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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無心)함이 다시금 영점 조정의 역할을 해주면서
‘아낌없음’이 편향의 심화가 아니라

점점 더 큰 지혜를 함축한 것이 되도록 해주기를 기원한다.

 

나는 ‘아낌없이’라는 말이 참으로 좋다. 어쩌면 아주 짧게 빛나던 예외적인 순간들을 빼면 살아오면서 진정 아낌없이 무엇을 한 경험이 드물어서일지도. 대학 시절,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는 이광웅 시인의 「목숨을 걸고」라는 시를 접했다. 그 시에 왠지 무척 끌리면서도 어떤 항목에는 ‘꼭 그런 것에까지 목숨을 걸어야…?’ 싶기도 했고 실은 대략 ‘무섭기도’ 해서 ‘아낌없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심정이었을지도.

 

그러나 목숨을 거는 것은 고사하고, ‘아낌없이’에 담긴, 계산을 잊은 혼신의 자발적 몰입, 뒤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온전한 자기완결성, 타인과의 경계를 여는 존재의 역동적 확장이 어찌 쉬운 일이랴. 더구나 비판과 포용 사이에서, 좌와 우 사이에서, 심지어 그 시절 농담처럼 ‘우’동과 ‘좌’장 사이에서 매번 흔들리며 망설이는 이에게. 둘 중에 하나만 골라 먹기도 어렵던 궁핍한 날들이어서였을까.

 

나침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이 방향과 목적지가 맞는지 확신을 하지 못하여 주저하는 부족함 앞에, ‘아낌없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바의 상태, 다시 말해 한 존재가 타인과 세상을 마주한 전면적인 온전함을 의미하는 풍요로운 상태는 어딘가에 있으나 도달할 수는 없는 ‘진리의 섬나라’가 아니었을지.

 

나는 나의 ‘아낌없이’가 단순한 맹목성이 아니기를, 나를 주되 나를 잃지 않는 중도와 절제를 망각하지 않기를,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기를, 준다는 것의 집착에서 놓여나고 그 멈춤에 있어서도 아낌이 없기를, 그렇게 지혜를 장착한 것이기를 바라왔고 또 바란다.

 

그리고 지금은 여태까지 지구에서 펼쳐진 인류 역사를 관통해온 모든 지류들이 마침내 합쳐져 큰 전환을 이룩해야 할 대합류 대전환의 시대다. 이 새로운 시대에 지혜와 결합된 ‘아낌없이’의 원리가 개인적 삶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국가, 인류의 차원에서 모두 역동적으로 연결되며 아낌없이 펼쳐져 구현되기를 기원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아 고갈의 시대에 맞선 자기 신뢰가, 사회적 차원에서는 각자도생과 혐오의 시대를 허무는 서로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신뢰가 아낌없이 실천되기를 기원한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갈등의 편승과 조장에 기댄 적대적 공생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차이를 더 큰 동력으로 승화시켜 미래 자산을 축적해가는 전국가적 엔진이 작동하고, 인류적 차원에서는 전지구적 위기에 맞선 전지구적 연대가 아낌없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에 가득 찬 불평불만과 남 탓을 잠시 접고 조금 더 차분히 바라보면, 위의 네 가지 차원에서 우리나라가 품은 실제적·잠재적 가능성은 그래도 세상에 내세울 만한 것이지 않을까. 우리의 기초적인 시스템은 우리 국민 전체의 집단 상식과 지성에 맞물려 그 어느 곳과 비교해서도 그래도 묵묵히 슬기롭게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접하는 모든 차원에서 아낌없는 박수와 아낌없는 비판이 항상 활달히 이뤄지면 좋겠다. 그리고 이 천칭의 한 가운데서 균형 잡힌 성숙한 거리 두기와 무심(無心)함이 다시금 영점 조정의 역할을 해주면서 ‘아낌없음’이 편향의 심화가 아니라 점점 더 큰 지혜를 함축한 것이 되도록 해주기를 기원한다. 마침내 이 성숙한 중심 자리에 상호 존중과 신뢰, 공동의 가치가 단단하게 중첩되어 양쪽의 무게를 넉넉히 견디며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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