뿌듯한 마음에 힘든 줄 몰랐다. 우리 집은 1남 2녀로 첫째와 둘째는 결혼해서 출가했고 현재 남편과 아들 그리고 반려견이 있는데 언제부터인지 주부가 남편으로 바뀌었다. 저는 늘 바쁜 사람으로 은따(은근 왕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과 딸, 사위가 제 이·취임식에 다녀간 후 ‘멋진 엄마 멋진 아내’로 위상이 변했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뒤에서 학부모 역할을 해준 남편과 그런 아빠가 외로울까봐 늘 챙겨준 아이들 덕분이다.
학우님에게 방송대는 어떤 곳으로 남을 것 같은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방송대는 나를 성장시킨 대학!’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라는 건 외형적인 게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다. 5년 동안 학생회 활동하면서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귀를 많이 열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시야가 넓어진 만큼 생각과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말투, 행동,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의 깊이가 달라졌고 어른이지만 아이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방송대를 통해 내면이 넓어졌고, 넓어진 만큼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와 학생회, 그리고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학우들과 학교는 서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소통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학우들이 학교에 의견을 올리고 소통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보면 민원이나 신문고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는 경직된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보다는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대화의 창구’에서 서로 만나 서로 배려하면서 소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 역시 50대 중반에 공부를 시작했지만, 자신을 위해 가정과 일, 학업에 최선을 다하고 계신 학우님들이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잃지 말고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 늘 함께 도전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