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우리는 인지적 공감을 넘어
정서적 공감까지 받을 수
있을 때 상대를 신뢰하게 된다.
AI 챗봇이 보내는 반쪽 공감이
아닌 우리의 온전하고 완성된
공감 때문에 감동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평소 다니는 병원 로비에 들어서며 만나는 안내 로봇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마치 병원 직원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일부 병원에서는 약품, 물품, 검체를 나르는 배송 로봇, 환자 짐을 옮겨주는 로봇, 소아 환자 대상으로 재미있는 게임을 탑재한 로봇,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을 안내하고 키오스크를 살균하는 방역 로봇, 환자 병실을 다니며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회진 로봇 등 인공지능 로봇을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 의료진과 환자는 이들 로봇을 거부감이 없이 반기고 있다. 이제 의학적 진단과 치료는 물론이고 환자 돌봄 역할도 AI 기술로 대체되고 있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의 신체적 기능을 돌보는 일은 물론이고 환자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까지도 인공지능 로봇이 맡게 되는 것 아닐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이제 연애 고민, 진로 걱정, 가족 간 불화 등 심적으로 괴로울 때 챗GPT와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어떤 이야기에도 화내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주고 비밀 유지도 된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고, 돌아오는 챗GPT 답변을 보면 자신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서 위로 받는다고 말한다.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챗GPT에 ‘돈 때문에 죽고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이야기하자 그건 살고 싶은데 지금 너무 힘들다는 의미일 거라고 말하며 조금 더 같이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미숙한 우리 인간 대신 AI 챗봇이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을 이렇게 잘 할 수 있으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AI는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표준국어대사전)을 말한다. 즉 AI는 데이터를 활용해 인간의 인지 활동을 모방할 수 있지만,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AI 챗봇은 우리가 입력한 메시지를 분석해 감정을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은 하지만 실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공유하는 정서적 공감은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챗GPT는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당신이 크게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어요”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당신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어요”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은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AI 챗봇을 의인화해 대하면서 마치 AI 챗봇이 우리처럼 감정을 느낀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AI 챗봇의 인지적 공감만으로도 만족하는 우리에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정서적 공감은 불필요한 것일까? 우리는 AI 간병 로봇에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고 진정한 의미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인지적 공감은 잘 하지만 정서적 공감은 하지 않는 간병인과 대화한다면 어떻게 느낄 지 상상해보자. 자신의 인간적인 감정을 공유할 수 없기에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고, 진정한 의미의 돌봄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를 닮은 AI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에 우리 인간 본성, 인간 삶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서적 공감 능력은 AI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고, 미래 인간 사회를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귀한 것이다. 우리는 상대에게서 인지적 공감을 넘어 정서적 공감까지 받을 수 있을 때 외롭지 않고 상대를 신뢰하게 된다. AI 챗봇이 보내는 반쪽 공감이 아닌 우리의 온전하고 완성된 공감 때문에 감동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박은준 편집자문위원·간호학과 교수


2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