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제49회 방송대문학상

2025년 제49회 방송대문학상 시 부문은 응모작 편수가 예전보다 줄어들었으나 작품의 수준이 높아졌고 시적 인식의 방향성 등이 인상적이고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많았다.


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시적 상상력에 의해 보이는 세계로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감정의 직접적인 설명이나 하소연, 익숙한 깨달음의 나열 등은 시의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당선작 김혜미의「조용한 서점」과 가작 이은희의「여름 감기」는 시적 아름다움이 세심하게 구현된 좋은 작품이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다음과 같다. 신양섭의「늙은 아이와 황혼」, 김우진의「엄마의 바이크」, 채승순의「유다락」이다.


신양섭의「늙은 아이와 황혼」은 삶의 마지막 단계를 황혼의 이미지와 연결하고 거침없는 문체로 유장함을 자아내고 있다. 어둠이 죽음을 환기하는 상징은 익숙하기도 해서 아쉬웠다. 화자의 구체적인 삶의 양태들을 보여준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김우진의「엄마의 바이크」는 바이크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어린 화자의 시선이 잘 드러나고 있다. 자유를 찾아가는 엄마와 그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화자의 정황이 생생함을 전달한다. 정황에 대한 시인만의 시적 인식을 더 밀고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채승순의「유다락」은 어린 시절 부모 몰래 다락에 올라가 책을 읽는 아이의 모습을 천진하고 유쾌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추운 다락에 쥐가 들락거려 아이가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이솝우화, 단군신화, 에드거 앨런 포 등 그 안에서 읽어내는 놀라운 세계는 아이를 새로운 존재로 만들었을 것이다. 화자의 성장담에 의미를 더 부여한다면 좋겠다.


이은희의「여름 감기」를 가작으로 선정했다. 코르시카 해변에서 사온 부채를 서랍에서 발견하면서 과거의 시간이 현재 화자의 마음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물길이 무릎을 감싸며 흐르던 그 섬엔/ 부채 끝에 얹어 날려 보내는 돌 하나 둘 쌓여/ 머지않아 돌담이 생겨날 거야”라는 구절은 단순한 관광지의 풍경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억들이 돌처럼 단단하게 현재의 마음 안에 쌓여 아름다운 돌담을 이루는 감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적 시간이 서로 뒤섞이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여름 감기의 의미와 부제로 붙은 기억의 체온에 대한 상징이 더 전달되면 좋았을 것이다.


김혜미의「조용한 서점」은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 삶의 순간들과 책의 물성을 연결하는 감각이 날카로우면서도 유려하고 세심하게 구성돼 있다. 삶의 갈피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각각의 문장들로 담겨 있는 시적 상상이 공감을 자아낸다.


“책장의 감정마다 꽂아 둔 문장이 가장 안쪽을 결박할 땐/ 날카롭게 떼어진 무수히 어긋난 것들이 바닥을 울린다” 같은 구절은 삶의 깊이와 시적 감각이 잘 연결돼 인상적이었다. “마른 향이 흩어지며 반사된 빛의 소리/ 바스러진 채 되돌아온 문장은 다른 소설을 완성하고/ 타다 남은 이월된 기억은 다음 권으로 넘어간다”라는 끝맺음 또한 삶과 죽음이 각각 한 권의 책이자 전집 시리즈처럼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식이 돋보였다.


시를 쓰는 일은 세상을 새롭게 사는 일이다. 시적 현실 안에서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된다. 많은 응모작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영주  시인
2000년〈문학동네〉로 등단. 시집『108번째 사내』,『언니에게』,『차가운 사탕들』,『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등을 냈다. 영문시선집 cold candis, 산문집『백 일의 밤 백 편의 시』등이 있다. 2022년 미국 루시엔 스트릭상을 수상했다. 방송대 대학원 문예창작콘텐츠학과 외부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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