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새순을 틔우느라 분주한 3월 9일에 54번째 개교기념일을 맞이했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고등’, ‘평생’, ‘원격’이라는 세 기둥으로 대한민국 교육을 든든히 떠받쳐 온 방송대의 첫 모습은 결코 지금처럼 화사하지 않았다. ‘자격증이 필요해서’, ‘학사 학위가 필요해서’, ‘다른 전공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등 저마다의 이유로 방송대의 문을 두드린 신·편입생은 1972년, 서울대 부설 2년제 초급대학으로 출범해 2026년 현재 전국 13개 지역대학과 20여 개의 학습관에서 전 국민 원격고등교육에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번 특집 기사에서 방송대가 뚜벅뚜벅 걸어왔던 눈부신 54년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알게 된다면, 서로 다른 이유로 찾아온 방송대에 대한 애정이 솟아날 것도 같다. “어디를 가든 내 인생을 바꾼 대학이라고 자랑한다”라는 85만 동문 선배의 고백처럼 말이다(『방송통신대학교 50년사』,『총장 경영백서』참고).
윤상민 기자 cinemonde@knou.ac.kr

아시아 최초의 개방대
1971년 영국개방대(Open University of United Kingdom) 설립을 효시로 1970년대에는 세계 각지에서 유사한 성격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출연했다. 대한민국 문교부(현 교육부)는 아시아 최초의 개방대를 설치한다는 포부로 1968년「교육법」개정을 통해 국내 최초의 원격교육대학 설립을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당시 한국 고등교육이 소수 엘리트 중심 체제였다는 점, 1969년부터 실시될 대학입학예비고사로 재수생이 급증할 것으로 예측됐다는 점 등이 ‘대학 통신교육제’를 구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다.
문교부는 서울대와 수차례 실무 회의를 거쳤고, 서울대는 방송통신대학 설치위원회를 발족했다. 방송통신대학 설치를 위한 예산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진통을 겪었지만, 신임 문교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1972년 1월 8일 서울대 부설 한국방송통신대학 설치준비사무소를 열었다. 3월 9일 설치령과 학칙을 동시에 공포하면서 역사적인 방송대 개교를 맞았다. 개교 당시 방송통신대학 교사는 서울대 치과대학 내 구 보건대학원 건물이었다.
가정학과, 경영학과, 농학과, 초등교육과, 행정학과 등 2년제 초급대학 과정 5개 학과로 방송통신대학이 문을 연 것이다. 당시 입학 정원은 1만2천 명이었고, 경쟁률은 4.66:1이었다. KBS 제3방송과 MBC 전국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강의를 실시했다. 개교 두 달 뒤인 5월에 방송대 학보 <통신학보>를 창간했고, 이듬해 9월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에 1개 면을 할애받아 ‘방송통신대학판’ 1호를 발행했다. 학보사 창립은 1977년 2월에 이뤄졌다.
비대면 원격 학습과 더불어 대면 형태의 출석수업을 병행한 블렌디드 러닝 체제는 당시부터 구축됐다. 양질의 고등교육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된 출석수업은 ‘당연히’ 현재 지역대학, 학습관 등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 국립대 캠퍼스 시설을 협조받아 이뤄졌는데, 1972년에는 22개의 협력학교가, 10년 뒤인 1982년에는 37개의 협력학교가 문교부령으로 지정됐다. 학생들은 방학 기간 중 2주 동안 협력학교에 출석해 대면수업을 받았다. 75%에 달하는 학생이 출석하면서 협력학교의 수용 능력상 2주간의 출석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면서, 이후에는 9일로 축소됐다.
1972년 4월에 발행된 10만 권의 1차 교재는 대한통운을 통해 전국 각지 학생들에게 배송됐다. 서울대 교수진이 직접 집필해 통신대학 학생뿐 아니라 일반 대학생과 사회인들에게도 호응이 좋았다. 대량의 책이 손상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짚으로 꽁꽁 싸맨 트럭들이 전국을 누볐다.

10년 만에 학부대학으로 승격
10년 동안의 성공적인 교육적 실험과 성과로 방송대는 1982년 서울대로부터 분리해 독자적인 국립원격대학 체제로 전환됐다. 2년체 초급대학 과정에서 5년제 학사학위 과정으로 승격됐고, 이는 10년 뒤인 1992년에는 4년제 학사 운영체제를 구축하는 추진 동력이 됐다. 1982년에는 학생들의 교재를 담당하는 출판부를 설립했다.
왜 5년제였을까? 원격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했을 때 라디오 방송강의와 출석수업 만으로는 4년 안에 내실 있는 학사 운영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과 전임 교수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 그 이유였다. 의도와는 달리 방송대 5년제 학사과정이 일반 4년제보다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그릇된 사회적 편견에 직면하며 방송대는 1990년 4년제 대학으로의 전환을 추진했다.
1993년 5개 단과대학(인문, 사회, 자연, 교육, 교양교육)을 정비해 마침내 종합대학으로서의 체제를 완성했다. 단과대학 개념이었던 ‘한국방송통신대학’이란 명칭도 ‘한국방송통신대학교’로 바뀌었다. 1996년 케이블TV 채널인 방송대학TV <OUN>을 개국해 원격 영상강의 시스템으로 원격교육의 새 장을 열었고, 2001년에는 평생대학원을 설치했다.
학위 과정이 변하면서 학생도 늘었다. 2년제 초급대학 과정 시절(1972~1980년)에는 1만 8천 명 수준이었는데, 5년제 학사과정 시절(1981~1991)에는 10만6천634명으로, 4년제 학사과정으로 전환한 시절(1992~2001)년에는 15만3천873명으로 폭증했다.
급증한 학생의 교육 수요를 협력학교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1983년 인천지역학습관 개관을 비롯해 광주·전남, 충북, 경남, 전북지역 등 여러 광역지역에 학습관을 개관했다. 지역 학생들은 출석수업과 시험을 치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서울로 오지 않게 됐다. 가까운 학습관을 활용하면서 수준 높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학습 편의성도 매우 좋아졌다.

‘원격·평생학습 메카’로의 재정립
2000년대 이후 IT 강국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와 함께 개인용 컴퓨터가 상용화되면서 방송대 원격교육 시스템은 전환기를 맞이했다. 사이버대가 급속히 성장했고, 일반대의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면서 방송대는 대학 이념을 재정립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당시 상황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첫째는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신입생의 규모가 점진적으로 감소한데 반해, 전문학사 이상의 편입생은 1990년 3만 명에서 1998년 5만3천여 명으로 급증해 1학년 신입생 수를 초과했다.
둘째는 방송대생의 고령화, 고학력화 추세다. 1993년 25세였던 재학생 평균 연령은 2013년 39세로 높아졌고, 직업별 분포는 회사원, 전업주부, 교원·교육 행정직, 공무원 순으로 대다수가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비전업 학생이었다. 편입생 비중이 높아지면서 4년제 학사 소지자의 비율은 2000년 12%에서 2013년 25%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셋째는 지속적 생애 역량 증진을 위한 평생학습 수요가 증대했다는 점이다. 못다 한 학업의 꿈 실현이라는 전통적인 학습 요구보다, 지식에 대한 내재적 관심 혹은 현장 실무형 평생학습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었다. 바로 방송대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었다. 이는 개방성, 다양성, 전문성, 나눔과 연대라는 핵심가치로 방송대가 추구해야 할 ‘비전 2022’에 담겼다.
세계로 나아가는 대학
2012년 학위-비학위 연계형 프라임칼리지 신설은 원격 평생학습의 허브인 방송대가 차세대 대학발전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첫째로 4050세대의 생애주기 및 학습 요구에 맞는 제2의 인생 설계·준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자립역량을 강화하고 사회공헌을 확대한다는 점, 둘째로 특성화고 등 고졸 재직자의 계속 교육과 역량 강화를 위해 재직자 친화형 계속 교육의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다.
2020년 팬데믹으로 대내외적 교육환경이 급속하게 변했다. 2021년「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방송대는 고등·평생·원격교육기관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국내 유일한 형태의 대학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미래 역량을 함양하고 팬데믹으로 인한 교육환경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 될 전환점에 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평생교육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개방형 플랫폼’이라는 ‘비전 2032’의 지향과 구축으로 이어졌다.

현재 방송대는 말레이시아, 우간다 등 세계 곳곳에 방송대의 우수한 원격교육 시스템을 전수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2030년을 목표로 ‘AI·에듀테크융합교육지원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해 2026년 2학기부터 해외 유학생 유치에도 나선다.
간략한 소개지만, 신·편입생 여러분이 모교에 자부심을 느끼기에 혹시 부족했다면, 방송대 학보 <KNOU위클리>(www.weeky.knou.ac.kr)를 방문해 선배들의 이야기를 읽어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