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와의 전투에서 패했다. 그는 34년 동안 오로지 정복하고 모든 것을 차지만 하다가 이제 늘그막에 생애 처음으로 전쟁에 지고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전쟁과 다툼을 겪으면서 얻었던 권세와 영광이 어쩌면 이렇게 단 몇 시간 만에 모두 사라질 수 있을까? 회한과 더불어 아마도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 이틀에 걸쳐 이뤄진 개선식 장면이 스쳐 지났을 것이다.


개선식에서는 맨 앞에 그가 정복한 나라의 이름을 적은 명패가 들어온다. 그의 손에 멸망한 해적과 도적 떼의 이름도 적혀 있다. 명패에 따르면 1천 개가 넘는 지역이 정복됐고, 900개의 도시를 함락했으며, 800척의 해적선을 나포했고, 39개 도시가 새로이 섰다. 그뿐만 아니라 병사들에게 나눠줄 상금을 제외하고도 정복지에서 탈취한 돈으로 세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상당한 양의 금화, 은화가 국고에 들어왔다. 개선식에 끌려온 포로에는 해적을 위시해 왕과 왕자, 왕비, 왕족의 여동생과 아이들, 여러 나라의 여인들에 이어 스페인과 알바니아 등에서 바친 볼모가 뒤따라왔다(신복룡 옮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존경한 나머지 실제로 알렉산드로스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흐트러진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두정치를 개막하며 크라수스, 카이사르와 함께 로마 권력을 삼분했다가 훗날 카이사르에 패하고 도망지 이집트에서 살해됐다. 파란만장한 그의 삶은 권력 무상을 잘 보여준다.

정상을 보며 달리는 많은 사람이

저 고지에만 오르면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추스른다고 말한다.
정상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로마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이런 장관(壯觀)의 배경은 뭐라 해도 세 번의 원정에서 사실상 온 세계를 정복한 그의 전공(戰功)이다. 처음에 남쪽의 리비아를, 두 번째로 북쪽의 유럽을, 세 번째로는 서쪽의 아시아를 정복했다. 이런 공적을 기리는 45세 때의 개선식은 그의 인생 황금기를 극명하게 보여준 드라마였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보잘것없고 초라하게 도망치는 몸이 되어 그를 추격하던 적군도 쳐다보지 않는 신세가 됐을까를 생각하니 비참함이 이루 말로 헤아리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카이사르에게 패한 폼페이우스가 이집트의 펠루시움으로 망명하자 이집트의 신하들 사이에서 폼페이우스의 신병 처리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어떤 사람은 그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그를 쫓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그리스의 키오스 출신, 왕의 수사학 교사인 테오도토스는 이런 말을 했다. “폼페이우스를 받아들이자는 의견이나, 그를 몰아내자는 의견 모두 잘못됐습니다. 가장 유익한 방법은 바로 그를 받아들이고 나서 죽이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물지 않습니다.”


테오도토스 의견에 따르기로 결론이 났다. 폼페이우스를 받아들인 뒤에 자기가 데리고 있던 막료 셉티미우스가 그를 살해했다. 그는 그렇게 쉰아홉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는데, 그날이 바로 생일 다음 날이었다. 테오도토스는 브루투스의 손에 죽었다. 권력 무상이고, 인간의 영화는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다. 도취한 권력의 종착점이 어디인지를 알려준다.


사람이 권력을 쥐면 뇌에 만족감을 주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면서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권력 중독자에게 ‘당선이 어려우니 출마하지 말라’는 말은 마약 중독자에게 약을 끊으라는 말과 동격이다.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연소인 29세 때 상원의원이 됐다. 첫 결혼 직후 입양한 강아지 이름을 ‘상원의원(Senator)’으로 지을 만큼 권력 의지가 강했다. 지금은 권력 의지가 그보다 더 강한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권력자의 신세는 헬기 타고 산에 올랐다가 맨발로 하산하는 처지다. 독재자의 자리가 마음 끌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내려오는 길이 없다. 정상을 보며 달리는 많은 사람이 저 고지에만 오르면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을 추스른다고 말한다. 정상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는 게 세상 이치다. 게다가 산 정상은 비좁다. 헤밍웨이는 아프리카 여행 경험이 담긴 단편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산 정상 부근을 표범 사체가 말라붙어 있는 곳이라 했다. 그는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라고 했다.


권력은 원하는 대상을 얻는 보편적인 통화다. 그 통화를 얻으려는 열정은 모든 열정 중에서 가장 추악하다. 권력의 본성이 팽창주의적이어서다. 권력이나 직함은 자아 팽창의 주입펌프다. 거품 욕망으로 팽창하는 자아는 오만을 부르고, 다음에는 과오에 대한 무감각에 빠지고 마지막엔 낙마요, 파멸에 이른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교수들이 대선후보 캠프에 기웃거리고 한자리 차지하려고 온갖 줄을 댄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정권이 바뀔 무렵이면 보이는 진풍경이다. 불타 죽을 줄 모르는 부나방처럼 캠프로 날아드는 폴리페서들이 가관을 이룬다. 얻어걸리면 장관, 비서관, 공공기관장, 연구원장 등의 자리를 챙긴다. 이런 폴리페서는 강단에서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이들에게 학교는 명함용이요, 교수 직함은 세일즈 수단이다. 끝까지 권력에 미련을 두고 기신거리는 것은 추루(醜陋)해 보인다. 권력의 본성인 자아 팽창의 종말을 봤으면서도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눈치 보며 권력의 ‘일회용 물티슈’가 돼도 좋은가?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