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미래의 방송대 모습은?

인공지능(AI)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인류의 삶과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스마트폰, 검색엔진, 자동화 기술 등 AI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18세기 증기기관의 출현으로 도시 구조, 가족 형태, 시간 개념까지 바꾼 산업혁명보다 더욱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전환이, 바로 지금 AI를 통해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AI 시대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방송대는 어떤 교육 혁신을 모색해야 할까? 이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1991년 방송대에 부임해 교육 체제의 주요 전환기마다 중심적 역할을 해온 손진곤 자연과학대학장을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기획 시리즈 「미래의 방송대 모습은?」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앞으로 <KNOU위클리>는 방송대 교수진의 다양한 건설적 제안을 지속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AI 시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첫째, 지식의 생산과 소비 방식이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지식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AI를 통해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손쉽게 얻게 됐죠. 이제 인간은 ‘정보 저장고’가 아니라 ‘정보 평가자’ 또는 ‘의미 해석자’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인간 고유의 판단력이 도전받고 있다는 점이죠. AI는 언어 생성, 이미지 창작, 작곡 등 창의적 영역에서까지 실용적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내며, ‘무엇이 인간만의 능력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료, 금융, 행정,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쳐 AI가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건데요, 기술의 중립성이란 환상이기에, 비판적으로 이 흐름을 바라봐야 합니다.

 

생성형 AI가 왜 위험합니까?
AI는 24시간 피곤해하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 생산성이 높아지는 등 장점이 많다는 점은 먼저 확실히 전제하고 넘어갑시다.(웃음) 위험하다는 건 생성형 AI가 단순한 기술적 편의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AI는 문장을 쓰고, 질문에 답하며, 음악을 만듭니다. 인간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사고, 창조, 의사결정까지 점차 넘보고 있어요. 한국인이 AI로 놀란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일 겁니다. 그런데 생성형 AI는 바둑만 잘 두는 게 아닙니다. 의사처럼 암을 진단하고, 의사 자격시험에도 합격해요.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 경에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고 예측하였는데요. 특이점이란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가 나오는 순간을 일컫는 거죠. AI가 사회 전 분야에서 단순히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 경제적 결정을 구성하는 판단 체제 자체에도 개입하는 상황이 됩니다. 만약 특이점을 넘어가는 순간이 온다면 AI가 자아에 대해 발견할 수 있을 테고, SF영화처럼 거꾸로 AI가 인간에게 일을 시킬지도 몰라요. 중요한 것은 기술이 재편하는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에 맞게 살아갈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인류에게 더 본질적인 위기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에게는 어떤 역량이 요구되나요?
최소한 기술의 단순한 숙련은 아니겠죠? 네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역량입니다. AI가 생성한 글이나 제안은 겉보기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종종 오류나 편향된 시각, 왜곡된 맥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출처와 구조를 파악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논리적 일관성을 평가하는 능력을 길러야겠습니다.

 

둘째는 ‘창의성(creativity)’ 역량이죠. AI가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기존 패턴을 조합, 재현하는 데 반해 인간은 전혀 다른 분야를 융합해 독창적 해석을 만들 수 있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어러운 지점이 바로 ‘창의적 해석’과 ‘의미 재구성’이라고 봐요.

 

셋째는 ‘공감과 윤리 의식(empathy & ethics)’입니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타인의 감정을 느끼거나 도덕적 책임을 지는 존재는 아니죠. AI를 통해 의사결정을 자동화할수록 인간은 그 판단이 어떤 이들에게는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겠죠. 무엇이 공정하고 올바른가를 따지면서요.

 

마지막으로 ‘자기주도적 학습(self-directed learning)’ 역량입니다. AI 시대에는 학습 내용보다 왜 배워야 하는지와 어떻게 배울 것인지를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기에,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고, 자원을 찾아 전략을 조정하는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AI 시대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문제는 그 시대에서 도태할 것인가,

단순히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이끌어갈 것인가의 선택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방송대가 AI 시대에도 여전히 국민에게 꼭 필요한

‘열린 지성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AI 시대에 방송대 교육 체제의 현주소를 진단하신다면요?
위에 언급한 역량들과 관련해서 분석해 보죠. 먼저 비판적 사고 역량 측면에서 보면, 현재 방송대 수업 구조는 일방향 콘텐츠 중심으로 운영되어 학습자의 분석과 비판 능력 함양에 한계가 있습니다. 질문과 토론이 부재한 구조는 비판적 사고력 신장을 어렵게 만듭니다. 이러한 수업 방식은 창의성 함양에도 걸림돌이 됩니다. 전국적으로 표준화된 강의와 과제는 학습자의 흥미와 배경, 문제 해결 방식의 다양성을 반영할 수 없습니다. 학습자의 고유한 사고와 창의적 접근이 발현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방송대 교육의 대표적인 한계 중 하나는 정서적 상호작용의 부족입니다. 특히 AI 시대에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 알고리즘의 편향성과 윤리적 책임 등 복합적인 가치 판단이 요구되지만, 원격대학이라는 구조적 제약으로 인해 공감 능력과 윤리 의식의 함양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방송대가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함양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방목’해왔다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방송, 교재 등의 학습 도구를 제공해주고 따라올 학생은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 자기주도적 학습 환경을 제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요. 무엇을 배울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배울 것인지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줘야죠.

 

방송대 교육의 파괴적 혁신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맞추어 방송대의 비전과 미션, 핵심과제와 추진전략이 체계적으로 재편돼야 할 텐데요. 새로운 대학을 개교한다는 심정으로 기존 교육 체제를 다음과 같이 파괴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AI 기반의 개인화 학습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모든 학습자가 각자의 수준과 성향에 맞춘 콘텐츠를 추천받아, 스스로 학습 경로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해요. 이미 상용화된 AI 튜터와 학습 분석 기술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둘째, 일방향 강의 중심 구조를 상호작용 기반 학습체계로 전환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 문제 중심 학습, 협업 기반 과제 등 참여·상호작용형 학습 방식을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수자도 강의 전문가에서 ‘학습 경험 설계자’로 전환돼야겠죠.

 

셋째, AI의 원리와 한계, 알고리즘 편향과 데이터 윤리 등 통합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AI 시대에 필요한 인간 역량을 중심으로 한 교양 교육 개편이 필요합니다. 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해야 하는 과제이기에, 방송대야말로 최적의 교육기관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정서적 유대와 학습 지속력을 높이기 위해 AI 기반 피드백 및 상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원격 교육에서 나타나는 고립감은 학습 동기 저하, 중도 이탈의 주된 원인이죠. AI 상담 챗봇 등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육행정 시스템과 교육 콘텐츠 시스템을 AI 시대에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조직 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조직 문화의 유연화와 교수자 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사고의 전환 없이 AI 시대의 교육 혁신은 허울에 그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요.
1980년대 컴퓨터 혁명, 1990년대 인터넷 혁명, 2000년대 모바일 통신 혁명을 겪은 방송대가 AI 혁명의 파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AI는 누구에게나 새로운 기술입니다. 선점하여 이미 무르익은 기술은 뒤좇아가는 사람에게 불리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먼저 시작하는 사람에게 유리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혁신을 방송대가 실현해낸다면, AI 시대에도 여전히 국민에게 꼭 필요한 ‘열린 지성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술이 우리를 밀어붙이기 전에, 우리가 기술을 끌어안고 방향을 설정해야겠죠. 주저하면 방송대의 미래는 대단히 암울할 것이란 걸 우리는 역사적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1년이 지나면 저는 퇴임합니다만, AI 시대에 방송대가 ‘적자생존(適者生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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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nou***
    역시 예리한 통찰과 식견이시네요. 방목과 적자생존이란 단어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2025-06-20 00:42:36
  • kcy3***
    너무 나도 맞는것 같아요
    2025-06-09 12:37:31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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