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가 아니라 ‘21세기 봉건주의’ 시대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 자본주의가 변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자본주의를 변하게 했는가? 그건 기술의 발달이다. 다시 말해서 빅테크(Big Tech)가 기존의 자본주의를 봉건주의 시대로 변모시키고 있다. 21세기 봉건주의는 우리를 클라우드 영지의 농노로 본다. 클라우드 영지의 영주는 바로 빅테크 기업이다.
이 주장의 주인공은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다. 그는 2015년 1월부터 7월까지 그리스 재무장관을 역임할 때 유럽연합과 부채협상을 했었다. 그의 부모가 1946년 카이로에서 그리스 아테네로 이주했기 때문에 1961년생인 야니스는 이집트계 그리스인인 셈이다. 경제학을 전공해 호주 시드니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아테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소수의 빅테크 기업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경제적 이익을 독점해 과거 봉건 사회의 영주처럼 권력을 휘두르고 우리를 그들의 자발적 농노로 만들고 있는 현상을 가리켜 그는 ‘기술봉건주의(technofeudalism)’라고 부른다. 〈뉴욕타임스〉 등 언론과 학자들은 이를 ‘알고리즘 봉건주의’라고 칭하기도 한다.
빅테크는 그들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봉건제의 영지를 꾸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를 자발적 데이터 농노로 만들어 새로운 봉건주의 시대의 영주가 됐다는 것이다. 빅테크가 자유 경쟁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를 죽이고, 개인을 데이터 노예로 전락시켜 버렸다고 비판한다. 빅테크가 제공하는 편의성에 물든 개인은 별생각 없이 ‘개인 정보 동의’를 수락한다. 그런 동의들이 모여 만든 정보를 활용해 빅테크 기업들은 거금을 벌어들인다.

21세기 봉건주의 시대에서 영주들의
땅따먹기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클라우드 영지에 사는 농노들의 고통과 시름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영지를 벗어나자니 되는 일이 없고,
남아 있자니 착취당한다는 감정이 날로 고조되고 있으니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무급 생산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매일 클라우드 영지에서 일한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취임식장에 장관들보다 앞자리를 차지했던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이조스 등 극소수 부자들의 배를 불리는 클라우드 농노로 전락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 3명의 재산을 합하면 1조 달러에 달한다. 트럼프 취임식장에서 구글 수장 순다 피차이는 베이조스와 머스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바로 21세기 알고리즘 봉건주의의 영주들이다.
클라우드 자본의 주가를 이루는 가장 값진 요소는 그 물리적 구성 요소가 아니다. 페이스북의 게시물, 유튜브에 업로드된 동영상, 인스타그램의 사진, 엑스에서 오가는 농담과 욕설, 아마존에 남아 있는 리뷰가 거기에 포함된다. 교통정체구간을 알려주는 구글 맵의 작동 원리도 이런 데이터에 기반한다. 이렇듯 우리는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클라우드 자본의 가치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해 내는 중이다. 오픈AI도 마찬가지다.
이런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올해 1월부터 경쟁의 화약고를 터트린 중국 기업이 있다. 중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심도구색(深度求索, deepseek)’이다. 영어 이름이 더 널리 쓰이는 걸로 봐서 세계적인 기업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출시한 복잡한 추론 문제에 특화한 AI 모델 ‘R1’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엔비디아의 시가 총액이 하루 만에 863조 원이 사라졌을 만큼 위력적이다. 기술우위 국가가 후발 국가의 앞선 기술에 충격을 받는 순간을 가리키는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를 맞았다는 평가다. 미국의 규제가 외려 중국 기술자의 창의적 해결책을 낳게 한 ‘규제의 패러독스’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는 석탄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광범위한 산업에서 석탄 소비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그는 일반적인 직관과는 달리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기술 진보에 의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효율성이 향상되면 자원 사용에 따른 상대적 비용이 낮아지면서 수요량이 늘어난다. 또한 효율성이 향상되면 실질 소득이 증가하고 경제성장이 가속화돼 자원 수요가 더욱 증가한다. 이를 ‘제본스의 역설’이라 부른다. 즉 기술 진보로 사용을 억제하려고 의도했었는데 사용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마도 딥시크의 개발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용을 몹시 늘게 할 것이다.
딥시크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딥시크 접속을 차단하는 정부 차원의 조치가 이뤄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국가 비밀 정보나 개인 정보를 활용한 엄청난 부가가치의 정보를 생산해 낼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1세기 봉건주의 시대에서 영주들의 땅따먹기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클라우드 영지에 사는 농노들의 고통과 시름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영지를 벗어나자니 되는 일이 없고, 남아 있자니 착취당한다는 감정이 날로 고조되고 있으니 딜레마도 이런 딜레마가 없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