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국경 없는 배움, 해외거주학생들

대한민국 대표 원격교육기관인 국립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가 어느덧 개교 54주년을 맞이했다. 1972년 설립 이래 ‘지식의 요람’ 역할을 해온 방송대는 이제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 특히 2024년부터 신설·확대된 ‘해외거주학생제도’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학업을 망설였던 해외동포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사다리가 되고 있다. 현재 방송대 해외거주학생은 3월 4일 기준 1천15명이다. 이들 가운데 이탈리아, 핀란드, 일본, 아르헨티나 등 각기 다른 하늘 아래에서 방송대와 인연을 맺은 학우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커버스토리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 거주하는 이숙영 학우(영문)의 도움이 컸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낯선 타국에서 ‘방송대’라는 돛을 올리다
해외 거주 학우들이 방송대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다. 직장 생활과 해외 거주라는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학문적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유연한’ 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에서 무역 업무를 하는 유신재 학우(무역학과 3)는 1999년 입학 후 유학으로 중단했던 학업을 25년 만에 다시 이어가고 있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며 잠시 쉬는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해보고자 다시 학업을 이어가게 됐다. 한번 경험해본 터라 다른 교육기관보다 친숙했고, 과거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학업이 가능해 만족스럽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핀란드의 프론트엔드 개발 인턴으로 있는 손태정 학우(컴퓨터과학과 3)일본 구마모토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최정현 학우(법학과 3)는 모두 이번 학기 3학년 편입생으로 ‘전문성 강화’를 위해 방송대를 선택했다.
손 학우는 “해외 거주 중에도 학위를 이어갈 수 있고, 비교적 유연한 학사 제도가 잘 맞았다”라고 전했다. 최 학우는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협업 속에서 법적 사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공학적 지식에 법적 사고를 더할 때 큰 시너지가 발생한다는 확신을 했다”라고 말하는 그는 “방송대는 국내 유일의 국립 원격대학이라는 상징성과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어 가장 이상적인 배움터”라고 강조했다.
일본 도쿄에서 애플 AI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오문정 학우(프랑스언어문화학과·대학원 일본언어문화학과)는 성장에 대한 갈증을 원동력으로 꼽았다. “어느 순간 ‘나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는 그는 “배움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방향과 힘이 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는 소피아 학우(법학과 3) 역시 경제적인 학비와 탄탄한 인적·물적 인프라에 대한 기대로 이번 학기에 방송대를 선택한 편입생이다.
이들 학우들이 해외거주학생제도를 알게 된 계기는 대부분 학교 홈페이지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보 덕분이었다. 유신재 학우는 처음에는 제도를 몰라 일반 학생으로 등록해 한국을 오가며 시험을 치르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기말시험 당일 한국에 도착해 공항에서 바로 시험을 보러 간 기억이 난다”는 그는 이후 홈페이지 상단 탭에서 우연히 이 제도를 발견하고 나서야 전공을 바꿔가며 해외거주학생으로 등록했다. 최정현 학우 역시 방송대는 오프라인 출석수업이 있기에 해외 거주 중에는 입학이 불가하다고 생각했다가, 2024년 신설된 해외거주학생제도 관련 정보를 접하고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
오문정 학우는 홈페이지와 선배들의 경험담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멀리 있어도 배움은 계속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낯선 타국에서 살아가는 마음에 깊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는 그의 말에서 제도가 주는 심리적 지지 효과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오문정 학우는 “늦은 밤 조용한 방에서 공부하다 보면 같은 시간 어딘가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을 학우들을 떠올리며 혼자가 아니라는 깊은 연대감을 느낀다”라고 전했다.
시차와 거리의 장벽을 뛰어넘는 ‘열정’
그러나 현실적인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시차’와 ‘교재 확보’다. 유신재 학우는 “지난 학기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현지 시간으로 새벽 2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났다”며 “호기롭게 덤볐다가 다음 날 고생한 기억이 난다”라고 토로했다.
또한, 유럽 지역은 인터넷 속도가 느려 실시간 수업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유 학우는 “수강과목 선택 전에 1강씩 들어보려 해도 사정없이 끊어지는 바람에 포기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교재 및 참고도서 확보도 문제다. 손태정 학우는 “현지에서 참고도서나 교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불편하다”라고 지적했다. 소피아 학우 역시 “과제를 위한 책을 구입하기 힘든 점이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미국 덴버에 거주하는 이숙영 학우는 중간과제물 작성을 위해 직접 서울에서 책을 구입해 택배로 받았다고 귀띔했다).
그렇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학우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법을 찾고 있다. 유신재 학우는 “최신 교재가 없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자료가 도서관에 준비돼 있고, 교수님들도 수업과 강의 자료만으로 충분히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오문정 학우 또한 “해외에서는 참고도서를 구하기 쉽지 않아 전자 자료와 온라인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적극 활용한다”라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밝혔다.
최정현 학우는 “중앙도서관 및 서점을 통해 자료를 구하고, 강의 영상, 전공 교재, 워크북 위주로 공부한다”라고 전했고, 손태정 학우도 “강의를 충실히 듣고 교재를 구입해 워크북 등을 착실히 공부할 예정이며 커뮤니티를 통한 정보 수집도 병행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인터뷰에 응한 해외 학우들은 학교가 자신들의 특수한 상황을 조금 더 배려해 주기를 희망했다.
오문정 학우는 “디지털 자료 접근성 강화와 행정 안내의 국제화가 확대된다면 방송대는 더욱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신재 학우는 “해외 학생들도 장학금 수혜 대상에 포함해 달라”라고 주문하면서 “전액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절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교수님들께서 시중 교재를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과제는 가급적 피해주시고, 필요하다면 전자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배움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
인터뷰에 응한 학우들은 입을 모아 해외에서의 학업이 단순한 지식 습득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배움은 정체된 일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자, 미래를 다시 그려보게 하는 가교라는 것이다.
오문정 학우는 “배움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믿는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다리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소피아 학우 역시 “방송대가 해외 거주 동포와 본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육적 가교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진학을 고민하는 예비 학우들을 향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최정현 학우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진학을 망설이고 있다면, 해외거주학생제도를 활용해 방송대에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를 넘어 배움의 기회는 열려 있다”라고 강조했다. 손태정 학우 또한 “단기간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방송대 과정을 많은 분이 활용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개교 54주년을 맞은 방송대는 이제 새로운 총장의 취임과 함께 글로벌 확장을 앞두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밤잠을 설쳐가며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하는 해외 거주 학우들의 열정이 헛되지 않도록, 더욱 세심한 행정적 지원과 시스템 개선을 뒷받침할 때다. 이들의 도전은 방송대가 명실상부한 ‘세계 속의 대학’으로 우뚝 서는 데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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