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연말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광장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지고 거리 곳곳에는 연말 기부의 상징이 된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다. 그러나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까지 솟아오를지, 자선냄비가 팔팔 끓어넘칠지 미지수다. 고용여건 등 악화된 경제 상황 속에서 기부의 손길이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또 한편으로는 기부금 횡령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도 기부문화 확산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기부문화의 열기가 식어선 안 된다. 나눔과 기부는 건강한 사회를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기술력이나 신선한 아이디어로 기부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노력들이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모금활동, 간편결제 시스템을 활용한 기부 등과 같은 새로운 방식의 기부문화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제 새로운 기부문화 트렌드를 이해하고,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기부방식 ‘눈길’
올 한 해 우리 사회를 관통한 기부와 나눔의 트렌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에서 발간한 「2019 기부 및 사회이슈 트렌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거리모금, 방송모금, 지로 등 이른바 전통적 모금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온라인 모금, 크라우드펀딩, 공익상품, 1인 미디어를 통한 기부 등 새로운 형태의 기부 방식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익숙한 모금 방식을 선호하는 기부자가 여전히 많아 전통적 모금방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전통적 기부방식과 새로운 기부방식이 혼재할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 자선과 기부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무게를 둔 변화의 흐름도 감지된다. 특히 일방적으로 도와준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환경, 인권, 청년, 젠더, 종교, 복지, 장애인, 동물보호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기부의 영역이 넓혀지고 있다. 이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기부자의 관심이 여러 분야로 확장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이준모 컨선월드와이드 대표는 “예전에는 일반인들이 다양한 영역의 기부활동을 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소셜미디어와 크라우드 펀딩 등을 통해 다양한 모금채널이 노출되면서 기부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젊은 층의 기부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현상을 두고 “이들은 불합리하고 부정의한 것에 대해 참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생각이 강하다”며 “특히 자연파괴나 기후 변화에 관련해선 앞으로 본인이 살아갈 환경이기 때문에 기성세대보다 특별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새로운 기부 트렌드로 ‘착한 소비’를 꼽을 수 있다. 착한 소비는 소비자가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이라고 판단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자는 운동이다. 특히 밀레니얼(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 초중반 사이 출생) 세대는 ‘나를 드러내는’,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소비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밀레니얼 세대는 말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이러한 활동을 적극 공유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착한 소비를 지향하고 새로운 소비 문화의 중심축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위안부 할머니를 후원하는 마리몬드 가방을 구매하거나 대형마트 시식 판매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한 ‘갓뚜기 라면’에 지갑을 여는 것도 모두 착한 소비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과 관련이 깊다.
기부금 단체의 운영 투명성을 강화하는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도 강하다. 기부금을 빼돌리는 형태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된 적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잇따라 터진 새희망씨앗, 어금니아빠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급기야 ‘기부 포비아(phobia·공포증)’란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기부자들의 알권리 강화는 국제적 추세로, 기부단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과 함께 투명성 제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비영리 영역 내에서도 ‘투명한 기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3~4년 전부터 기부금 집행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투명성 이슈와 관련해선 기부금 단체가 어떻게 돈을 쓰고, 어떻게 사업화하는지 등을 쉽게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정보가 별로 없으니 공개하라는 차원”이라며 “(기부금 단체가) 기부금을 성실하게 잘 쓰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는 다시 효과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투명성 이슈는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부 참여율 제고 쉽지 않아”
기부 참여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뾰족한 대안이나 해결책은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다만 기부자가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편의성 확보에 힘을 쓰거나 밀레니얼의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닝아웃이란 신념을 뜻하는 미닝(meaning)과 벽장에서 나온다는 뜻의 커밍아웃(coming out)이 결합된 신조어로 정치·사회적 신념에 따라 소비하는 ‘가치소비’의 일종이다. 이준모 대표는 “특히 젊은 층은 기부한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한다”며 “세월호 추모 관련 팔찌나 위안부 관련 굿즈 등 미닝아웃 제품을 제작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음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모금 시장의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신애 상임 이사는 “기부자들의 절대적인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기부자의 지속성 여부와 진정성 확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부금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다. 기부금 횡령 같은 사례가 발생하면 모금기관의 회계 투명성이 늘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기부금 투명성 실현을 위해 블록체인(분산형 데이터 관리 기술) 활용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결제 자체도 보수적인 상황에서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을 신뢰하고 상용화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