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구겨진 풍경이 잔상으로 남아 끼적이며 보낸 시간이 보태지고 보태져 또 한 권의 시집을 상재하게 됐다. 첫 시집『기형도』를 세상에 내놓은 지 두 해가 지났다. 친구 기형도의 이름에 누가 된 것은 아닌지, 시간은 날카로웠고 사이의 공간에 머무는 것은 늘 두려웠다. 이제는 오롯이 내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작심했다.

 

섬과 선과 음악, 밤과 책과 시간의 투명한 기억 속 낙원상가가 퍼뜩 떠올랐다. 오래도록 낙원상가를 어슬렁거렸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처럼 슬픔이 스몄다. 단 한 문장만 쓴다면 무엇이라 쓸까? 시집 제목을『낙원상가』라 정했다. 낙원상가와 음악, 낙원과 죽음을 이야기해 보려는 과분한 꿈을 꾸었다. 손이 망설일 때마다 비탈리의「샤콘느」를 들었다. 칼 융은 “산문은 의식의 언어이며 시는 무의식의 언어”라 했다. 내 무의식 속 구조적 언어(자크 라캉)를 찾아 동틀 녘까지 토끼 눈이 되어 보챘다. 시는 나를 표현하는 것일까, 나를 창조하는 것일까? 수전 손택이 말한 “글은 아이디어로 생각하지 말고, 단어로 생각하라”라는 문장은 무시로 흔들리는 마음의 길잡이가 됐다.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한 단어, 한 문장을 만나는 일이란 무장무애 아름다운 발걸음이다. 마실을 돌다 소풍을 가다 여행에 이르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한 편의 변주가 된다.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순간순간이 예민해진다. 그 긴장감이 참 좋다. 깨어 있는 삶을 살고 싶으면 자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로는 침묵의 힘을 믿는다. 팽팽한 감각을 일으켜 세워 침묵으로 말할 때 시어는 힘을 갖는다. 침묵이 있어 시의 맥락은 형성된다. 나는 이번 시집을 만들며 이것들을 걸음마 하듯 하나하나 다시 디뎌보았다. 고된 순간들이었지만 행복했다.

 

가장 경계한 것은 시가 늘 젊음을 잃지 않도록 숙고하는 일이었다. 늦깎이 시인이라고 시도 따라 늙으면 안 되지 싶었다. 시는 싱싱해야 한다. 사유는 깊되 표현은 젊어야 한다. 메타포는 은밀해야 하고 언어는 살아 펄떡여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시를 쓰는 많은 문우도 이런 혼돈의 벽에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꾸역꾸역 써 내려갔다. 끝을 예측하지 않았다. 어느새 훌쩍 시집 한 권의 분량이 채워졌다. 그사이 내 생각과 손을 거쳐 버려진 많은 언어 앞에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버려야 채워지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습작의 시간은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나도 그렇다. 가끔은 시를 쓰는 일이 대수롭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효능감을 느끼기는 더욱 어렵다. 한 걸음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차이와 반복의 리듬 사이, 가깝거나 멀거나 출렁이며 스미는 것. 시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클리셰가 단순한 클리셰에 그치지 않음을 배운다. 질투, 집착, 욕망, 분노, 망상 등은 매우 구체적인 사랑의 변주들이다. 그런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싶었다. 과연 이뤘는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고 위무했다.

 

시집 발간 후 새로 쓴 시의 한 조각을 학우님들과 나누며 세설을 줄인다.「야생화」라는 시의 네 개 연 중 마지막 연이다.

 

한 번만이라도 갸륵해 보고 싶었던
청산 꽃그늘 언저리 가없는 꽃무덤
13월 장대비에 슴새가 날아
내 마음 소슬한 어린 누이 꽃무덤

 

학우님들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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