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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랑, 친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말과 행동 때문에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삶의 현장에 만연하다면
아직 우리는 이것들을 제대로 안다고 볼 수 없다.

“가족끼리 그런 말도 못해?!”,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친구 사이에…?!” …… 오늘도 드라마에서는, 식당 저쪽 한 구석에서는, 길 위에서는, 인터넷에서는 이런 말들이 흘러넘친다. 얼핏 상식이나 더 나아가 의리나 도리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반면, 다닥다닥 촘촘하게 붙어 있는 관계 속에서 거듭된 이런 말들은 우리의 가슴을 가혹하게 후비고 무너지게도 한다. 가족, 사랑, 친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말과 행동 때문에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삶의 현장에 만연하다면 아직 우리는 이것들을 제대로 안다고 볼 수 없다. 잘 모르면서 잘 아는 척하기에 더 꼬여왔다고 하면 지나칠까.   


‘품’은 사람의 ‘가슴’을 직접 가리키면서 윗옷에서 겨드랑이 밑의 가슴과 등을 두르는 부분을 뜻한다. ‘넉넉한 품’은 여유와 포용력이 넓어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띤다. 반면, 본래 웃옷의 앞자락을 가리키는 ‘오지랖’이 들어간 ‘오지랖이 넓다’는 표현은 주제넘게 남의 일에 도를 넘어 간섭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어찌 보면, ‘품이 넉넉하다’와 ‘오지랖이 넓다’는 두 표현의 거리는 한 끗 차이일지 모르지만 그 한 끗 차이가 때로 막다른 벼랑 끝에 선 사람을 끌어당겨 살리거나 떠밀어 해칠 수도 있다.


돌아보면, 우리를 포함해 주변에는 온통 ‘무자격자’투성이다. 가족을 모르고 사랑을 모르고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 모른 채 관계를 맺고 사고를 일으킨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직간접으로 엮인 수많은 관계들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생에서 더 힘 있게 미래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무자격자’들의 우연한 상담에 대한 재밌는 소설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2)이 있다. 잡화점 주인인 나미야씨와 동네 아이들 사이에 장난처럼 시작된 상담이 진지한 무게를 더해간다. 그러던 차, 노년의 삶을 마감해가는 나미야씨의 빈 잡화점에 들어와 느닷없이 상담을 떠맡게 된 도둑 3인방의 좌충우돌 ‘무자격’ 상담기는 상담의 자세, 무게, 자격,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촉발한다. 나미야씨의 잡화점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이 엮이면서 여러 인간관계의 파괴로 인해 파편이 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이 기존의 관계와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 커다란 빛의 원으로 연결되고 희망과 가능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상담의 에피소드들이 잡화점을 중심으로 벌어지나 조언을 구하고 받는 구도는 그리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누구로부터 상담을 받고 누구에게 상담을 해주는지 잘 모른 채로 마치 하늘이 맺어주듯 희한하게 상담이 벌어진다. ‘무자격자’들이 갑작스레 떠맡겨진 상담을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넉넉하게 감당하고 그 과정에서 이들 스스로도 치유되는 밑바탕에는 자기 삶의 어려움을 마주해 그저 지극히 구하는 어떤 마음, 그리고 그에 정성껏 답하려는 마음이 있다. 


온 마음으로 서로 답을 구하고 들어주기, 지금 아는 것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묻기, 상대의 말을 내 생각과 도덕과 잣대의 뜰채로 걸러 듣는 것이 아니라 티 없이 온전히 흡수하기, 비록 상담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그래서 어떤 굉장한 활약을 펼치지는 못해도 진심과 정성을 다하기. 그럴 때, ‘무자격자’들을 동원해서라도, 인터넷의 댓글 하나를 통해서라도, 지나치는 사람의 눈빛 하나를 통해서라도 어디선가 답이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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