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더 인간적인 노동’의 미래

근로시간 적절히 단축하면 지식 노동의 생산성 증가

장기간 노동은 뇌 영역 손상 야기, 최적의 업무 효율성 위해 휴식 늘려야

주 4일제는 일종의 인센티브이자 출산율 저하와 기후 변화의 대응책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주 4.5일제는 주 4일제로의 이행을 고려한 과도기적 제도로서, 많은 국가가 근로시간 단축을 검토하거나 법제화하고 있는 전 세계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계의 요구는 수용한 반면 재계의 이익에는 반하는 급진적 정책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국제적 규모의 주 4일제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 오코너(Joe O’Connor)의 견해는 다르다. 주 4일제는 노동자의 워라밸뿐만 아니라 기업의 성과 증진에도 유익한 제도임이 입증됐으므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이다. 워크 타임 레볼루션의 CEO 조 오코너가 저널리스트인 재러드 린드존(Jared Lindzon)과 함께 쓴 『주 4일제가 온다: 왜 이제 더 짧게 일해야 하는가』(구세희 옮김, 지식의날개, 2026)에서 제시한 ‘더 짧게 일하고 더 큰 성과를 얻는 길’에 대해 살펴본다.


이현구 기자 zuibm@knou.ac.kr

실험으로 증명한 주 4일제의 필요성
이 책의 대표 저자 조 오코너는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2020년대의 국내외 언론 보도에 빠짐없이 언급돼온 인물이다. 아일랜드 최대의 노동조합인 포르사의 연구 프로젝트 책임자였던 그는 스웨덴, 아이슬란드, 뉴질랜드 등이 2010년대 중후반에 주 4일제를 적용해 긍정적 성과를 거둔 점에 착안해 사상 최대 규모의 실험을 기획한다. 2021~2022년에 영국의 61개, 북미의 41개 기업과 함께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한 것이다.


이 책에서 다뤄진 몇몇 기업을 살펴보면, 먼저 세계적인 소비재 생산 기업 유니레버의 뉴질랜드 지사는 ‘급여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행해 매출 성장과 사업 목표 달성을 이뤘다. 캐나다 밴쿠버의 법무법인 와이로는 살인적인 노동에 시달리는 변호사들의 잦은 퇴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 4일, 하루 9시간의 36시간 근무제를 시행해 퇴사율을 극적으로 낮추고 유능한 변호사들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람보르기니의 생산 부서는 2023년부터 주 4일제를 전면 시행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은 2019년 주 4일제를 도입한 후 오히려 생산성이 40퍼센트 향상됐다. 세계 최대의 크라우드 펀딩 기업인 킥스타터, 다국적 회계법인 그랜트 손튼 역시 근무일을 줄여 긍정적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기업 대부분은 근로시간 단축 후에도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유지됐다.


오코너는 OECD 회원국들의 연평균 근로시간과 1인당 GDP가 반비례하는 경향도 주 4일제의 정당성을 방증한다고 본다. 일부 예외에 해당하는 미국, 한국, 싱가포르 등의 국가도 근로시간 단축이 상대적으로 늦어진 것일 뿐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AI 시대의 노동은 더 짧아져야
저자는 기업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고 학계의 다양한 연구 결과와 통계 조사를 인용해 설득력을 더한다. 모든 주장의 근본적 전제는 영국의 해군역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제안한 ‘파킨슨의 법칙’으로, 업무 수행 속도는 주어진 시간에 비례한다는 게 골자다. 다시 말해, 사람은 단시간에 끝낼 수 있는 업무도 정해진 퇴근 시간까지 질질 끈다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교 등 여러 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대다수의 노동자는 불필요한 회의, 일과 관련된 잡담, 온라인 쇼핑과 SNS, 일하는 척하기 등 이른바 ‘가짜 노동’으로 총 근로시간의 약 40~60퍼센트를 허비한다.


저자는 이러한 비효율의 근본적 원인을 고고학적 연구 결과에서 찾았다. 인류 역사 전체의 95퍼센트에 달하는 수렵채집 시대의 근로시간은 주당 15시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허용하는 근로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던 셈이다. 농업 발명과 문명 탄생 이후 조금씩 늘어가던 근로시간은 증기기관과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제1~2차 산업혁명기에 주당 100시간까지 폭증했고, 소수 계층의 독점적 이익으로 환원될 잉여 생산을 위해 대다수가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기계가 돼버렸다.


정보화 기술 발달로 지식 노동의 비중이 커지고 휴무 제도가 정립되면서 주 5일제가 보편화됐지만, 오코너는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것조차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생성형 AI 등의 발달로 한 사람의 노동자가 처리하는 업무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뇌과학이나 긍정심리학 등의 연구 결과도 동원한다. ‘주 52시간 이상의 노동은 감정 조절과 실행 기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의 손상을 야기’하고, ‘뇌가 최상의 집중력과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더 긴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 생산성 향상이라는 성과를 얻은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고 지구력이 약한 것 같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병가, 결근, 건강보험, 육아 등의 비용이 크게 감소하는 반면, 남성의 가사 참여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외에도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는 여러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은 출산율 저하 극복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서도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 4일제는 전 지구적 문제인 기후 변화의 대응책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미국, 스웨덴, 스페인 등의 연구에선 근로시간 단축 시 에너지 소모량과 이산화탄소 및 아산화질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 4일제 실현 가이드
오코너는 독자들에게 주 4일제 도입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보다는 그러한 혁신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낼 것을 주문하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설득의 3요소로 알려진 에토스(신뢰성), 페이소스(감정), 로고스(논리와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


‘주 4일제 도입으로 직원들의 워라밸과 기후 변화 대응을 중시하는 진취적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다’(페이소스), ‘실질임금 정체 국면에서 근로시간 단축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인센티브다’(로고스), ‘주 4일제의 효용성을 입증하는 수많은 사례와 연구 결과가 여기 있으니 살펴보라’(에토스) 같은 식으로 상사나 동료를 하나둘 포섭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코너 등은 일부 기업의 실패 사례까지 분석한 뒤 주 4일제 성공을 위한 요건을 정리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합의,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상호 신뢰, 무의미한 회의 등 불필요한 업무 폐지, AI 등 생산성 향상 수단의 수용,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 중심의 평가 등이 그것이다. 개개인의 업무 효율성을 재검토하고 관료제의 구태를 척결하는 등 노사 양측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비판의 여지는 없는가
관련 제도의 변천사를 고찰해 기존의 주 5일제 역시 일종의 관습에 불과함을 밝히고, 근로시간 단축의 수많은 성공 사례를 제시하며 다양한 학문 영역의 연구 결과까지 소개한 오코너의 논리가 워낙 전방위적이고 촘촘해 회의적인 독자들도 반론을 제시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일요일만 쉬던 20세기 초 미국에서 주 5일제의 법제화를 이끈 주역 중 하나가 헨리 포드였고, 그 이유는 휴일을 늘려 대중의 자동차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노예제 폐지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산업 구조의 변화였던 것처럼, 더 인간적인 노동’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원동력은 이념과 인도주의가 아니라 기술 발달과 경제적 이익일지 모른다. 근무시간을 20퍼센트 줄인다는 발상에 본능적으로 반발하는 측에서도, 그러한 변화로 기업과 국가의 생산성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입장이 달라질 것이다.


다만, 오코너가 AI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를 취한다는 점엔 의구심이 든다. 이 책에도 소개된 버니 샌더스 미 연방상원의원은 오코너처럼 주 4일제 옹호자이지만 잘 알려진 AI 반대론자이기도 하다. 반대의 이유 중 하나는 ‘AI 도입으로 늘어난 이익은 거대 자본이 독점할 것이므로 빈부 격차는 더 커지고 실업률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샌더스 외에도 수많은 석학과 기업인들이 AI에 대한 의존이 인류에게 파국을 초래할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고, 그 경고의 내용도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챗GPT에게 오코너와 샌더스의 상반된 견해 중 무엇이 옳은지 물었고, AI는 이렇게 대답했다. “AI로 생산성을 크게 높인 후의 선택지는 세 가지뿐이야. ‘근로시간을 줄인다.’ ‘근로시간은 그대로 두고 임금을 올린다.’ ‘근로시간과 임금은 그대로 둔 채 늘어난 이익의 대부분을 자본이 가져간다.’ 그 셋 중 어떤 길을 선택할지, 그리고 AI가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기술 발달이 아니라 인간 사회와 정치, 시민의 결정에 달려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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