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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비단 사회·국가적 영역의 문제만이 당연히 아니다.
분노의 절반 이상은 실제로 날마다 부딪히며 체감할
개인·관계적 요인이 차지한다.

미국정신의학회(APA)의 1994년판『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공식 등재되면서 국제적인 용어가 된 ‘화병(hwa-byung)’은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장기간 억누르고 분출하지 못해 발생하는 한국 특유의 분노증후군으로 가슴 답답함, 열감, 치밀어 오름, 만성적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여러 해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54.9%가 ‘장기적인 울분상태’에 처해 있다. 응답자의 약 70%는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인식했는데, 그 큰 이유로 입법·사법·행정부의 비리와 은폐, 정치정당의 부도덕과 부패를 꼽았다고 한다. 세상을 바로잡도록 위임된 권력 아래에서 벌어지는 각종 관리 부실 참사에 일반국민에 비해 높은 정치인의 전과율(약 35~45%)과 다범죄자율(30~40%)을 겹쳐놓고 보면, 다른 결과라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자기편이면 전과도 눈감아주며 표를 찍어주는 판이라 저쪽 보고만 뭐라고 할 일은 아니나, 화를 내지 않는 이도 화를 내지 못한 자신 때문에 뒤늦게 화가 나는 일도 많다면, 우리 사회에는 만성적으로 화가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꼴을 안 보고 살 수 없듯이, 우리가 건너야할 저 다리는 그야말로 외나무다리다. 사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같은 서식지, 좁은 선택지, 대안 없이 좁아터진 길에서 마주침은 필연적이다. 게다가 우리 안에 소용돌이치는 강렬한 분노와 원망이라는 심리적 자석은, 심지어 드넓은 광장에서도 상대를 콕 집어낼 수 있을 텐데, 이 좁은 길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서로를 원수로 만든 바로 그 조건이 외나무다리를 축조한다. 그 사이 달라진 게 없다면, 이렇게 점점 외나무다리는 더 좁아진다. 

 

분노는 비단 사회·국가적 영역의 문제만이 당연히 아니다. 분노의 절반 이상은 실제로 날마다 부딪히며 체감할 개인·관계적 요인이 차지한다. 개인적 특성들이 충돌하는 공간에 사회적 불안과 비교로 인한 압박이 밀려들고, 가족과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 대한 기대의 배반이 방아쇠로 작동할 때, 누군가 그 지긋지긋한 이차원의 동일한 평면을 탈출해 차원을 높여 다른 궤도로 올라서지 않는 한, 개인적 관계는 더욱 처절하게 피흘리는 전쟁이 벌어지는 외나무다리가 된다. 

 

그런데, 이 외나무다리가 실은 서로의 미숙함을 거울처럼 비춰주며 (전)생의 빚(카르마)을 청산하도록 대자연이 의무와 강제로 묶어놓은 정교한 시공간적 외나무다리라면? 물론, 감당할 수 없는 충돌은 성장이 아닌 파괴에 이를 것이므로 신체적·정신적 안전성, 상호소통의 가능성, 나의 역량에 따라 이 자리에서의 돌파, 전략적 거리 두기, 즉각적 단절 등의 선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설정이 아니면 서로 원수가 된 존재들끼리 다시 만나 은원을 해소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므로, 이 외나무다리가 실은 거대한 영적 실험과 성장 프로그램에 따라 대자연이 설계한 안배이며 저마다의 성장과 깨달음을 위한 현생학교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수과목이라면?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원수가, 사실은 내 영혼을 다음 차원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찾아온 가장 고마운 은인이라면?

 

가족과 연인이 가장 격렬한 감정의 빚을 갚는 최우선적 외나무다리요, 가까운 이웃과 공동체, 우리의 국가가 집단적 카르마와 은원을 풀어야할 다자간 해결 무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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