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차의 고장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뒤, 여러 여건상 더 이상 진학하지 못했다. 졸업한 해 겨울, 나는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신문을 통해 세상 물정을 익히는 아이였다.
우편집배원 아저씨로부터 “어린놈이 뭘 안다고 신문을 보느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그 신문 한 장은 훗날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
신문 광고에서 본 순천 직업훈련원 1기생 모집 공고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확인할 만큼 간절한 기회였다. 헌책을 빌려 공부해 합격했고, 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첫 도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입영 통지서를 받고 입대하게 돼 학업은 중단됐다. 33개월의 군복무를 마친 뒤 다시 시험에 응시해 교육을 마치며 두 개의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1983년 8월 1일, 대우조선 입사는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첫 급여를 손에 쥐었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성실한 현장 노동은 내 삶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고, 배움은 늘 실천과 함께 있었다.
일에 몰두하는 동안 가족을 충분히 돌보지 못한 채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고, 내 몸에도 이상 신호가 찾아왔다. 진단은 담도암이었다. 세 차례의 개복 수술과 10년에 걸친 추적 진료는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회’라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치료가 마무리되던 날, 의사로부터 “이젠 그만 오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비로소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는 다시 배움으로 이어졌다. 57세가 되던 2014년, 검정고시에 응시해 단번에 합격했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완의 과제가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분명히 깨달았다. 배움은 특정한 시기에만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36년의 근무를 마치고 정년 퇴임한 뒤, 예상치 못한 공허와 우울을 겪었다. 생활의 리듬이 무너진 상태에서 시민 정보화 교육을 통해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방송대 신·편입생 모집 안내문을 접하면서 다시 새로운 삶을 만났다.
2022년 처음 온라인 강의를 클릭하던 순간의 긴장감은 지금도 또렷하다. 오랜 시간 ‘현장 근로자’로 살아온 내가 다시 ‘학생’이 됐다는 사실은 낯설면서도 설렜다. 과제를 준비하고, 시험 일정을 확인하며, 학습관을 오가는 일상이 다시 삶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지고 있다. 키오스크 사용, 디지털 행정,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은 학습을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적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송대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평생교육의 공간이다.
나는 퇴직을 앞두었거나 이미 퇴직한 후배들에게 방송대 진학을 권한다. 재취업을 위한 선택이 아니더라도,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설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 삶에는 멈춤이 많았다. 그러나 배움만큼은 단 한 번도 완전히 내려놓은 적이 없다. 방송대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단단한 선택지다. 뜻이 있다면, 길은 반드시 있다. 나는 지금도 그 길 위에서, 다시 배우고 또 더 배우고 싶다.
“인격의 바탕 위에 서지 않은 교육은 천박한 기술 축적에 불과하다”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이 떠오른다. 방송대에서의 배움은, 나에게 기술을 넘어 삶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