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역대학에는 독특한 부부가 함께 공부하고 있다. 교육학과 4학년에 재학하고 있는 권말숙 학우와 대학원 농업생명과학과에 적을 둔 남주현 원우가 바로 그들이다. 권 학우는 생활과학부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친 후 교육학과에 편입학했고, 남 원우는 농학과를 졸업한 후 2년의 휴식기를 가진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 방송대에는 함께 공부하는 부부가 많지만, 나란히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진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2017년 방송대에 편입학 원서를 접수하는 아내를 따라 남편도 용기를 내어 입학했다는 이들의 학업 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강지영 동문통신원 ssg5890@naver.com

방송대는 내 인생의 희망 터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토록 소원했던
영양사 면허증을 취득했고,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꿈을 실현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학교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려고 해요.
― 권말숙 학우
경주시 내남면의 산골 동네에서 자란 권 학우는 화전을 개간해 농사로 생계를 잇던, 형제도 많은 가난한 시골 살림 형편이어서 고등학교는 엄두를 낼 수도 없었다. 당시 무상 교육이던 중학교만 간신히 졸업했고, 고향을 떠나 도시의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에 진학해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공부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그는 결혼 이후에도 한식, 양식, 제빵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 어린이집 조리사로 일했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조리사인데 영양사 업무도 보조하게 됐다. 이 무렵 자격증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방송대 생활과학부 식품영양학 전공에 지원할 때 직장 상사의 추천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이 어려서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시작해도 됐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원격수업으로 진행되는 방송대 공부는 하고자 할 때 바로 시작할 것을 꼭 권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방송대 수업은 나의 상황에 맞춰 들을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그것이 방송대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아내 따라 방송대 진학한 남편
같은 해 아내를 따라 농학과에 입학한 남편 남주현 원우는 공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7년 만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공부에 대한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으나 혼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사람과 함께 방송대 입학 원서를 제출하러 갔어요. 아내가 용기를 내 도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속이 뜨거워지더군요. 저도 어떤 결단을 내려야겠더라고요. 사실 부부가 같이 공부하면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다음 날 저도 농학과 입학 원서를 제출했죠.”
그렇게 부부는 학과는 달랐지만 함께 공부하는 동료가 됐고,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은 남편이, 학과 과제물 작성에 필요한 학술지나 논문 등의 자료를 찾는 것은 아내가 주도해 서로 학습 동반자가 됐다.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었던 경험을 살려 공부하면 될 것이라는 남 원우의 예상은 첫 학기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농학과 교재는 지금도 어렵다고 소문나 있다. 그렇다 보니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학우들과 스터디를 진행하며 공부했다. 학년 대표를 역임하면서 학우들의 공부까지 챙겼던 그는 유기농업기능사와 식물보호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학부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주중에는 회사 업무 주말에는 농사일 그리고 학업까지 병행했더니 몸이 너무 고단했어요. 졸업 후 2년의 휴식기를 가지고 대학원 농업생명과학과에 진학했어요. 현재 대학원 공부와 병행해 (사)한국기능성작물생산포럼 울산지부 사무국장을 맡아 농학과 실습생들을 지도하는 역할도 하고 있고요.”
면허증 취득과 취업 겨냥한 공부
권 학우는 4년 만에 생활과학부 식품영양학 전공을 졸업하면서 면허증 취득까지 모두 손에 쥐었다. 비결이 뭘까?
“저는 학습계획을 매우 촘촘하게 세웠어요. 학교 공부는 교재와 워크북, 방송 강의 위주로 공부했고, 방학 기간에 다음 학기 교과목 중 어려운 과목을 선택해 교재를 미리 구입, 선행 학습을 했죠. 이후 본강의를 들으면 훨씬 공부하기가 수월하거든요. 한 학기 최대 일곱 과목까지 수강해 졸업학점을 충족시키고, 마지막 학기에는 한 과목만 남겨두어 시간을 확보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겠죠.(웃음)”
시간을 확보한 덕분에 면허증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11월에 위생사면허, 12월 초에 기말시험, 12월 말에 영양사면허 국가고시에 한 달 간격으로 응시하고 좋은 결과를 받아 들 수 있었다.
그러나 면허증을 취득했지만, 취업이 만만치 않았다. 어린이 급식 전문 영양사로 일하고 싶어 여러 군데 지원을 했는데 50세가 넘은 나이 때문에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실망도 많이 했지만, 전공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 생활과학과에 진학해 ‘초고령사회 노인 급식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런 노력의 결실인지 어느 순간 취업의 기회가 찾아왔다.
“대학원 졸업 후 지인으로부터 노인센터 위탁 급식을 담당하는 업체에 영양사 자리를 제안받았어요. 그토록 원하는 취업에 성공했는데, 알고 보니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자리여서 저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더라고요.”
권 학우는 대학원 공부에서 ‘삶의 비결’이랄 수 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통계 자료를 활용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해당 과목에서 과락을 맞으면 졸업을 할 수 없기에, 자식 찬스 남편 찬스 모두 동원해야 했다. 물론, 과제는 본인이 수행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서 자료정리에 애를 먹었죠. 어렵게 완성해 제출한 과제로 결국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 ‘내가 이것도 해냈는데 뭔들 못하겠나’하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이때 확인한 ‘이 어려운 과제도 해냈는데, 뭔들 못하겠나’라는 자신감은 노인센터 영양사로 일할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도록 했다.
대학원 졸업 후 원하던 취업을 했는데, 권 학우는 왜 다시 교육학과의 문을 두드린 걸까? 그는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다고 한다. 종사자들의 마음을 읽어야 할 상황이 종종 발생해 고민을 계속하던 끝에 2024년 교육학과에 편입했다.
“영양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다루는 자리이기도 해요. 그들과의 소통을 좀 더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더 필요했어요. 심리학이나 상담학 등 관리자로서 소통에 도움이 될 만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이수하고 있어요.”
“학교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후배 챙기려”
문득 그에게 방송대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방송대는 내 인생의 희망 터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토록 소원했던 영양사 면허증을 취득했고, 취업에 성공한 것으로 꿈을 실현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학교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려고 해요. 영양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면서 실습처를 구하지 못해 힘들었던 상황을 후배들은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현재의 직장에 실습생이 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답니다. 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기뻐요.”
권말숙 학우의 새로운 꿈은 취약계층을 위한 식생활 지원이다. 무료 급식소에서 균형 잡힌 식단을 설계해 끼니를 제공하거나 요리 봉사활동을 통해 영양가 높은 식단을 나누고 싶어 했다. 남주현 원우는 퇴직 후 농촌 체류형 쉼터를 키워볼 계획이다. 농학과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실천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 푸근하게 농촌을 경험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