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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목사로 시무하면서 사회복지사(과장)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65세에 접어들어 인생 2막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쁨과 아픔, 슬픔을 간직하면서 살아왔고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으니,  어쩌면 인생의 진가를 맛 보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저도 없이 살아온 과거도 있었고, 병원에 입원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절박함도 경험했습니다. 그 속에서 잊지 못할 고마움과 감사함을 간직하는 인생이 됐습니다.


제가 방송대를 선택한 이유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저는 가난으로 인해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아픔, 외로움과의 싸움 등을 간직한, 어쩌면 불행을 가지고 타고난 한 인간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저에게 방송대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체로 다가왔습니다.


1986년 못다 한 학업을 하려고 ‘농촌개발전공’ 과정에 편입했다가 도저히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직장 생활에 전념했습니다.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데다가 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에 지쳐서였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문구처럼,
서로 힘을 합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늘 마음속에서는 방송대인의 꿈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망설이던 중에 제적도 당하고 다른 공부를 시작해 목사가 됐고,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기 위해서 행정학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다양한 자격증(40여 종)을 취득했으니 어찌 보면 행운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여전히 목마름이 이어졌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방송대인의 꿈을 좇아 늦은 나이에 다시 농학과에 편입하면서 지금 새로운 삶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목포학습관 학생회 문화체육차장과 42대 목포학습관 학생회장을 역임하고 제43대 광주·전남총학생회장이 되어 봉사와 섬김의 마음으로 학업과 직업에 임하게 됐습니다. 졸업도 머지않은 지금, 학업과 봉사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 역시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방송대가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일도 바쁜데 몇 가지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본 지인들은  부러워도 하고 염려하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저 자신에게 늘 ‘방송대를 다시 찾은 일은 정말 잘한 일이다, 앞으로도 가능성이 있다’라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광주·전남총학생회장이 된 데는 주위의 선한 도움과 영향이 컸습니다. 43대 임원진과 함께 ‘함께하면 힘이 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학우들에게 봉사할 계획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문구처럼, 서로 힘을 합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오늘도 함께하자고 학우님들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렇지만 학교의 정책과 교육 환경의 흐름, 학우님들의 바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섬김과 봉사의 마음으로 덤볐지만, 되려 학우님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우리 모두 함께하며 익어져 가는 인생에서 사람 인(人)의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잡아주고 이끌어가는 우리 방송대의 멋을 발휘하면 좋겠습니다.


한번 방송대인은 영원한 방송대인입니다. 43대 학생회는 서로 도와가면서 끈끈한 인간미와 성공을 향해 밤과 낮을 바꾸면서 살아가는 방송대인의 언덕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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