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 스터디는 문화교양학과가 만들어질 때 결성된 5개 대표 스터디의 하나였다. 2004년 3월 문화교양학과가 처음 생기던 해, 강촌유스호스텔로 오리엔테이션을 가던 차 안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정상까지 완주하자 즉, 졸업까지 완주하자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붙인 스터디다. 이후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신입 회원도 줄고, 이왕이면 후배들이 더 좋은 스터디에서 공부할 수 있게 배려하자는 생각에서 선배 회원들이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스터디룸 보증금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 후배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되길 바란 것이다. 스터디를 이끈 동문 선배들은 4월 9일 고성환 총장을 찾아 발전기금 기탁식도 가졌다. 6월 14일 오전 10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K2 스터디 동문들을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K2 스터디는 아쉽게 문을 닫았지만,
마지막까지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았다.
K2 스터디는 졸업이라는 개인의 정상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진정한 ‘정상’에 도달했다.
한때 학우들의 열정으로 빛났던 스터디가 방송대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유산을 남기고 막을 내렸다. 바로 문화교양학과 소속 스터디 ‘K2’의 이야기다. 학습 공동체를 넘어, 학우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학교 발전에 이바지하며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은 K2.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스터디의 해체가 아니라, 진정한 학습 공동체가 무엇이며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K2’, 그 이름에 담긴 의미와 시작
K2 스터디의 이름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K2’에서 따왔다. 이는 “졸업이라는 정상까지 함께 올라가자”라는 결연한 목표를 담고 있었다. K2 스터디 1대 동문회장인 민중근 동문(9기)과 2대 동문회장인 변원숙 동문(10기)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 정상을 향해 나아가되, 겸손함을 잃지 않고 언제든 내려올 수 있다는 겸허한 자세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었다”라고 입을 모았다.
창립 당시 참여 회원들은 서병선 1대 문화교양학과 학생회장(1기)을 비롯해 5~6명이었지만, 오랫동안 자체 스터디룸 없이 더부살이로 운영해야 했다. 스터디 현판 하나도 걸 수 없는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으면서 ‘자체 스터디룸’을 갖춰야겠다는 꿈을 키우다가 강동윤 동문(12기)의 룸 마련 기부금 100만 원을 시작으로, 2019년 권동명 동문(13기)과 살뜰한 살림꾼 이미정 동문(13기) 기수에서 마침내 K2 스터디 현판식을 하게 됐다.
기금은 졸업한 동문과 재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변원숙 회장은 “보증금을 내고 책걸상과 에어컨 구입, 인테리어 비용, 중개수수료를 내고 나니 마이너스 통장이 됐지만, 동문들이 재학생을 돕는다는 취지로 찬조할 때마다 조금씩 더 보태가면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K2 스터디의 운영 방식은 간단했다. 졸업한 선배나 먼저 공부한 재학생이 1학년 후배들이 낙오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6명이 각각 한 과목씩 맡아서 학습지도를 했다.
민중근 회장은 “당시 K2가 시도한 운영 방식을 보고, 다른 스터디에서 공부하던 많은 학우가 저희 스터디로 옮기고 싶어 했다. 이후 다른 스터디들도 K2 스터디가 하는 공부 방식을 따라 하기 시작해 신입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안내했다”라고 말했다.
학업을 넘어 삶의 활력소가 된 공동체
K2 스터디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회원들에게 학업적 지원뿐만 아니라 끈끈한 유대감을 제공하며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했다.
서병선 1대 회장은 “2004년에 문화교양학과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학생회 활동을 병행했는데, K2 스터디를 통해 많은 경험을 쌓았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K2 스터디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저는 학교생활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스터디가 학업 지속에 큰 동기 부여가 됐음을 강조했다.
변원숙 회장은 K2 스터디를 ‘사랑과 졸업’으로 표현하며, 선후배 간의 봉사와 사랑 없이는 졸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힘겹게 공부하고 이겨낸 사람들만의 특별한 ‘정’이 있다고 덧붙였다. 민중근 회장은 K2 스터디를 ‘제2의 인생의 축복’이라고 표현하며, 스터디 동문회 결성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임주연 동문(16기)은 조리사라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문화교양학과의 다양한 과목에 매료돼 입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 역시 문화교양학과와 K2 스터디가 ‘인생의 활력소’가 됐고,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와서 열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K2 스터디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김미선 동문(16기) 역시 처음에는 사회복지학과를 염두에 두고 친구를 따라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했지만, 공부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보는 인식이 달라졌고, K2 스터디 덕분에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살뜰한 살림꾼 총무로 활동했던 이미정 동문은 2015년 어느 날 여고 동창회에 갔다가 방송대를 졸업한 동창들이 ‘방송대는 졸업하기 힘들어 어렵지만, 문화교양학과는 우리랑 너무 잘 맞는 것 같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집에 돌아와 학교 커리큘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2016년에 딸애가 고1이 되면서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그럼 엄마도 같이 공부를 할게, 이렇게 말하고 문화교양학과에 입학했다. 시험 기간에 같이 시험공부도 하면서 약간의 동질감을 가지게 되니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K2 스터디에 정말 많은 애정을 쏟았다.”
그렇게 말하는 이미정 동문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는 문화교양학과를 다니면서 성격이 굉장히 밝아졌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교양학과’라는 이름에 반해 학과를 선택했다는 권동명 동문은 집이 목동 쪽에 있어서 처음에는 다른 스터디에서 활동을 시작하다가 입소문을 듣고 다니던 스터디 ‘몰래’ 가입 신청하고 면접까지 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어 애가 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늦게 가입한 K2가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저희 때에 비로소 뚝섬 서울지역대학 근처에 스터디룸을 가지게 됐다. 물론 동문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 남의 스터디룸에서 눈치 보면서 지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스터디룸을 장만해서 집기를 들이고 내부 정리를 하면서 정말 기뻤다. 그게 엊그제의 일만 같다.”영원한 유산,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기부
승승장구하던 K2 스터디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신입 회원 모집이 어려워지고 스터디 운영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만날 수 없게 되면서 소통이 어려워졌고, 이는 신입생 모집 부진으로 이어졌다. 결국, K2 스터디는 2019년부터 2025년 2월 18기가 졸업할 때까지 운영된 후 문을 닫게 됐다.
권동명 동문은 자신의 손으로 다듬은 K2 스터디룸을 2025년 2월 8일, 황승민, 최정순, 오미숙, 이미정, 김미선, 김은지, 변원숙 동문과 함께 ‘폐쇄’하고 모든 집기를 정리했다.
K2 스터디는 활동을 마무리하며 학교 발전기금을 기부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권동명 동문은 “이미정 총무가 스터디룸을 만들 때 만약 스터디가 없어지면 보증금을 학교에 기부하자고 제안했고, 선배님들도 좋은 취지라고 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부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회원 대부분이 찬성해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민동근 회장과 변원숙 회장은 “후배들이 몇 명 안되는 스터디에서 고생하기보다는 차라리 더 좋은 환경의 스터디에서 공부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것도 먼저 걸어본 선배들이 할 역할이라 생각하고 결정한 일이다. 스터디룸을 정리한 보증금은 얼굴은 모르지만, 더 많은 후배를 위해 학과 발전기금으로 기탁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K2 스터디는 졸업이라는 개인의 정상을 넘어, 공동체 전체의 발전에 이바지하며 진정한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의 아름다운 유산은 앞으로도 많은 학우에게 영감을 주며, 학습 공동체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 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