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49회 방송대문학상

조용한 서점
                                                                         김혜미


읽을 때마다 사라지는 당신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종이 결 밖으로 밀려 나오는 장르 없는 장르처럼
정갈하게 배열되지 않은 세상 일어나 첫 장을 넘기고
그림자 한자리에 고여있다

공존하는 조명 아래 가라앉은 바탕
오래된 표지 가장자리 얇은 두께로 열어둔다
계절을 설명하는 단 한 장의 해설

책장의 감정마다 꽂아 둔 문장이 가장 안쪽을 결박할 땐
날카롭게 떼어진 무수히 어긋난 것들이 바닥을 울린다

주석 없이 누워있는 고통의 형상들
끊어진 글마디에 세워둔 뭉개진 검은 흔적이 사선으로 넘어지자
떨어져 앉아 책을 읽던 사람들 저마다의 서사로 한곳에 모인다

아무도 읽지 못하게 써 내려간 여백의 하루
침묵이 일어나 빈 공간을 낭독하면
드디어 당신의 마지막 장이 태워진다

마른 향이 흩어지며 반사된 빛의 소리
바스러진 채 되돌아온 문장은 다른 소설을 완성하고
타다 남은 이월된 기억은 다음 권으로 넘어간다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