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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에서 나고 자라 대구에 나와 살면서 일찍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살던 중 학령기 때 하지 못했던 공부와 학사 학위가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던 차에 아내가 방송대 입학을 권유했다. 아내의 권유를 뿌리칠 이유가 없었기에 입학을 결심하고 바로 원서를 냈다. 그 시기가 2007년이니 벌써 학교와의 인연도 20년 가까이 됐다.


막상 방송대에 들어와 보니 나와 같은 아쉬움을 가진 또래들부터, 나보다 일찍 배움에 뜻을 둔 젊은 학우들, 노년에도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낀 연세 지긋하신 학우분들까지 계셨다. 나에게는 이런 환경이 오히려 세상을 하나 더 만들어 주는 것 같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물론,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다들 생업에 더 투자하는 때였고, 공부에 손을 놓은 지 오래된 나 역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녹록하지 않았다.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걸 또 한 번 깨달았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은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는 것밖에 없어 충실히 하다 보니 학생회 생활도 열심히 하게 됐다. 총학생회장을 준비하던 중에 막내아들이 생겼다. 막상 입학을 권유한 아내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방송대 공부를 할지는 예상이나 했을까? 결국 그때 지역 총학생회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수석부회장이 되어 학우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졸업 후 대구·경북 경영학과 동문회에 가입했다. 훌륭한 선배들이 잘 갖춰놓은 동문회였다. 또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 보니 많은 사랑을 받게 되고 동문회장까지 맡게 됐다.『경영동문회 30년사』출간을 기념하는 경영인의 밤을 준비하면서, 동문회의 역사에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어 정말 기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와중에 코로나가 찾아오면서 모든 사회활동이 중단되고, 총회를 열어 새 회장을 선출할 형편이 되지 않아 3년이나 경영학과 동문회장직을 이어가게 됐다.


코로나19로 대구·경북총동문회도 다른 곳과 같이 위기를 겪고 있었다. 비상시국이라 할 만한 때에 보궐로 고생해주신 류지태 회장님, 다시금 총동문회를 일으켜준 우선하 회장님의 뒤를 이어 동문회장의 바통을 잇게 됐다. 전체를 위해 봉사하려다 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었고, 경영학과 동문회처럼 총동문회도 서로 간의 우애를 다지며 활발히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고, 학생 수가 점점 감소해 동문회도 신입회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우리 후배들 갈 곳이 늘어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해 기꺼이 동문회장직을 넘겨받게 됐다.


동문들은 자주 말한다. 따뜻한 과거의 추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고. 깊고 다양한 인적 교류는 방송대의 자랑이다. 이런 인적 교류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방송대와 여타 사이버대와의 차별점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도록, 그런 우리가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서로를 돕고 격려하고 관심을 가지는 일은 방송대와 동문 개인의 발전 동력이다.


나는 방송대를 통해 제2의 인생을 만났다. 내가 느꼈던 이 감정과 기분을 더 많은 후배들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학우님들이 좋았던 자신의 경험을 다시 계승 발전시켜 물려준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 학교도 동문회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하는 동문회가 될 수 있도록 동문회장으로서, 또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매일 다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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