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강성남의 그노시스

관용(寬容)이나 관대(寬大)에서 관(寬)은 본래 넓은 크기로 지어졌던 방을 뜻했다. 후에 사람의 심성이나 배포를 넓은 방에 비유하게 되면서 ‘너그럽다’라는 뜻을 갖게 됐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삶의 공간이 넓으면 사람이 관대해지게 마련이다. 즉 가진 게 많으면 관대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서양의 관용(tolerance)이란 단어는 인내, 강인함, 고통이나 역경을 이기는 힘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타인에 대해서는 편견이나 엄격함이 없는 경향을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 외에 관용에는 허용오차의 뜻도 있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대에 오차가 발생할 때 허용할 수 있으면 이게 관용이다. 주조(鑄造)에서 허용하는 무게 변동의 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리학에서는 원래 독소의 작용에 대한 저항의 힘,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힘을 가리킨다. 관용의 의미가 참으로 다층적이고 다면적이다.


지난 6일 발표한 2025년 노벨생리의학상은 미시 세계의 ‘관용’을 연구한 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인간 면역체계의 경비병 역할을 하는 ‘조절 T세포’의 비밀을 아주 오래전에 밝혀낸 공로다. 조절 T세포는 다른 면역세포를 감시하면서 우리의 면역체계가 외부 침입자들은 공격하고 우리 자신의 신체는 ‘관용’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조절한다. 관용이 없다면 면역세포들이 자기 조직을 무차별 공격하게 된다. 암을 비롯해 류머티즘, 제1형 당뇨병이 생기는 이유다. 결국은 관용이 우리를 살린다는 말이다. 이미 면역학에는 ‘말초 면역 관용’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가 있다.


도리스 매르틴(Doris Maertin)의 책 『아비투스: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 자본』(배명자 옮김, 다산초당, 2023)에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의 값을 묻는 아이가 나온다. 25센트라는 점원의 답을 듣고 손에 쥔 동전을 세던 아이는 셔벗 아이스크림의 값을 다시 묻는다. 점원이 20센트라고 답하자 아이는 셔벗 아이스크림을 고른 후 동전을 탁자에 올려놓고 나갔다. 계산서와 동전을 본 순간, 점원의 코끝이 빨개졌다. 탁자에는 25센트가 놓여 있었다. 아이는 점원에게 팁을 주기 위해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포기한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당신은 볼 수 없는 것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관용 또는 관대함이나 자부심도 역시 그렇다. 철학자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이 관대함을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주는 것”, 자부심을 “필요한 것보다 적게 취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듯이, 셔벗을 고른 아이는 우리에게 관대함과 자부심의 실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관용과 용서의 부재로 인한 전쟁과 폭력,

내란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와 생존은 관용과 용서를
전제로 한다.


소설『대지』를 쓴 펄 벅 여사가 1960년 11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경주 근처에서 감나무에 감 몇 개가 매달린 이유를 물었다. “저 감들은 따기 힘들어서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저건 까치밥입니다. 배고픈 겨울새의 몫이죠.” 이 말을 들은 그녀는 “나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봤다”라고 말했다. 서양에 관용의 정신 ‘톨레랑스’가 있다면 우리는 ‘자연에 대한 관용’을 표시하는 징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타계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나님은 항상 용서하고, 인간은 가끔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자연은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절대 타협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이 자연에 대한 관대함을 지녀야 하는 이유다.


국가권력은 의견 문제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다른 의견, 다른 세계관을 갖는다고 해서 거품을 물고 미쳐 날뛰는 일이 왜 필요한가. 어째서 끊임없이 경찰을 부르고 살인에 이르도록 미워한단 말인가. 혼자만이 옳다는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오직 높으신 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때로는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런 탄압과 박해들이 일어난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와 뜻이 다르더라도 박해받는 타인을 포용해야 한다는 볼테르의 관용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관용과 용서의 부재로 인한 전쟁과 폭력, 내란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와 생존은 관용과 용서를 전제로 한다. 상대를 용서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내가 용서한다고 선언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내가 시원하다’라는 느낌을 준다. 둘째, 용서 대상보다 큰 가치를 생각하고 더 높은 관점에서 생각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용서 대상이 아주 작아 보이면서 용서할 마음이 생긴다. 셋째, 자기 성찰을 하는 방법이다. 나도 그리 잘나지 않았고, 나 역시 오류투성이라고 반성하면 상대방의 잘못도 용서하게 된다. 이렇게 용서하면 내가 정신적 감옥에서 나를 구원한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자유롭다는 건 세상을 이겼다는 것이고, 용서한다는 것은 자기를 이겼다는 뜻이다.

방송대 명예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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