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죽음에 대한 현대 기술의 대답

더욱 진보한 기술이 만들어낼 디지털 클론은 지금과는 어떻게 다를까?

자의식을 가진 당신의 분신이 메타버스 안에서 살아가게 될까?

멀지 않은 미래엔 디지털 클론의 생성 여부가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슈퍼인텔리전스』를 쓴 철학자 닉 보스트롬, 일론 머스크, 고대 중국의 진시황, 드라큘라, 키부츠지 무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죽음이라는 운명에 맞서 영생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과 연구자들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정체성을 복제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공상과학의 소재로만 보이지 않는 디지털 속 생명 연장의 꿈은 어디까지 진전됐을까? 관련 기술의 현주소를 찾아봤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2020년 MBC에서 방영된 「너를 만났다」에선 희귀병으로 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강나연 양의 외형과 음성을 모션 캡처, 가상현실(VR), 음성 합성 등의 기술로 재현하고, 엄마 장지성 씨와 만나게 했다.


가상현실 속 나연 양은 VR 기기를 착용한 엄마에게 “나 보고 싶었어?” “사랑해”라고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와의 상호작용이라기보다는 미리 녹음된 음성을 재생하는 것에 가까웠다. 또 엄마는 아이를 쓰다듬고 안아주려 했지만 그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잠시 아이의 환영을 만난 엄마는 물론이고 전 세계 수천만의 시청자가 눈시울을 적셨지만 일각에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장기적인 심리적 영향에 대한 숙고 없이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기획이며, 이 같은 방식으로 망자를 만나는 것은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애도 과정을 왜곡할 뿐 아니라 유가족을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었다.


공감과 비판으로 갈린 각계각층의 반응과는 별개로, 이 방송에서 영감과 동기를 얻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살아있거나 살아있었던 사람의 디지털 클론(clone, 복제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스타트업 차원의 시도, 챗봇

다음 내용에서 소개하는 프로젝트들은 「너를 만났다」에 비해 개인의 기억, 성격, 어휘, 지성 등의 내적 특성에 초점을 둔다. SNS 게시물 추천 내역 같은 단편적인 정보로도 개인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2015년의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 결과에 고무된 시도들로 보인다.


미국의 기자 제임스 블라호스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구술을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했고 이를 바탕으로 생전의 아버지와 같은 목소리로 가족과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챗봇, 일명 대드봇(Dadbot)을 만든다. 그는 이러한 경험과 레이 커즈와일의 지지에 힘입어 2019년 히어애프터 AI(HereAfter AI)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디지털 클론 생성 서비스를 시작했다. 3년 후인 2022년엔 고객이었던 마리나 스미스가 사망한 후 생전 모습과 음성을 고스란히 지닌 채 장례식장 스크린에 등장해 유가족, 조문객과 대화를 나눠 화제가 됐다.

 

그보다 앞서 마리우스 우르자헤는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지원을 받아 2017년 이터나임(Eternime)을 설립했다. 이터나임은 대체로 죽음을 앞둔 사람을 대상으로 하며, 그들의 성격과 기억, 음성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디지털 클론을 만든다.


유사한 스타트업 프로젝트 중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레플리카(Replika) 앱은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AI 친구 또는 연인을 만들어주는데, 비영어권 사용자에겐 더할 나위 없는 회화 연습 상대이기도 하다. 레플리카의 개발자 역시 친구를 잃은 경험이 사업 구상의 계기라고 밝혔다.

 

빅테크 기업과 디지털 클론

앞에서 소개한 스타트업 프로젝트들은 대중의 접근성이나 연구개발 규모 등에서 제약이 있다. 사전에 준비된 유형별 질문에 대한 사용자의 답변에 의존하므로 한정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생성된 디지털 클론이 주로 과거 지향적인 주제로 이야기하게 된다는 한계도 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메타(구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이 디지털 클론을 만든다면 어떨까?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이들은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실시간으로 무제한 수집할 수 있으므로 인간에 가까운 디지털 클론을 만드는 데 있어 스타트업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다. 또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생성형 AI 덕분에 빅테크 기업의 디지털 클론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속적으로 학습하면서 ‘원본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창조적 능력을 보일 수도 있다.


이런 글로벌 기업들이 과연 디지털 클론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까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2017년에 죽은 사람의 음성·영상, 이메일 내용과 SNS 게시물 등의 데이터를 활용한 대화형 챗봇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고 심사를 거쳐 2020년에 등록됐다.


메타와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뇌와 컴퓨터의 직접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BCI)를 개발 중이며, 이미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 BCI 장치를 착용한 채 생각만으로도 스크린의 커서를 조작하고 글을 입력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일론 머스크의 두 멘토로 알려진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과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알코어생명연장재단에 사후 냉동인간이 되겠다고 자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 중 특히 보스트롬은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에 대해 연구해왔는데, 이 기술은 죽은 사람의 뇌를 해독해 그 안에 담긴 기억과 정신적 특성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뇌 구조와 작동 기제를 파헤쳐 인공신경망 개발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기업의 AI 개발에도 참여해왔다. 또 인지과학자들은 일체의 정신 작용을 뇌라는 하드웨어에서 진행되는 정보 처리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의 자아를 디지털 기술로 복제하려는 시도를 촉진했다.


‘덜 위험한’ 응용 사례

디지털 클론에 대해선 20여 년 동안 윤리적·철학적 우려와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디지털 클론 중에는 이러한 비판이 부당해보이는 사례도 있다.


안네 프랑크의 의붓 자매인 에바 슐로스는 이제 몇 남지 않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목소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한 ‘포에버 프로젝트’에 동참해 자신의 디지털 클론 생성을 승인했고,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그의 분신은 영국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많은 관람객에게 나치의 만행과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2020년의 TEDx 강연에서 기업가이자 작가인 피트 트레이너는 표피수포증이라는 희귀질환을 가진 소년 제임스 던에 대해 소개한다. 제임스는 피부가 너무 약해 사소한 자극에도 손상되기 때문에 유아기부터 붕대로 온몸을 감싸야만 했고 두 발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는 챗봇을 개발 중이던 피트를 만나 디지털 클론 제작을 부탁했다. 제임스는 피트와 함께 1년간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신의 기억을 저장했고, 그 데이터는 보(Bo)라는 로봇에 입력돼 또 하나의 제임스로서 시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제임스는 결국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기계나 데이터가 되어서라도 신체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의 꿈은 일정 부분 실현된 셈이었다.


현실로 다가온 ‘또 다른 나’

앞에서 소개한 스타트업 프로젝트와 유사한 ‘디지털 자아 생성’ 아이템이 올해 방송대 경영대학원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수상했는데, 기자 역시 비슷한 구상을 오랫동안 했었다. 11월 2일 방송대학TV 「지식플러스」 강연을 맡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도 다수의 칼럼에서 마인드 업로딩과 디지털 클론 관련 개념을 다뤄왔다.

 

국내외에서 AI 심리상담 에이전트들이 개발 중인데, 이것들은 고도의 공감 능력과 전문성을 요하는 심리상담자라는 직업에 대한 디지털 클론이라고 할 수 있다. AI 심리상담에 대한 찬반 논쟁은 그것이 실험 단계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기술로 만들어낸 ‘가상 인간’은 이미 아이돌이나 인플루언서, 앵커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더욱 진보한 기술이 만들어낼 디지털 클론은 지금과는 어떻게 다를까? 자의식을 가진 당신의 분신이 메타버스 안에서 살아가게 될까? 멀지 않은 미래엔 디지털 클론의 생성 여부가 각자의 선택에 달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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