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는 언제나 학우님들을 위해 고민하고
깊은 생각을 한다는 걸 믿고 재미나게 학업에 임해주시길 바란다.
학생회도 학우들님과 언제나 함께하고자 한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1주일 남았다. 시내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과 홍보물을 보면 후보자의 공약을 최상급의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 것 같다. 항상 말로 포장한 시대상에 식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필자는 평소에도 수식어를 많이 쓰지 않고 진솔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필자의 고향은 산과 강,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답기로 유명한 경남 하동이다. 여느 농촌지역과 비슷한 환경에 이웃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던 것 같다. 이 마을에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니 정부에서는 시각효과를 위해 멀쩡한 집을 새로 지으라며 어른들을 압박하고는 전기 시설을 앞당겨 해주었다.
비교적 부자로 알려진 몇몇 가정에서는 흑백이지만 텔레비전을 들였고, 곧 동네 극장 역할을 했다. 프로레슬링 경기나 드라마「수사반장」등 어른, 아이가 열광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필자가 유독 관심을 갖고 본 것은 「묘기대행진」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어느 날 암산으로 한 학생이 출연해 가로 열 줄, 세로 열 줄을 약 20~30초에 계산을 하는, 신기(神技)에 가까운 실력을 뽐냈다. 이 학생은 서울여상을 다니던 이춘덕으로, 훗날 국가대표 주산 선수가 됐다고 한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필자의 머릿속에는 늘 그 장면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은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주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함께 맞아가며 배운 주산 공부는 중학교 때까지 이어졌으니 제법 잘 한다는 말들을 들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도 경남지역의 실업 명문으로 불리던 마산상고에 진학했다. 상과 과목은 적성에 잘 맞았고, 부기(簿記) 과목은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었기에 거의 만점을 받은 걸로 기억한다.
여기에서 그만 필자의 인생 진로가 확정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시·군 지역에 다른 상업학교도 있었고, 학교 주위에는 크고 작은 학원들이 경쟁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원장들이 필자에게 당시 공무원 보수의 몇 배를 보장하면서 강사로 와달라고 제안했다. 머뭇거림 없이 분필을 들었다. 그리곤 몇 년 후 20대 초반의 나이로 학원을 직접 운영했다. 거침없는 세월이었다.
그 무렵 대학 진학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대졸들이 직업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절실함은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시절’이 마냥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이 무섭다 해도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고 느낀 건 상업학교의 인문계전환과 곧이어 터진 IMF사태, 정보기술의 다각화라는 시대 변화를 겪으면서였다. 이 일련의 일들은 필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한동안 방황하다가 중소기업에 취직했는데, 회사의 직원 대부분이 대졸 이상의 학력을 지녔다는 걸 알게 된 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적 삶이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독서광인 친구와 함께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독서광인 친구는 이제 하늘에서 필자를 쳐다보게 됐지만, 반드시 학업을 마쳐 훗날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학우들과 스터디까지 결성해 무척 열심히 공부했다. 학원 강의 경험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료들의 수업을 도울 수 있었다. 눈높이를 맞춘 도움이어서 학우들은 일취월장 실력이 늘었고, 다들 흡족해했다. 부담감을 주지 않으며 재미나게 배우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게 최선의 교수법이란걸 다시 한번 깨우쳤다. 필자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즐겁고 신나게 하자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경남총학생회장직을 맡게 됐다. 총학생회는 회장과 집행부가 꾸려지면 취임 초에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편성해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실제로 집행을 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 결과 학우님들께선 질타를 하기도 하고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경남총학생회는 언제나 학우님들을 위해 고민하고 깊은 생각을 한다는 걸 믿고 재미나게 학업에 임해주시길 바란다. 경남총학생회도 학우들님과 언제나 함께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