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우들의 인생 과정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과정이
의미 있는 한 줄로 기록되기를 바라며
3월 3일 임명장을 수여받았다. 새로운 명함을 받아 스마트폰 앱에 정보를 업데이트해 새 출발을 알렸다. 현 직장 정보의 내용이 바뀌며 경력에 한 칸이 더 생겼다. ‘Curriculum Vitae(CV)’에 한 줄이 추가됐으며, 이력서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연구자의 이력서를 가리키는 Curriculum Vitae는 라틴어로 인생의 과정(course of life)을 뜻한다고 한다. 그 말처럼 내 인생의 과정에 방송통신대가 일부로 들어오게 됐다.
다시금 이력서를 살펴본다. 내가 밟아온 발자국의 기록을 눈으로 따라가 본다. 8년간 머물렀던 산업연구원에서 발자국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남아있다. 어찌어찌 해내 오던 일들의 흔적이 보이고 언급할 수 없는 대외비 작업들도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 위에는 고군분투했던 대학원 시절의 모습과 꿈 많았던 대학생 시절의 내가 학위라는 이름으로 한 줄 기록돼 있다.
안타깝게도 CV에는 역사학자를 꿈꾸던 고등학생, 90일간의 세계여행, 2천 편을 본 영화광, 습작 시와 소설 등 현재의 나를 만들어온 중요한 동인들이 남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져 있는데 타고 갈 땐 직진이었던 것처럼, 반듯하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 있더라’는 말이 새삼 입에 남는다.
지난 8년간 나는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IT 산업과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다양한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탄소중립 전략 수립, LLM의 부상, 일본 수출규제 등 대내외적 일들에 대해 정부의 입장에서 여러 고민을 이어왔다. 그동안 부끄럽게도 산업, 정책, 통계 심지어 기술전문가로서 역할을 수행해왔다.
나는 가치 있는 의견을 남겨왔던 연구자였을까? 깜냥에 넘치고 넘치도록 많은 일들을 어찌저찌 오늘도 대충 수습하고 지내왔을 뿐이었나보다.『논어』에서 이르길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하셨건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나 많은 의견을 쏟아내야 했던 걸까? 옅은 농도의 부끄러움이 폐 속 깊이 들어온다. 다만 바라옵건대 쉼 없이 좌고우면하며 좌충우돌하던 고민이 방송통신대학교의 일원으로서도 의미 있는 자산으로 남기를 희망한다. 내 삶에서 노력의 배신은 흔한 일이었으나 고민은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3월 8일 처음으로 출석수업을 나갔다. 아내가 두 돌 아들에게 ‘아빠 이제 선생님이야, 교수님이야’라고 반복해서 알려준다. 아들은 배시시 웃으며 ‘선생님’, ‘교수님’을 따라 말한다. 이번 출석수업은 선생이자 교수로서 첫 번째 활동이 됐다. 기초미시경제학은 감사하게도 첫 수업으로 너무나 바람직한 과목이었다. 경제학은 선택에 대한 학문이라는 것 그리고 기회비용에 관한 내용을 포함해 강의했다. 이 출석수업을 위해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 다음 주를 견디기 위한 충분한 휴식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했을 것이다. 나도 학우분들도 말이다. 1학년 전공필수인 이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발걸음일 뿐만 아니라 많은 학우들의 첫 대면 수업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모인 모두에게 이력의 한 걸음이 시작됐다. 학우들의 인생 과정에 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과정이 의미 있는 한 줄로 기록되기를 바라며, 나에게 주어진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