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화제의 신·편입 학우

“처음에는 그냥 한번 끝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전국의 길 위를 걸어온 시간이 어느덧 14년째다. 통영에서 서울까지, 남해안에서 내륙까지 수백km를 걸어온 정호진 학우(64세)는 이제 또 다른 출발선에 서있다. 운동으로 다져온 시간을 학업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다.


그가 장거리 도보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12년 6월 4일이다. 통영에서 서울 남산까지 약 520km를 13일 동안 걸었다. 특별한 준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었다.


“중간에 여러 번 멈추고 싶었습니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숙소를 구하지 못한 날도 있었죠. 그래도 ‘여기서 멈추면 평생 후회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게 2012년 6월 4일은 단순한 출발일이 아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은 날이자,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낸 시작점으로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시점이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또렷했던 것은 ‘끝까지 가보겠다’라는 결심이었다. 그날 내디딘 한 걸음은 520km의 여정을 넘어 12년을 지탱해 온 마음의 기준이 됐다.


이후에 그는 통영·거제 250km 일주를 시작으로, 통영에서 전남 녹동신항여객선터미널까지 종주한 뒤 제주 일주 530km에 도전했다. 또 통영에서 강원 춘천을 거쳐 서울 잠실까지 15일간 618.23km를 완보하며 장거리 여정을 이어갔다. 82km와 100km 울트라 코스에도 참가하며 보행 거리를 조금씩 넓혔다.


울트라 코스는 마라톤(42.195km)을 훌쩍 넘는 초장거리 종목으로,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해야 기록으로 인정된다. 장시간 이어지는 경기인 만큼 체력은 물론 페이스 조절과 영양 관리 등 철저한 자기 통제가 필수다. 그는 대한걷기연맹이 주관하는 ‘그랜드슬램 워커’ 대회에서도 두 차례 인증서를 받았다.


그는 “거리도 거리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완보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단순한 체력이 아니라 끝까지 흐름을 잃지 않는 집중력과 자기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걷기를 “남과 경쟁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운동”이라고 표현했고,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완주 과정에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책임지는 태도라고 덧붙였다.


정규 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검정고시였다. “걷기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것도 해냈는데 공부라고 못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5년 고졸 학력을 취득한 그는 배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운동을 해왔지만 이론적으로 체계를 배워본 적은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운동은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어떤 원리로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고민은 결국 올해 방송대 입학으로 이어졌다. 방송대를 알게 된 계기는 오랜 친구이자 선배의 권유였다. 먼저 도전해 공부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나이가 있어 망설였지만,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라는 말에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간을 스스로 관리하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국어국문학과 입학도 고민했다. 전국을 걸으며 쓴 글을 모아 책을 출간했고, 글쓰기 활동도 이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생활체육지도과를 선택했다. “제 삶을 지탱해준 것은 운동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 왜 이런 훈련이 필요한지,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현재 그는 장거리 도보를 이어가면서도 새내기 1학년으로서 강의 수강과 과제를 병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걷는 것이 일상이었다면, 지금은 강의 일정을 먼저 확인합니다. 도보 일정도 수업에 맞춰 조정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방송대 진학은 단순한 학위 취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걷기가 몸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면, 학업은 생각을 단련하는 시간이다.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 경험을 정리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길 위에서의 도전이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면, 방송대에서의 배움은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과정이다. 걷기로 다져온 성실함은 이제 학업이라는 또 다른 여정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


경남=박영애 학생기자 tellto2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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