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저자에게 듣다

방송대 통합인문학연구소(소장 이상진)가 간행하는 학술논문지〈통합인문학연구〉제17권 1호(2025)에 실린「일본의 근대교육 형성에 관한 교육철학적 고찰」은 몇 가지 점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논문이다. 논문 저자는 현재 호주 찰스다윈대학교(Charles Darwin University)에 방문학자로 나가 있는 권영민 교수(교육학과)다.
전국 13개 지역대학에 출석수업을 나가면서 10대 후반에서 80대까지 다양한 학우들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 모두가 ‘주입식 교육’이라고 대답했다. 권영민 교수는 어째서 전국에서, 그것도 다양한 세대에서 같은 대답이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 기원을 풀기 위해 현장에서 마주한 문제를 책상으로 가져갔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주입식 교육으로 설정한 권 교수는 이런 교육이 작동하게 된 기점을 추적했고, 이를「일제강점기 학교관 형성 연구」(2021)로 분석해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프랑스의 근대교육 변화를 짚어낸「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제도 형성에 관한 교육철학적 고찰」(2023)을 거쳐 다시 ‘일본의 근대교육 형성’을 마주하게 됐다. 이번 논문은 그런 교차 분석 위에 실증적으로 서 있다.
일본과 한국의 근대적 개혁 사이에는 30년의 시차도 존재하지 않는 데 비해 두 개혁의 결과로 두 나라가 받아 든 성적표는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권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과연 두 나라의 근대적 개혁 사이에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시간 차이 외에 어떠한 점이 개혁의 결과물을 바꾸고 두 나라의 운명을 변화시켰는지 들여다 보면서 “조선과는 달리 일본의 경우, 네덜란드라는 상대국을 통해서 유럽 및 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해 왔으며, 그 시기의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지력을 활용할 기회를 얻었던 여러 주체들이 속도감 있는 근대화에 단단한 기반을 제공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호주 찰스다윈대학교에서 방문학자로 나가 있는 권영민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지난 몇 년간 저는 주입식 교육의 기원에 관심을 가지고

제 나름의 답을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교육철학자로서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개선점을 마련하기 위한

통찰을 얻기 위해
여러 국가의 사례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연구년으로 해외에 체류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방문학자로 연구할 기회를 얻어 지난 2월 초부터 호주에 있는 찰스다윈대학교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호주 대륙 북쪽 끝자락에 있는 ‘다윈’이라는 작은 항구도시죠. 도시명과 대학명을 영국의 유명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찰스 다윈과 함께 비글호에 탑승했던 측량사가 이 항구에 정박했던 것으로 인해 ‘다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저는 교육학부 ‘존 메이슨(Jon Mason)’ 교수님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데, 메이슨 교수님은 교육공학자로서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교육적 시사점에 대해 깊은 고민을 오래 해오신 분입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교사의 역할’에 큰 관심을 갖고 여러 연구들을 진행해 왔는데요, 엄청난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한 이 시기에 ‘인간 교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아니 할 수는 있을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하여, 올 한해 저의 가장 큰 연구주제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교사의 역할’입니다.

〈통합인문학연구〉최근호에 발표하신 논문은 ‘일본의 근대교육 형성’을 추적하는 일련의 작업 가운데 하나로 보입니다. 교육철학(사상)을 전공한 학자가 일본의 근대교육 형성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있다면요
네 지난 몇 년간 저는 주입식 교육의 기원에 관심을 가지고 제 나름의 답을 찾고자 노력해 왔습니다.「일제강점기 학교관 형성 연구」의 경우,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기점이 일제강점기라고 가정할 때, 일제강점기 시절 근대교육이 어떻게 확대됐는가, 그것이 우리 선조들로 하여금 교육·교사·학교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게 만들었는가를 살펴봤습니다.「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제도 형성에 관한 교육철학적 고찰」은,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평가체계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교육적 근대화를 이룩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떠한 교육철학이 담겨 있는지 짚어봤습니다.
이번 논문「일본의 근대교육 형성에 관한 교육철학적 고찰」의 경우, 이 연구 시작 전 제가 지녔던 질문은, 과연 ‘일제가 식민지민과 자국민을 교육함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뒀을까’였는데 진행 과정 중에 ‘일본의 교육적 근대화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교육철학자로서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고 개선점을 마련하기 위한 통찰을 얻기 위해 여러 국가의 사례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논문에서도 밝히셨지만, 방송대 13개 지역대학에서 출석수업 등을 하시면서 10대 후반에서 80대까지 학생들로부터 ‘한국 교육의 문제점은 주입식 교육’이라는 대답을 듣고, 의문점을 풀기 위해 접근, 가설로 ‘우리나라 주입식 교육의 기원은 일제강점기 교육이다’로 설정하고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고 계신데요. 주입식 교육의 기원이 일제강점기 교육에 있다면, 광복(해방) 이후 80년이 지난 지금, 교육 현장에서 주입식 교육에 우호적인 학교 문화는 어느 정도 극복됐다고 보시는지요
일제강점기 교육평가의 가장 큰 특징 중 한 가지는 ‘석차 매기기’였습니다. 1930년대 이미 중학교 입시 경쟁의 과열이 사회 문제 중 하나였죠. 좋은 초등학교는 중학교 입시 결과가 좋은 학교였고, 이후 고등학교 입시 경쟁, 대학교 입시 경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한 문화가 지금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현재 호주 공립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에 재학 중인데, 제가 알기로 초등학교에는 정해진 교과서가 없습니다. 물론 이곳이 호주에서도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기가 어린이집인지 초등학교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국에 있을 때는, 초등학생이라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마치 뒤처지는 듯한 압박을 받는 듯했는데, 적어도 이곳의 초등학생들과 부모들에게는 그러한 부담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논문에서는 일본 막부가 17세기 중반부터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 문물을 수용하면서 ‘지력의 독립적 사용과 다층적 위탁’ 양상을 보이면서 결과적으로 일본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조선의 경우, 서양 문물과의 접점을 찾고자 하는 우수한 개인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여기서 ‘지력의 독립적 사용’이라는 흥미로운 척도를 제시하셨는데, 지력의 독립적 사용이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것이 당시 조선 사회 전반의 한계와 연결되는 것인지도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프랑스 교육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 중 한 가지는 학교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시험이 주관식, 서술형이었다는 것입니다. 제 학창시절을 비추어 봐도, 아니 지금 우리 방송대의 평가 시스템만 봐도 주를 이루는 시험 방식은 선다형 객관식 시험입니다.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겠지만, 객관식 시험의 경우 정답이 한 가지이지만 서술형 시험의 경우 ‘완결된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다양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답들이 제시될 것이고 교육자 역시 자신의 교육적 가치 기준에 따라 그것을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서술형 중심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경우, 객관식 평가 위주의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 비해 ‘내 생각’의 가치를 더 인정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서, 판단의 주체로서 자신의 지력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도록 어린 시절부터 훈련받게 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논문에도 나와 있지만 ‘조총 기술’의 수입이 16세기 일본의 전국 통일에 큰 기점을 제공했습니다. 이 기술의 수입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 영주의 독립적 판단에 의해 이뤄졌고 그 판단은 이후 많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조선의 경우도 임진왜란 이전에 ‘조총 기술’과 우연히 조우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술이 당장 그 지방의 하급 관리에게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설령 필요한 것으로 판단됐더라도 감히 조총 기술 도입을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서양으로부터 무언가 앞선 기술을 도입했다’는 이 기억이 이후에도 막부의 지도자들에게 서양의 과학기술 발전에 지속적으로 우호적 관심을 기울이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물론 조선은 중국을 통해 세계 많은 나라와 교류를 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만, 외교적 차원에 있어서도 많은 결정을 중국에 위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급격한 세계정세의 변화에 기민하게 주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논문의 잠정적인 결론은 ‘근세 조선과 일본의 차이는 유럽과 연결돼 있었나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입니다. 이는 조금 결과론적 해석일 수도 있지 않나, 나아가 ‘근대성(modernity)’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장하듯, ‘복수의 근대’를 배제할 수도 있는 결론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드는데요
물론 종교개혁이나 프랑스 혁명 등을 통해 유럽대륙이 근대화를 선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근대성은 ‘권위의 개별화’로 개념화할 수 있을텐데요, 종교개혁을 통해 종교적 권위가 상당 부분 개별 주체에 분산됐고, 프랑스 혁명을 통해 개별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게 됐죠. 물론 이 ‘권위의 개별화’라는 것이 그 이전에 아예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규모 사회에서는 어느 시점, 어느 지역에서든지 ‘근대성’이 구현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구축하고 있는 많은 사회적 시스템이 유럽을 기점하고 있다는 실제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논문 내용과 관련해 일본과 유럽의 연결이라는 것이 일방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상당히 많은 주체들이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었고 많은 위기 또한 발생했고 또 극복됐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조선 사회에는 이처럼 다양한 계층들이 역동적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교수님께서 결론 부분에서 강조하신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더욱 개인의 독립적 지력 활용이 어마어마한 경제적 효과를 낳고 있는 현 시점에 옆 나라의 점진적인 근대화에 대비되는 뼈아픈 근대화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교육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혹시 그런 과거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는, 우리의 교육방식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 최근 연구와 조금 연결해 보면, 이제 인류는 다른 차원의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정신적 노동의 영역까지도 침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술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할까요? 근대 이전에는 지력의 독립적 사용이 다른 인간의 권위에 의해 제한됐다면 이제는 기계에 의한 과도한 지적 의존 상태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학생분들 중 일부는 챗GPT4 등과 같은 인공지능 에이전트를 통해 과제물 작성의 도움을 받아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그 능력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마치 여러 분야의 훌륭한 박사들이 우리의 손 위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매우 싼 비용으로 말입니다. 인공지능과의 공존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마치 그 기술이 없는 것처럼 학생들로 하여금 활용하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교육의 주된 목적 중 한 가지는 인공지능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일텐데, 그 기술의 유혹에 과하게 의존하지 않고 ‘적절히,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인간으로 성장시킨다는 것이 말만큼 쉬운 과업은 전혀 아닐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는 인간 지력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불꽃은 여차하면 기술의 달콤함에 의해 꺼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지력의 불꽃을 지켜나가는 교육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 것인가는 저를 포함한 많은 교육학자들이 고민을 시작해나가야 할 주제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마 제가 올해 연구를 정리하면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음에 또 인터뷰에 초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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