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면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90세를 일기로 2024년 3월 27일 별세했다. 그런데 그의 지인인 제이슨 츠바이크는 2025년 3월 14일 미국 일간지〈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세계 최고 결정 전문가의 마지막 결정」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사실은 카너먼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을 했다고 밝혔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평소 카너먼이 ‘나는 매몰 비용이 없다’라고 말했단다. 이것은 언제든 미련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삶의 부담값과 행복값을 계산했더니 90세부터 삶의 부담값이 행복값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카너먼은 자살 직전까지 논문을 쓸 만큼 질병이나 정신적인 문제 등이 없었지만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겪을 고통과 수모는 불필요하다는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고 적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서가에서 그의 책『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을 꺼내서 다시 읽었다. 이 책 집필 과정에 제이슨 츠바이크도 크게 일조했다. 카너먼에 따르면, 인간은 빨리 생각하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뇌와 곰곰이 생각한 후 행동하는 뇌를 가지고 있는데, 빨리 떠오르는 생각에 따른 행동에는 대개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게 선택과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맛있는 것을 보자마자 덥석 집어 입에 갖다 대는 것, 겉보기에 끌리는 물건을 크게 고민하지 않고 구매하는 것, 불이야! 소리에 바깥으로 무조건 뛰쳐나가는 것, 배가 고파서 아무거나 먹는 것 등이 빠른 생각에 따른 행동이다.

사회적 관계에서 근거 없는 비합리적인 확신은

여러 문제를 불러온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리의 확신은
집단 소속감에 대한 표현일 경우가 많다.
우리의 확신은 소속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를 배제하기도 한다.

 


맛있어 보이지만 먹으면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급격히 높이기 때문에 망설이고 자제하는 것, 화려한 겉모양의 포장에 너무 신경 쓴 나머지 내용이 부실할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 불이야! 소리를 듣고 어느 쪽에서 불이 났는지, 가까운 비상구는 어디인지 따져보는 것, 배가 고파서 자장면을 먹고 난 후 후회했던 것을 생각하고 다른 메뉴로 바꾸는 것 등은 ‘곰곰이’ 생각하는 뇌에 의존한 행동이다. 계획을 세우기보다 몸부터 움직이고, 매몰 비용에 붙잡히거나, 단기이익에 눈먼 행동, 닻 내림 효과 및 후광효과 등에 따른 결정 등이 빠른 생각에 따른 선택 행위다.


살다 보면 ‘곰곰이’ 생각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심리학자 조너던 하이트(J. Haidt)는 감정이 머리이고, 합리성은 꼬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머리가 서쪽을 향하면 꼬리는 동쪽을 향한다고 말했다. 머리 즉 감정이 주도하고 꼬리 즉 합리성은 뒤에 따라오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판단이나 결정은 감정이나 직감과 이성적 사고가 협동하는 이른바 ‘감정과 이성의 댄스’에 의해 실행되는 것인지 모른다.


많은 사람이 비합리적인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잘살고 있기에 인식적 합리성이 모든 것의 잣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직감에 따른 결정은 때로 비합리적일 수 있지만 대부분 경우에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에서 근거 없는 비합리적인 확신은 여러 문제를 불러온다. 다른 사람의 확신이 자신의 확신과 일치하면 그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미쳤다’, 또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한다. 진실 여부를 떠나 우리의 확신은 집단 소속감에 대한 표현일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확신에 따라 속하고 싶은 집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속하고 싶은 집단에 의거해 확신을 선택하는 듯하다. 우리의 확신은 소속 집단과 동질감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를 배제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인 진영논리와 싸움이 여기에 기인한다.


비합리적인 확신 중 하나가 음모론이다. 음모론은 종종 자신의 발언이 검증될 수 없기에 반박될 수도 없는 상황을 활용한다.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속아 넘어가 원래의 진실은 보지 못한다는 게 음모론의 대전제다. 대개의 음모론은 증거로 볼 수 있는 것을 들먹이면서 ‘사이비 이성의 옷’을 입는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꽂은 성조기가 달에는 바람이 없는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듯 보였던 것, 두 우주비행사의 그림자 방향, 깜깜한 밤인데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등을 거론하면서 달 착륙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듯이 말이다.


음모론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에 부합하는 내용이 아니라 얼핏 보기에 모순된 것을 그럴듯하게 풀어주는 능력이다. 그래서 ‘당신이 모르는 세상보다는 당신이 아는 악마가 더 나은’ 것이라고 속삭이면서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대통령 탄핵으로 대선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어떤 음모론이 등장할지 심히 우려한다. 파스칼은『팡세』에서 ‘마음에는 이성이 모르는 이유가 있다’라고 썼다. 인간 행동을 이성으로 다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다. 카너먼의 ‘마지막 결정’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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