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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영토에는 국경이 없음을,

우리의 진심은 시공간을 넘어

결국 맞닿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위대한 항해를

나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 영주권자로 살아온 17년이라는 세월은 제게 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다인종과 다언어가 뒤섞인 북미의 풍경은 이미 일상이 됐지만, 이상하게도 고쳐지지 않는 습관 하나가 있다. 북적이는 거리에서 멀리 스치듯 들려오는 한국어 한마디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발길을 멈추는 일이다. 그것은 단순히 언어를 알아듣는 반가움이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는 ‘나’라는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갈구였다.


세상에는 말을 가르치는 교육은 넘쳐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와 감성, 문화의 결까지 온전히 전하는 교육은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한국에서 국어를 배우는 일이 단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듯, 해외에서도 한국의 얼과 마음을 함께 전할 수 있는 교육자가 더 많아지기를 오래도록 꿈꿔왔다. 그 꿈의 시작점이 바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였다.


사실 내가 다시 펜을 잡은 이유는 화려한 이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동생과 아버지를 연이어 떠나보낸 상실감, 그리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 머물며 견뎌야 했던 지독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다녔던 일반 대학에서의 공부는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이자,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치열한 ‘경쟁’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50대가 되어 다시 만난 방송대는 달랐다. 이곳에서의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생존’이자 ‘치유’였고, 학우들은 스펙을 쌓는 경쟁자가 아니라 각자의 고단한 삶을 지탱해 주는 ‘인생의 도반’들이었다. 젊은 날의 공부가 머리를 채우는 것이었다면, 50대의 공부는 비어버린 가슴을 채우고 삶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배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입학 초기에는 해외 원격 수강이 불가능해 한국과 캐나다를 수없이 오가야 했고, 그 와중에 암이라는 큰 병마까지 덮쳤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기적처럼 해외 학생 수강이 가능해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40분 강의 하나를 듣기 위해 인터넷 연결과 사투하며 4시간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날들,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기 안에서도 노트북을 켰던 그 시간들은 내게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으려는 의지’ 그 자체였다.


이번 귀국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계절이었다. 교육학과 총장배 평생교육프로그램개발 경지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0시간의 실습을 통해 만난 안은미 실습지도 교수님과 든든한 길 안내자가 되어준 방송대 평생교육사협회 선배님들, 그리고 방송대 특강인 「책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의 변향미 강사님과 함께한 글벗들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가 됐다.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화면 너머로 전해지던 교수님들의 학생을 향한 지극한 애정은 타국에서 홀로 공부하던 내게 따뜻한 길잡이별이 돼줬다. 무엇보다 나를 끝까지 버티게 한 주인공은 동기들이었다. 대련 졸업여행에서 숙소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새 쏟아냈던 수다 속에서, 우리 벗들의 평균 나이는 50대였지만 마음만큼은 영락없는 10대 소녀들이었다. 그들과 함께여서 나의 졸업은 비로소 행복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나는 해외 거주 학우들과 해외 진출을 꿈꾸는 수많은 학우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방송대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해 미래 교육 시스템의 가장 이상적인 모형을 보여주는 대학이라고 말이다. 다만 배우는 단계에 머무는 교육 현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운 지식을 사회 현장에서 펼칠 수 있는 진출의 길이 더 넓게 열리기를 소망한다.


또한 캐나다의 다문화 정책처럼, 우리 한국의 교육도 소수자를 기존 문화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뿌리를 지키며 어울려 살아가는 ‘모자이크’ 식 교육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지난번 경진대회에 참가하면서 「조선 이모지 헌터」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느꼈던 것도 바로 이것다. 낯선 이국땅에서 우리 문화의 원형을 찾아 헤매고 그 감성을 현대의 언어로 길어 올리려 애썼던 나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조선 이모지 헌터’의 여정이 아니었을까?


이제 나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 홀로 한국에 남겨질 노모에 대한 걱정으로 발걸음은 무겁지만 가슴에는 분명한 사명감이 있다. 지난 17년, 태평양 너머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불리던 ‘제시카’라는 이름은 나에게 치열한 생존의 훈장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송대 공부를 통해 나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한국인 ‘이미화’라는 이름을 다시 깨워냈다. 낯선 땅의 ‘제시카’와 뿌리를 찾아 돌아온 ‘이미화’가 비로소 뜨겁게 조우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한 나 자신이 되어 다시금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


무엇보다 나는 조만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다. 캐나다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며 단단해진 모습으로 돌아와, 내가 사랑하는 이 땅의 평생교육을 멋지게 완성하겠다. 배움의 영토에는 국경이 없음을, 우리의 진심은 시공간을 넘어 결국 맞닿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 위대한 항해를 나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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