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더 큰 대학을 만들었다.
이제는 더 따뜻한 대학,
더 살아 있는 대학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33년 만에 모교를 다시 찾았다. 임용주 제44대 전국총학생회장이 출범식에 초청한 덕분이었다. 정문을 들어서며 당시 두 개 동에 불과했던 캠퍼스가 여덟 개 건물로 확장된 모습에 모교의 눈부신 성장을 실감했다. 이제 방송대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학이구나 하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만나고 있는가?
출범식에 참석한 김종선(10대), 류계석(13대), 이순희(17대), 최기재(18대), 양정덕(32대) 역대 전총회장들은 자연스럽게 과거를 떠올렸고, “학교는 이렇게 발전했는데, 정작 학생들의 공간은 줄어든 것 아닌가”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로 시절의 붉은 벽돌 학생회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20만 방송대 학생들의 자치와 연대 그리고 꿈이 숨 쉬던 공간이었다. 직선 11대 전총회장이었던 필자는 학생회관을 사수하기 위해 출입구를 봉쇄하고, 건물을 막는 등 학생들과 함께 치열하게 뛰었다.
이뿐 아니다. 졸업률 향상 캠페인, 학보사 광고 확보, 청와대 행진 등으로 학생의 권리와 학교 변화를 위해 지칠 틈 없이 일했다. 당시 대학로에는 경찰 기동대 버스가 늘 대기하고 있었고, 형사들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방송대는 그 시대와 함께 숨 쉬며 투쟁하던, 당당하게 살아 있음을 외치는 대학이었다.
그 시절 학생회관에 얽힌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특히 지하층에서 활동하던 동아리 민속연구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직장인 학생들이 퇴근 후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땀 흘리면서 연습하던 모습 말이다.
전국총학생회의 지원 속에서 성장한 민속연구회는 마침내 대통령상을 받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학생 자치가 단순한 조직 운영을 넘어 문화와 공동체를 키워낼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학생회관은 그렇게 사람을 키우고,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2026년의 방송대를 보면, 교육과 연구 인프라가 크게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학생과 동문이 함께 만나고, 토론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공간은 줄어들었다. 대학은 건물의 크기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모이고, 생각이 부딪치고,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세대를 거듭할 때에서야 비로소 살아 있는 대학이 된다.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다. 첫째, 학생회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복합 공간을 반드시 조성해야 한다. 둘째, 재학생과 동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동 커뮤니티 공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셋째, 과거 동문회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학교와 동문이 함께 관리하는 공동운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넷째, 학생 자치활동과 동아리,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과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건물을 짓는 과감한 결단도 필요해 보인다. 학생이 주인인 대학이라면, 학생의 공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이다.
33년 전 쇠사슬로 지켜낸 학생회관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방송대가 어떤 대학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며, 미래를 향한 책임의 목소리다. 3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더 큰 대학을 만들었다. 이제는 더 따뜻한 대학, 더 살아 있는 대학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필자는 그 질문을 가슴에 다시 품고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