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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때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남의 기회를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1988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등학교 친구였다. 서울로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가니 함께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당시 모 제약회사에서 재직하고 있던 때였는데, 함께 친구를 만나러 간 곳은 서울의 유명한 한 화훼재배 단지였다. 여기에 얽힌 긴 사연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고, 아무튼 이 만남을 계기로 필자의 삶이 바뀌고 말았다는 것만 강조하고 싶다.


회사에 사직서도 내지 않고,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토지를 임대하고는 무작정 오피스텔 사무실을 냈다. 화훼 재배 단지를 이용한 자연학습장을 만들면 서울 강남이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잘될 거란 짧은 생각에 저지른 착오였다. 땅 파고 풀 뽑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체계적인 전문 지식은 전혀 없던 상태였다. 이듬해 1989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송대 농학과에 무작정 지원했다.


그렇지만 일하면서 방송 강의를 들어가며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농학과에 진학했지만, 무계획, 무지식, 고집이 부른 욕심이었음을 알게 됐다. 젊은 나이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 놓치고 말았다. 고마운 분들에게 누를 끼치고, 결국 포기 아닌 방치를 하고 말았다.


길고 긴 방치에서 탈출한 것은 33년이 지나서다. 2022년, 필자는 용기를 내 학교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공부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재등록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과는 안 되며,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2023년 농학과 1학년에 재등록을 한 후 서울지역 농학과 OT 행사장을 찾았다가 무작정, 영문도 모른 채 스터디 가입 원서를 썼다. 스터디 OT에 참석한 1학년 학우들은 17명쯤 되는 듯했다. 학습국장이 1학년 운영진을 정해야 한다며, 하고 싶은 분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공이 나에게 넘어오면 어쩌나 불안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그렇게 타의에 의해 ‘1학년 팀장’을 맡게 됐다. 이 또한 만남의 끈이다.


많은 분들의 추천으로 서울지역 농학과 1학년 대표가 돼 처음으로 학생회에도 참여했다. 어느 날은 누가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다른 학과 학생회 사무실, 서울총학생회 사무실, 전국총학생회 사무실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어떤 행사든 찾아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봉사활동을 자원하기 시작했다.


필자의 방송대 생활을 확 바꾼 사건은 2024년 마라톤 축제였다. 여기서 김흥진 50·500 프로젝트 사무총장을 만났다. 김 사무총장은 방송대의 미래 50년을 위한 500억 발전기금 모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재학생 신분인 필자에게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사무차장’ 명함을 만들어줬다. 이것이 계기가 돼 올해 5월부터 ‘방송대 발전후원회’ 사무차장으로 학교를 위해 봉사하기에 이르렀다. 발전후원회 사무국에 참여하면서 동문회, 학생회 등과 연대감도 깊어졌고, 학교의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뿌듯함도 커졌다.


방송대는 단순한 ‘학교’ 그 이상인 대학이다.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따뜻한 공동체이며, 나이와 여건을 뛰어넘어 누구나 배움의 길을 이어갈 수 있는 열린 배움터다. 필자 역시 방송대에서 제2의 인생을 아름답게 설계하면서 못다 한 꿈을 이어가고 있다. 우연한 만남은 깊은 우정이 됐고, 그 우정은 서로의 믿음으로 피어난 사랑으로 두터워졌다. 우리 학우님들의 꿈도 함께 이뤄지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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