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3일, 향년 89세의 나이에 식도암으로 별세한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Jos Mujica) 전 대통령(2010~2015년 재임)의 삶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는 자기 삶의 철학이 반영된 ‘삶에는 가격표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본래 게릴라 출신으로 군사정권에 맞서 여러 차례 투옥을 당한 적이 있다. 그는 두 번이나 탈옥했다. 한 번은 다른 인민해방운동에서 활동한 수감자 105명과 함께 터널을 통해 탈옥했다. 이는 우루과이 교도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탈출 사건 중 하나였다. 1985년 우루과이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면서 석방됐다. 그는 석방된 날이 가장 행복한 기억이었다고 회고했다. 대통령이 된 것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출소 후 몇 년 만에 그는 상원과 하원에서 의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 우루과이 좌파 연합인 프렌테 암플리오(Frente Amplio)의 초대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후, 2010년 제46대 우루과이 대통령이 됐다. 당시 그는 74세였고, 세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재임 기간에 비교적 우호적인 국제 정세 속에서 우루과이 경제는 연평균 5.4%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빈곤은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또한 낙태 합법화, 동성 결혼 인정, 마리화나 시장에 대한 국가 규제 등 당시 의회에서 통과된 사회법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무히카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전 세계 국가 원수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대통령 관저로 이사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 대신 그는 정치인이자 전 게릴라였던 아내 루시아 토폴란스키와 함께 몬테비데오 외곽의 소박한 집에서 가사 도우미도 없고 보안도 취약한 채 살았다. 퇴임 2~3년을 앞두고 퇴임 후 살 저택을 마련하느라 국민 세금을 쓰는 우리나라 전임 대통령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고액 연금을 받으면서 국비로 지원하는 경호 인력과 비서들이 퇴임 대통령을 지킨다.
무히카 대통령은 월급의 90%를 기부하고 1987년산 낡은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다니며 소탈하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중동의 한 부호가 그가 타던 비틀을 구매하고 싶다며 “100만 달러를 주겠다”라고 제안했지만, “난 그 차에 애정이 있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거절했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그의 검소한 삶의 방식을 보며 사람들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정작 “나는 다 가졌다”라고 말했다.

돈이라는 수문장을 거부한
무히카 전 대통령, 그를 보면서
삶은 정직하게 걸어야만
종착점에 닿을 수 있는 운명의
대륙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으면서 도서관의 장서와 같은
‘삶의 책’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 아니다. 가난이란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지만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거의 없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살아온 방식이자 국민 대부분이 사는 방식대로 살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은 정상이라는 것에 놀라는 듯 미쳐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삶에는 가격 라벨이 붙어 있지 않으니 나는 가난하지 않다”, “권력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단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뿐”이라는 말에 그의 세계관과 인생관이 응축돼 있다.
이른바 운동권 대통령이었던 그가 자기 과거의 처지와 경제적 신분까지도 세탁해 입신양명의 지위를 만끽하다가 죽었다면 누가 그를 칭송할 것인가. 작년 11월 BBC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어쩌면 죽음은 삶의 소금과 같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죽음을 삶의 소금이란 메타포로 표현하는 그의 시적 영감이 놀랍다. 그의 죽음으로 생전의 삶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향기를 건넬 것이다.
현지 일간지〈엘옵세르바도르〉는 무히카 전 대통령을 ‘세계의 끝에서 등장한 설교자’라고 표현했다. 그의 설교는 구체적인 일상의 삶을 통해서 전파됐기에 우리를 더욱 감동시킨다.
그렇다. 삶의 절대적 질량은 지상에서 숨을 쉬었던 시간과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에피쿠로스는 ‘사는 데 정답이 어딨어?’라고 말했다지 않은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다. 삶의 의미는 찾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무히카 전 대통령이 웅변했다.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가난을 선택하는 것은 무더운 날 마실 수 없는 차가운 저수지 옆에서 마라톤을 뛰는 것과 비슷하다. 돈은 자유, 독립, 권력을 주기에 이를 거절하는 게 어지간히 힘든 일이 아니다. 미국 1달러 동전에는 자유(liberty)라고 박혀있다. 돈이 자유라는 의미다. 돈의 힘으로 일상의 불편과 어려움을 접할 일을 제거하고, 원치 않은 방해도 받을 일 없다. 머스크의 거침없는 세계 장악욕도 모두 돈에서 나온다. 돈은 인간 행동반경을 결정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돈의 철학』에서 “돈은 개인의 가장 고유하고 내면적인 것을 지켜주는 수문장이다”라고 했다. 돈이라는 수문장을 거부한 무히카 전 대통령, 그를 보면서 삶은 정직하게 걸어야만 종착점에 닿을 수 있는 운명의 대륙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으면서 도서관의 장서와 같은 ‘삶의 책’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도 운명의 대륙에 다다라서 쓴 가격표가 없는 책 말이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