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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문명 발전의 과정 중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많이 있을 터인데, 그중에는 사회 공동체 내에서의 역할과 신분을 나타내는 ‘직책’이란 것이 있습니다. 오늘, 그 직책 중에 가장 유별나다고 할 수 있는 방송대 일본학과 학생회장에 관한 얘기를 조금 할까 합니다.


나는 제27대, 28대 일본학과 서울 학생회장으로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우연히 TV의 어느 프로그램 중에, 꽤 인기 있어 보이는 「극한직업」을 흘려 보다가, 직업으로 치자면 일본학과 학생회장은 난이도에서 당연히 상위에 오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뭔가 업무에 관련된 사안들이 무척 어려운 점이 많은가 보다’라고 상상이 되겠지만, 이 짧게 한정된 지면에서는 그 얘기를 해 줄 수 없어서 유감입니다.


내가 회장이 됐을 때 일본학과의 학생회 조직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맨땅, 황무지 상태였습니다. 어찌 됐든, 완전히 와해해 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직을 재건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 중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오늘 이 간단한 편지를 통해서나마 그들의 실명을 기록함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라는 표현을 했으니 당연히 엄청난 도움을 받았음에 틀림이 없겠죠?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말을 빌려 고쳐 말한다면, “인류가 회장이란 직책을 사용한 이래, 이토록 훌륭한 다수가 이처럼 부족한 회장을 이만큼 도운 사례가 없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석빈, 꽃보다 막내! 우리 조직의 첫 번째 선생님이 되어 주신 당신께 그 은혜를 받은 모든 학우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하민선, 꽃집의 따님! 뚝섬 팀들이 자리 잡는 것을 조용히 지켜봐 주시고, 목동의 선생님을 맡아 봉사해 주셨습니다. 일본학과에서 이루고자 하는 제 뜻을 정확히 표현해 주심에 그 고마움을 평생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남화자, 넘치는 에너지와 화사한 웃음으로 일관하며 동료들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대의 희생과 봉사로 사사에아이는 2기를 배출해 낼 수 있었습니다.


유혜경, 스터디 평일 반의 개설에 성공한 후 주말반도 안착시켜야 하는 와중에, 인원이 많이 줄어든 목동 팀을 끝까지 맡아 헌신해 주셨지요.


서정자, 살인미소! 늘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사사에아이 1기가 자리 잡는 것을 지켜 주신 후, 목동의 반장을 맡아 봉사하시더니, 서부까지 가셔서 또 동료들을 도와주고 계시지요.


김창숙, 동지여! 내가 미안해서 어떡합니까? 직장 퇴근하고 전철을 3개 노선이나 갈아타고 뚝섬으로 오셔서 그저 정성으로 강의를 해주시니, 이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을 듯합니다.


김무홍, 목동에서 조직이 출범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큰 형님으로서 우리를 지켜 주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최상모, 형, 고맙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을 따라주고 지지해 주셨으니, 기증하신 모니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배용숙, 스터디 룸의 대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경일 중고등학교로 조치를 해주셔서 수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해주시고, 예쁜 명찰과 포스터, 현수막을 만들어 주시어 우리는 처음으로 학생회의 홍보를 할 수가 있었지요.


서재영, 항상 ‘우리 회장님’을 유행어처럼 하셨지요. 댁이 너무나 먼 곳인데 늘 뚝섬으로 목동으로 오시라 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한 번도 내색을 안 하셨네요.


김미희, 영국신사라는 옛말이 이런 분을 모델로 했을 터, 늘 미소 띤 얼굴로 소집에 응해 주셨지요. 아마도, 콧수염이 회장을 100년을 한다 해도 변함없이 지지하셨겠지요.


김희석, 김 선생, 나요. 부탁이 하나 있소(오네가이가 히토츠다케 아리마스). 새 회장의 옆에서 떨(멀)어지지 말고 늘 도와드리기를 앙망하오.


김은희, 내가 학과 깃발 들고 남부에 갔을 때 먼저 말을 걸어 주셨지요. 전공연수 진행 인원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무릎 수술로 병원을 오가는 와중에도 ‘회장님, 제가 앉아서 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몇 시까지 도착할까요?’라고 밤 11시에 전화를 하셔서, 그 회장이 밤새 울었답니다. ‘늦어도 8시까지는 도착하세요’라고 말씀드렸지요?


김갑주, 오늘도 빛나는 갑주를 착용하고 있을 갑주 님. 다른 말이 필요 없겠지요?! 새 회장과도 늘 함께하실 줄을 믿어요.


최덕호, 형님. 그저 건강만 챙기시면 만사형통입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자주 못 드려 죄송했습니다.


이정덕, 형. 입학하시던 날 교내를 둘러볼 때, 학과 팻말을 들고 안내하던 콧수염과 처음 만나신 이후 비상소집에 한 번도 빠지지 않으시더니, 결국은 일본학과 30대 회장에 등극하심을 감축드리옵나이다.


최미애, 커피 미애. 스터디 선생님과 회장에게 한 번도 커피를 빠트린 적이 없으시지요. 그렇게나 여러 번 모였는데도.


이병찬, 이계연, 이지영, 김덕희, 최연일, 이진숙, 이양순, 김성호, 김주환, 노전선, 류지선, 이명애, 이창한, 신태홍, 손정희, 김진천, 고다슬, 충남의 박민주, 성남의 안민선, 대전의 임재옥, 부산의 이현수, 충북의 유영희, 전북의 소병숙, 인천의 박선이, 울산의 박영경, 대구의 이민혁, 광주의 최준혁, 경남의 김지혜, 경기의 최숙경, 박지정, 도쿄의 지정! 서울까지 자주 찾아오시며 우정을 쌓더니만 우리 조직이 손을 못 대던 강원도의 선생님이 되어 주심에 그저 머리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안진선, 친구야! 말 안 해도 알지?


변성재, ㅎㅎ. 일본학과에도 졸업생이 있음을 보여 주신 분. 콧수염의 장바구니 무게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시지요.


안인숙, 학우들을 위하여 내가 마지막으로 모셔온 선생님. 목동 후레아이 주말반을 맡아서 또 하나의 역사를 쓰고 계시지요.


윤봉중, 신은식, 김정숙, 이수경, 이병택, 이만선, 임형진, 정창헌, 김태호, 이광옥, 옥재순, 신호룡, 송광호, 정명계, 김정언, 명랑소녀! 여러 수업의 운영이 그대의 조용한 봉사로 뒷받침되고 있지요.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임에도 흔들림 없이 대단한 의리를 보여 주시는구려.


오창환, 나의 아우님! 항상 표시 나지 않게 모든 행사에 물심양면 후원을 해주며 나를 도와주신 후, 29대 회장직을 맡아 주어 일본학과의 역사를 이어 갈 수 있게 하셨으니 그 마음에 어떤 보답을 해드릴 수 있을까요?!


이미영, 나의 첫 번째 임원! 부회장. 얼마나 많이 힘드셨을까?! 그대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내가 계획대로 일을 진행 시킬 수 없었을 터이니, 결과적으로 모든 학우가 미영의 도움을 받은 셈이지요.

 
그리고, 정년 퇴임하신 우리들의 영원한 스승 이경수 교수님, 건강하신지요? 찾아뵙지도 못하고 그저 이런 편지로 안부 인사를 드리게 됨을 사죄드리며 이쯤에서 졸필을 마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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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hou***
    항상 감사합니다!!!
    2026-01-12 15:44:02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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