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 실현된다면 우연이 아니라 간절한 소망과 필요가 그곳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또 당연한 것도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솟아오르는 그 무엇에 방황하기도 한다.
20대 초반에서부터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동안 언젠가 방송대 학생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국문학과나 영문학과를 지원했으나 일과 육아, 심약한 나의 의지 그리고 어렵기만 한 방송대 강의 등을 이유로 포기하고 말았다. 은퇴를 하면 다시 시작하리라 하고 미뤄뒀다가 올해 드디어 ‘문화교양학과’에 편입해 3학년 1학기를 마쳤다.
그동안 나는 미술학과, 영문학과, 국문학과, 상담심리학 등을 두루 공부했고, 중국, 뉴질랜드 어학연수 등을 마치며 졸업했다. 그렇게 끝없는 공부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파우스트처럼 늘 학문에 대한 갈증과 목마름이 있었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나이를 극복하고 성장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문화교양학과는 영화, 소설, 여행,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새로운 시각으로 사고하게 했다. 뒤돌아보니 내가 그동안 체험했던 ‘경험과 책읽기’는 과제물 작성에 큰 도움이 됐다.
학기 초에는 원격교육이라서 막연하고 막막했다. 방송대 강릉시학습관을 찾아 도움을 청하면 조교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과 격려의 말씀을 주셨는데, 그게 큰 위안이 됐다.
문화교양학과에서 공부하기 전부터 역사의 현장, 박물관 갤러리, 영화와 공연들을 볼 때마다 안내자료 및 프로그램들을 알뜰하게 챙겨와서 다시 살펴보는 습관을 들였는데, 이 습관의 힘이 과제물 글쓰기에 매우 유용했다. 교재에서 접했던 곳을 선택하는 여행의 여정도 달라졌고, 여행 후 안내자료들을 다시 살펴보면서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스스로 명품 학교의 명품 학생이 되고 싶었다.
어느 날 학보 <KNOU위클리>에서 ‘방송대문학상’ 현상 공모전 기사를 보고 무턱대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턱없이 높은 상금 액수도 글쓰기의 욕망(?)을 부추겼다. ‘아마도 능력이 많은 학우들이 많겠지’ 생각하면서 되고 안 되고는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하고 에어컨도 없는 여름 폭염 속에서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더위에 지쳐갈 즈음, 뭐 충분치는 않게 느껴졌지만 결국 등기우편으로 전송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결과가 어떠했냐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낙방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리라. ‘충분하지 않다’라는 그때의 마음 눈금이 옳았다. 그러나 그 글쓰기를 통해 선택의 기로에 서서 시작했던 시퍼런 청춘의 시절에서 노년기까지의 나의 삶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큰 수확이 아니겠나.
어찌 됐든 낙방이라는 소식은 즐거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또다시 스스로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까짓 ‘공모전 실패’쯤이야 거뜬히 극복하고 더욱 성장하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헤르만 헤세 같은 문장의 대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고꾸라지며 어려웠다는데 하물며 내가 뭐라고 불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겠다.
도올 김용옥의 공자 특강을 들으며 고독하기 짝이 없는 처지에 뻐근한 위로를 받았다. 그래, 나는 공자님처럼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게 분명하다.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나의 자존감은 갈수록 높아지겠지. 스스로 자라고 싶어서 다시 강좌를 들어본다.
공모전 낙방을 어떻게 스스로 위로했느냐고? 정직한 노력에 끈기를 더하라! 큰 노력에 끈기를 더하라고 내 자신을 타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