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초등학교 교사직을 내려놓고, 한국에서도 생소한 ‘라면 평론가’의 길을 걷는 이가 있다. 13년간 2천270번이나 라면을 맛보며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온 지영준 학우(생활과학부 식품영양학전공 3)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라면 콘텐츠 창작에 전력하고 싶어 2023년 초에 교단을 떠나, 현재는 라면 문화 콘텐츠 창작자, 라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의 라면 역사에 길이 남는 책을 집필하는 게 꿈이며, 블로그와 유튜브 활동, 다양한 행사로 꾸준히 라면의 매력과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한다. tvN「70억의 선택」,「수요미식회」, KBS2「생생정보」등 방송에도 자주 출연했다. 지은 책에는『오늘도 라면입니다』,『라면 완전정복』,『라면의 역사』등이 있다. 특히『라면의 역사』는 일본에도『韓國インスタントラ-メンの世界』(原書房)로 소개돼 화제가 됐다. 그가 식품영양학의 과학적 토대를 공부하고 이론을 다지기 위해 방송대를 선택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기회가 된다면 방송대 대학원에 진학해 식품영양학을 더 공부해볼 계획이라는‘라면 평론가’지영준 학우를 만났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시각각 섭외 연락이 오는 라면 평론가 일을 병행하고
가정을 돌보면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방송대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지영준 학우의 20대 초반은 거듭되는 입시의 고배로 얼룩진 시기였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의대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수능을 쳤지만, 결과는 늘 좋지 못했다. 네 번의 수능을 치른 끝에 결국 원하는 의대에 가지 못하고 교육대학교에 진학한 후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24세의 나이로 군데 입대한 그는 자신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인생을 되돌아보니 너무 재미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군 매점(PX)에 진열된 수많은 라면이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저마다 다른 맛과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사직도 던지게 만든 라면의 ‘재발견’
그는 전역 전까지 매점의 모든 라면을 맛보겠다는 소박한 계획을 세웠고, 이 도전은 무미건조하던 군 생활을 매 순간 설레고 즐겁게 바꿔놓았다. 전역 후 대학 생활을 시작하며 그는 이 활동을 개인적인 추억으로 남기지 않고 블로그 ‘라면 완전정복 연구소’를 통해 대중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2013년 시작된 이 소박한 발걸음은 훗날 ‘국내 1호 라면 평론가’라는 독보적인 커리어의 시작점이 됐다.
지 학우는 이후 임용고시에 합격해 2018년부터 충남 서산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안정적인 삶을 이어갔다. 적성에 잘 맞는 직업이었고 만족도도 높았지만, 라면에 대한 열정은 그보다 컸다. 퇴근 후와 방학을 이용해 꾸준히 연구를 이어갔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아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라면이라는 음식이 인류와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 것에 비해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인생을 걸고 라면을 전문적으로 소개하고, 라면 산업과 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없다면 제가 그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그는 2023년 초, 5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과감히 떠나 ‘라면 평론가’로서 전업 활동을 시작했다. 주변의 만류와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는 한국 라면 산업의 기틀을 닦았던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과 농심 신춘호 회장의 개척 정신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수입은 교사 시절보다 적고 한때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지만,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며 버텼어요. 지금은 사회에 이로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기초 닦고, 학생회 활동까지
지영준 학우가 방송대 식품영양학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학문적 전문성’이다. 현장을 누비며 쌓은 지식은 누구보다 풍부했지만, 대학에서 공부한 것이 식품학이 아닌 교육학이라는 점이 늘 아쉬움으로 남았기에 더욱 그랬다. 특히 방송 출연이나 강연 섭외 과정에서 전공이나 학력을 이유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때면 안타까웠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시각각 섭외 연락이 오는 라면 평론가 일을 병행하고 가정을 돌보면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곳은 현실적으로 방송대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
지 학우의 행보에서 더욱 빛나는 점은 자기 공부에만 머물지 않는 ‘동료애’다. 인천지역대학 입학식에서 학우들을 대표해 대표 선서했던 그는 편입하자마자 생활과학부 학생회 임원으로 지원했다. 순전히 자신의 결정에 따른 선택이었다. 원격 교육의 특성상 학우 간의 교류가 단절되기 쉬운 환경에서 누군가는 헌신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방송대에서 배움을 얻는 것만큼이나 좋은 인연을 많이 알아가고 싶어요. 좋은 인연을 얻기 위해서는 학우들 간의 교류가 중요하고, 그 역할을 학생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OT 후에 뒤풀이 자리에 참석한 뒤, 행사에서 물통이라도 나르겠다는 생각으로 학생회 임원을 자원했죠.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웃음)”
또한, 스터디 모임 조직에도 앞장섰다. 인천 생활과학부의 스터디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는 학년 대표의 도움을 받아 직접 단톡방을 만들고 구성원들의 의견을 조율해 스터디를 꾸렸다. “원격 교육의 한계를 넘어 같이 공부하고 같이 성장하는 좋은 인연을 쌓아나가려고 해요. 졸업까지 스터디가 잘 운영돼 학우들과 함께 많은 것을 배우고 교류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방송대 덕분에 더 빛날 것”
현재 지영준 학우는 일과 공부, 그리고 두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돌보는 아빠로서 1인 3역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에 1강은 반드시 듣겠다는 각오로 강의를 시청할 때면, 그동안 현장에서 궁금했던 식품학적 원리들이 해결되는 희열을 느낀다.
“강의가 정말 좋아요.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마음 같아선 더 많이 듣고 싶죠. 과거 입시 때나 대학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벌써 교수님들께도 여러 질문을 드렸어요. 궁금한 게 너무 많거든요. 제 돈으로 직접 등록금을 내고 공부하니 더욱 열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 학우는 자신처럼 시간적, 물리적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는 전국의 방송대 학우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양한 이유로 이곳에 모였겠지만, 많은 분이 저처럼 어려움 속에서 공부하고 계시리라 생각해요. 과정이 고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방송대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방송대 덕분에 분명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10년 뒤, 20년 뒤에는 방송대를 빛내고 위상을 높이는 자랑스러운 동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국에 계신 학우 여러분, 우리 모두 즐겁게 힘차게 꿈을 향해 나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