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편입하기보다는 학점을 따기 위해 요점만 봤던
책을 학점과 관계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읽기로 했다.
올해로 방송대와 인연을 맺은 지 꼭 25년이다. 어느새 나이도, 학교에서 보낸 시간도, 꽤 많은 축에 드는 노령의 재학생이 됐다. 8월 27일에 네 번째 학과를 졸업하게 된다.
일간지 기자로 재직하면서 중견 작가로 활동하던 필자는 국문학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일념으로 2001년 3월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1학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성적이 나빠 전 과목 과락을 맞기도 했다. 2000년대는 중간·기말 평가가 모두 객관식이었고, 과제물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어서 계속 등록했다.
12년 후, 법학과에 편입해 8년을, 청소년교육과에서 3년, 이어 문화교양학과에서 2년을 거치면서 25년 만에 4개 학과를 마쳤다. 중요한 것은 한 학기도 휴학하지 않고 다녔다는 것이다. 휴학을 하게 되면 못 다닐 것 같았다. 특히 ‘학보’가 소개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졸업하는 학우들의 글은 필자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25년 동안 시험준비를 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학점도 평균 ‘A’를 받았다. 그러나 책에서 얻은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얻은 이득은 무엇인가? 배우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학점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한 것이다. 여러 학과를 졸업했지만 실상 아는 게 없다는 데 회의감이 들었다. 학교 방침도 재입학을 권유하지만, 필자는 이번에 ‘25년 만의 안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당장 편입하기보다는 학점을 따기 위해 요점만 봤던 책을 학점과 관계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읽기로 했다.
25년의 세월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심정을 교수이기도 한 선배에게 털어놓았다. 며칠 후 선배는 필자에게 구멍이 뚫린 항아리 하나를 주며 물을 가득 담아오라고 말했다. 구멍이 뚫린 항아리에 물을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서 정말 쓸데없는 과제라는 생각에 혼란을 겪었다. ‘오기’로 다시 텅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다. 몇 번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좌절을 느꼈다. 결국 선배에게 나는 ‘포기하겠다’라고 말했다.
선배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패한 게 아닐세. 항아리를 보게. 지금 깨끗하지. 새 항아리처럼 보이지 않는가. 구멍으로 물이 빠져나갈 때마다 항아리의 오물들이 씻겨 나간 것이라네. 똑같은 일이 자네에게도 일어나는 것일세. 자네가 책 한 권을 읽을 때 자네 마음은 숭숭 구멍 뚫린 항아리와 같지. 책 속의 정보는 물과 같지. 책을 읽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다네. 하물며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할 필요가 있겠나? 아닐세. 책은 자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지식과 감정, 그리고 자네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정서와 진리를 제공하지. 책 한 권 읽을 때마다 자네는 정신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네. 새로운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지.”
그렇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어도 구멍의 물이 빠져나갈 때마다 항아리의 오물이 씻겨 나가듯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며 정서와 진리를 제공한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25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방송대를 졸업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서 본다면, 하루 한 시간씩만 책을 봐도 졸업할 수 있다. 졸업하기 힘든 것은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바뀐 게 없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필자는 도전 정신으로 살아왔다. 경비행기 조종사로 하늘을 날아보았고, 스쿠버로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기도 했다. 연극도 하고 오페라 가수로도 활동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동안 제대로 읽지 못했던 책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림을 그릴 것이다. 구름을 그릴 것이다. 한 가지를 오래 하다 보면 자기 색깔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계속 반복해서 붓을 잡을 것이다. 온전한 내 작품이 나올 때까지,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만족’은 못 느끼겠지만, 그래도 붓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이렇게 평생을 지내도 너무 재밌고, 할 게 너무 많아 늘 행복하다. 성공한 사람의 달력에는 ‘오늘(Today)’이라는 단어가 적혀있고 그의 시계에는 ‘지금(Now)’이라는 로고가 찍혀 있다. 내일(Tomorrow)보다는 오늘(Today)을, 다음(Next)보다는 지금(Now)을 외치는 멋진 학우들이 많았으면 한다. 세상의 꿈을 줄 수는 없지만, 희망은 빼앗지 못하게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