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학우들이 학보 위클리와 만나
학교생활을 유익하게 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졸업까지
아니 그 이후 동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고추장의 고장인 전북 순창, 그리고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 선생의 출생지인 복흥(福興)에서 태어났습니다. 1976년에 농협에 입사해 34년간 봉직하고 정년퇴직했죠. 지금은 시니어 봉사활동으로 아침 학생들의 등굣길에서 교통안전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 문학 소년의 꿈을 꾸었으나 10월 유신이 저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절필(筆)하고 사회생활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래도 꿈을 품고 있었기에 늦게나마 작은 꿈이나마 펼쳐 보고자 2022년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방송대가 설립된 직후,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1974년 행정학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2년제였는데, 1974년에 1학년을 마치고 1975년 2월에 군에 입대하는 관계로 2학년을 마치지 못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어국문학의 지식을 하나하나 얻는 즐거운 마음으로 학업에 임했습니다. 1953년생 칠순이 지난 나이지만 4학년까지 평균 89점대를 유지하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하면서 자료 등을 수집하면 동급 학우들이나 후배들과 공유해 같이 공부하는 풍토를 마련했습니다. 지금도 1학년부터 3학년까지 10여 명에게 멘토링을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퇴직하고 컴퓨터 학원을 하루 6시간씩 6개월을 이수해 엑셀, 파워포인트, 정보화, 워드 등 4개의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 저의 공부뿐만 아니라 주위 학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학년 입학 후 만난 방송대 학보 〈KNOU위클리〉가 학교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애독하고 있는데, 더 많은 학우들에게 위클리를 알리고 싶어 전북총학생회 카페와 저희 국어국문학과 카페(가람문학)에 동문 방도 만들어 게시했고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창간호부터 273호까지 매주 발행될 때마다 공유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위클리를 구독하지 않는 학우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는 정보화 시대입니다. 특히 방송대는 원격 교육기관이므로, 자기 스스로 정보를 찾아야 하는 교육 시스템입니다. 그렇기에 위클리나 방송대 공지 사항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안내자이자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더 많은 학우들이 위클리와 만나 학교생활을 유익하게 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졸업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동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손에 위클리를 들고 1학년 때부터 정보를 공유하다 보니 더 많은 학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생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게 돼 전북지역대학 총학생회 수석부총직을 맡고 있습니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 지역 학우들과 동문 선배들을 모시고 ‘I LOVE 방송대 마라톤’ 축제에 참가했던 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4년간 위클리를 애독하면서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학우들의 눈물겨운 학업 도전과 자기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동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저 자신도 방송대 일원이라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학보 위클리에 졸업한 동문들의 참여 기회를 좀더 넓히면 어떨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동문들 소식을 담고 있긴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선한 영향력을 키우면서 우리 사회를 좀더 밝게 만들고 있는 동문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더 자주 소개해, 후배들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