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거주하는 이숙영 학우(65세, 영문 3)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공무원 생활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 평범하지 않은 삶의 궤적을 그렸다. 5년 전 뇌수술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삶에서 방송대는 단순히 학위를 따는 곳을 넘어, ‘육체적·정신적 아픔의 고통을 잊게 해준 진통제 같은 곳’이자 ‘삶의 회복과 새로운 목표가 되는 경험을 준’ 터전이 됐다. 올해 제49회 방송대문학상에도 재도전해 에세이 부문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기도 한 그를 이메일로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이후 눈을 뜨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다시 걸음을 떼는 모든 과정이
낯설고 두려웠어요. 익숙했던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했죠.
방송대 공부는 그런 두려움을 이기게 했답니다.
방송대 학우 여러분,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이루지 못한 꿈, 1985년과 2023년의 선택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사대부고를 졸업한 이숙영 학우의 청년기는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교 동기생들은 거의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 자신은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공무원 시험(지방직, 국가직)을 선택해야만 했다. 전매청 공주전매서에서 공직 생활을 하던 그는 더 높은 직위에 도전하고 싶다는 목표와 배움에 대한 뜨거운 갈망으로 1985년 방송대 영어영문학과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실 그가 정말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는 법학이었지만, 불합격할까 염려돼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1985년의 방송대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라디오 강의를 들어야 했기에 집중도 어려웠고, 직장과 육아, 가사를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큰 수술을 받으면서 결국 1학년 때 중도 포기했다. 이후 미국 이민을 떠나 세탁소 비즈니스를 하며 생활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은 이민 생활의 고단함 속에 잊히는 듯했다.
이숙영 학우의 인생 드라마는 2020년에 다시 시작됐다. 뇌동맥 파열로 갑자기 쓰러져 8시간 넘게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후, 재활 훈련을 거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한국에 있는 고교 친구가 방송대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문득 1985년 1학년을 다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다시 방송대에 다니고 싶었지만, 한국으로 직접 가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어려움에 포기하려던 찰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송대에 전화해 보니 놀랍게도 1985년의 학적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답변을 받았죠. 뛸 듯이 기뻤어요. 새로운 희망을 만났으니까요.”
이 학우는 2023년, 1학년으로 재입학하며 38년 만에 배움의 끈을 다시 잡았다. 미국 이민 후 ‘공증인(Notary Public)’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영어영문학 공부는 이민자로서의 삶에 부합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 이 학우는 이를 성경 속 단어인 ‘여호와 이레’(미리 준비해 주심)라고 표현하며 신기해했다.
재입학 후 그가 마주한 방송대의 모습은 과거와 완전히 달랐다. 1985년 라디오 강의 대신, 이제는 핸드폰, 태블릿, 컴퓨터만 있으면 인터넷이 되는 곳 어디에서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완전한 온라인 학습 시스템이었다.
“방송대는 제가 수술 후에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잊게 해준 진통제 같은 곳이죠. 교수님이 강의하시는 모습도 보고, 귀로만 듣던 강의를 눈으로 보며 메모하며, 언제든지 내가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어서 아무 때나 시간 날 때 강의를 들을 수 있었어요. 공부할 때는 이상하게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어요. 건강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보니, 방송대 덕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됐다는 걸 절감합니다.”
‘해외거주학생 제도’라는 선물
재입학 후에도 큰 장벽은 남아 있었다. 바로 한국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점이었다. 1학년 2학기, 형편상 시험을 치러 가지 못해 한 과목 과락을 맞자 또다시 포기하고픈 생각이 피어올랐다. 바로 그때, ‘해외거주학생 모집 공고’가 났다. 그는 서류를 준비해 ‘해외거주학생’으로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해외거주학생 제도는 이숙영 학우에게 진정한 기적의 문을 열어줬다. 시험 없이 전면 과제물 평가를 통해 한국 국립대의 정규 학위를 해외에서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학년 1학기에는 전 과목 ‘A+’를 받았다. 그의 공부 노하우는 특별하지 않다. △반복 청취 △꼼꼼한 과제 작성 △철저한 시간 관리가 그의 공부 비결이다.
“공부를 시작할 때는 유튜브나 TV 시청 대신 강의를 계속 틀어놓고 밥하면서, 출퇴근하면서, 일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들었어요. 과제물 공고가 나면 다시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과제를 작성하며, 다 작성한 후에도 지시사항에 맞는지 강의를 들어가며 수정했죠. 미루지 않고 한 과목씩 차근차근 준비했어요.”
현재 이숙영 학우는 ‘운조의 브런치’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면서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5년 제49회 방송대문학상 에세이 부문에서 당선의 영예(관련 작품 = https://weekly.knou.ac.kr/articles/view.do?artcUn=6096)를 안았지만, 그의 첫 출발은 엉성했다.
“2년 전 1학년 때 응모했던 글은 매우 미숙했어요. ‘선물’을 주제로 응모하기 위해 글을 여러 편 써서 연습했는데, 나중에 수상작을 읽어보니 저의 작품은 아주 초보적인 글쓰기였다는 걸 깨달았죠. 계속되는 과제물 작성과 글쓰기 훈련을 통해 실력이 자라났고, 브런치 작가 활동도 하며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문학상 당선을 예상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솔직하게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는데, 뜻밖의 큰상을 받게 된 거죠. 수상은 정말 뜻깊은 선물이었어요.”
더 넓고 빛나는 곳으로 이어질 도전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그는 몇 가지 계획을 밝혔다. 브런치에 연재해 온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하고 싶어 했다. 이민자로서의 삶과 회복의 경험을 진솔하게 기록해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1985년 꿈꿨던 법학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도 밝혔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학우로서 TESOL 자격증에도 도전해 언어 교육에 대한 전문성을 쌓고, TESOL 자격증을 기반으로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귀띔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영어 동화 작가로서 글을 쓰는 것도 그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해외거주학생으로서 학교에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특히 해외에서도 성실히 공부하는 학우들이 많아요. 이분들이 한국의 대학원까지 자연스럽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해외 학우에게도 대학원 입학의 기회와 지원이 확대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스페인어학과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저희 직원들도 멕시코 사람들인데, 영어를 잘하지 못해요. 그래서 스페인어 학과가 생기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이숙영 학우에게 방송대는 오랜 꿈을 이루게 해준 ‘동아줄’이었으며, ‘고졸’로 대졸 친구들을 부러워만 하던 데서 벗어나 당당히 ‘대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해준 곳이다. 그는 한국의 동료 학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뇌수술 후 저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다섯 살 아이와 같은 제가 재활의 시간과 두려움의 순간을 모두 견뎌냈잖아요.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이후 눈을 뜨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다시 걸음을 떼는 모든 과정이 낯설고 두려웠어요. 익숙했던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 했죠. 방송대 공부는 그런 두려움을 이기게 했답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세요, 학우 여러분. 여러분이 이미 시작한 그 길은 분명 더 넓고 빛나는 곳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