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프리즘

유연성에서 출발한 ‘nice’의 여정이 세상의 온갖 분별과 까다로움을 흡수해 가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개척해 갈지 궁금해지는 시절이다.


오늘날 긍정적인 의미나 칭찬을 전달할 때 아주 흔하고 광범위하게 쓰이는 영어 단어인 ‘nice’는 가장 극적으로 이미지를 ‘세탁(!)’하고 화려하게 변신한 단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13세기 후반, ‘ne’(not)와 ‘scire’(to know: 이 어근은 science[앎, 과학]와 통한다)가 결합된 라틴어 ‘nescius’에 뿌리를 두고 출발한 ‘nice’는 ‘무지한’, ‘어리석은’, ‘생각 없는’ 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nice’는, 비록 무지했지만 설치지는 않고 조신했기 때문인지, 14~15세기에는 ‘게으르면서’ ‘소심한’ 모습을 띠는 한편, 남에게 무슨 설득이 되기에는 머리 자체가 모자라지만 저 나름의 고집이 없지는 않았던지 제법 ‘까다롭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쉽게 ‘Yes!’하지 않는 까다로움이 꽤 길이 들고 단련되면서 16~17세기에는 이제 듣기 싫은 힐난이 아니라 다소 중립적으로 ‘정밀하다’, ‘세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꽤나 흥미로운 반전을 이룩했다.


그래 이대로 더 가보는 거야. 맞아, 괜히 먼저 가볍게 나서지만 않으면 중간 이상은 가는 법! 18~19세기 ‘nice’에게도 신분 상승의 새 세상이 열려, ‘고상하다’, ‘예의 바르다’, ‘품격 있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드디어, 길고 길었던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월이 끝난 것인가. 오늘날 ‘좋은’, ‘친절한’, ‘멋진’…. ‘nice’의 대중적이고 긍정적인 인기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심지어, 오늘도 땀 흘리는 구장, 혹은 저기 푸른 들판, 시원스레 쭉 뻗어가는 공을 보면서도, ‘나이스 샷!’ 이제는 너무 두루 나이스여서 ‘더 나이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상은 책상이고, 산은 산이지, 당황스럽게 갑자기 걸상이 되고 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단어들이 이렇게 천지개벽하(려들)면 그것이야말로 혼돈일 것이다. ‘nice’의 중심에 놓인 추상적 가치판단이라는 유연성이, 시대의 사회적 환경과 언어사용자 집단이 연루된 ‘구조적 우연’과 조우해 찬란한 변화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것이리라.


혹시, ‘nice’는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그냥 멈춰있었을 뿐인데, 이 모든 과정이 어쩌다 하루에 오직 두 번 정확하게 맞춘 의외의 경이로움에 기댄 허장성세였을까. 바보는 귀신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리 그래도, 언제나 정확할 수는 없어도 매 순간 그 비슷한 언저리를 가리키기 위해 손발 땀나게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변화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nice’는 추세적으로 살기보다 언제나 어떤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바보처럼 우직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기본을 지켜왔을 뿐, 변화해 온 것은 세상이었을까?


‘nice’는 억견과 계략, 파당적이고 주관적인 분별심, 온갖 그럴듯한 얄팍한 알음알이가 횡행하는 시절들을 관통하며, 아무것도 몰라 귀신도 어쩌지 못할 까다롭기 그지없는 바보가 되어, 재주부리는 기교와 계략에 흔들림 없이 세상의 찌든 알음알이를 물리치며 ‘몰라’, ‘모를 뿐’, ‘이뭣고’의 태도로 우직하게 걸어왔기에 오늘의 찬란함을 맞이한 것일까?


모르지, 오래전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던 단어가 지금 이렇게 두루 좋게 들리기만 하면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앞둔 것일지도…. 자신의 무지(無知)를 인정하며 텅 빈 유연성에서 출발한 ‘nice’의 여정이 세상의 온갖 분별과 까다로움을 흡수해 가며 앞으로 어떤 길을 개척해 갈지 궁금해지는 시절이다.

방송대 교수·영어영문학과


1좋아요 URL복사 공유
현재 댓글 0
댓글쓰기
0/300

사람과 삶

영상으로 보는 KNOU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
  • banner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