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일곱 편의 단편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는 정말 진짜인가?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혼모노』(창비, 2025)를 읽었다.
‘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한다. 작가는 일곱 편의 단편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는 정말 진짜인가? 이 질문이 무겁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그것을 판결이 아닌 탐구의 방식으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소설 속 어떤 인물도 완전한 악인이나 완전한 선인이 아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짜가 되고 싶고, 그 간절함이 오히려 그들을 인간적으로 만든다.
첫 단편「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처음부터 독자를 불편한 자리에 앉히며 그 탐구를 시작한다. 비윤리적이라는 혐의를 받는 감독을 여전히 사랑하는 화자. 작가는 그 감정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사랑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사이의 경계를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이러한 도덕적 모호함은「스무드」에 이르러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된다. 처음에 블랙코미디인 줄 알았던 이 소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어르신들 사이에서 뜻밖의 온기를 나누는 장면을 통해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선을 그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짜’임을 증명하려는 고군분투에도 주목한다. 표제작「혼모노」는 30년간 모시던 신령이 떠났음을 깨달은 박수무당 문수의 이야기다. 진짜임을 증명하려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는 역사적 비극 속의 개인에게도 투영되는데,「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고문 시설 설계를 명령받은 건축학과 교수를 통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인물들을 관찰하던 시선은 점차 거울이 되어 나 자신을 비춘다.「우호적 감정」의 진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 내가 그를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서늘한 자각이 스며든다. “너무 애쓰지 마요. 애쓰면 더 멀어져”라는 수잔의 말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진짜 이해를 방해할 수도 있다는 역설을 남긴다. 사랑한다고 믿는 마음이 상대를 위한 것인지,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인지 흐릿해지는 순간은「잉태기」에서 더욱 날카롭게 드러난다. 시부를 혐오하면서도 어느새 딸을 대상화하고 마는 화자의 모습은, 사랑과 집착의 경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다.
상처로 얼룩진 관계의 끝에서 작가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것은 결국 ‘용기’다. 마지막 단편「메탈」에서 함께 음악을 듣던 세 소년의 전성기는 상처와 침묵으로 끝났지만, 우림은 결국 전화기를 든다. 자존심을 접고 먼저 손을 뻗는 그 행동이 나약함이 아니라 진짜 용기라는 걸 알기에, 신호음이 울리는 순간 책을 덮으며 “제발 받아라”라고 기도하게 된다.
일곱 편 내내 흡인력이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결국 이 소설은 묻는다. 사랑과 집착을 나누는 경계는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인물들이 한동안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였다. 무겁지 않아서 더 깊이 파고든다 ‘진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사실 꽤 무거운 주제다. 작가 성해나는 ‘진짜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에 설교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인데, 읽고 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