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완성된 작품을 기다리지 말고,
아직 설익은 마음이라도 먼저 세상에 내밀어 보라고.
방송대는 스무 살 무렵의 내게 두 장의 소환장을 보내주었다. 하나는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병역특례로 포스코에서 일하던 노동자에게 영문학 연구자의 길을 꿈꿀 수 있게 했고, 다른 하나는 문학을 동경하던 청년을 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두 장의 소환장은 같은 빛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영문학이라는 세계가 조금 더 밝게 보였고,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문으로 들어섰다. 그 뒤 시의 문은 오래 닫혀 있는듯했다. 나를 불러주었던 소환장도 빛바랜 일기처럼 책상 서랍 어디쯤 묻혀 잊혀 갔다.
돌이켜보면 문학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만화의 그림보다 말풍선 속 글자를 먼저 읽었고, 중학교 시절에는 낯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먼지 냄새와 거미줄 가득한 작은 도서관으로 숨어들었다.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처음 시를 썼고, 지역 전문대학의 단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되는 뜻밖의 일도 있었다. 졸업 후에는 문학동아리 ‘한울’을 만들어 시화전과 낭독회를 열었다. 그 무렵 나는 자연스럽게 시는 쓰고, 소설은 읽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음 가득한 작업장에서 시를 읽고 가끔 쓰고, 영문학을 공부하며 틈나는 대로 소설과 문예지를 읽었다. 시와 영문학, 그리고 소설은 번갈아 가며 내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1988년, 제12회 방송대문학상에 시를 응모했다. 얼마 뒤 박재삼 시인의 선으로 「바람에게」가 가작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상식에서 박재삼 시인은 자신의 시풍과 닮았지만, 다른 의지를 담고 있어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는 내게 심사평이 아니라 시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소환장이었다.
그 후 노동문학 관련 계간지 두어 곳에 시를 발표했고, 1990년 〈포항문학〉을 통해 등단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시가 늘 함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영문학과 문학, 철학 이론에 빠져들었다. 시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이자 출판사를 운영하던 제자가 SNS에 올린 내 시를 보고 시집 출간을 권했다. 오랜만에 컴퓨터 속 시 폴더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200여 편쯤 되는, 내가 의식도 못하고 낳은 시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 낯설고도 반가운 시들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엇을 떠올랐다. 책상 한 귀퉁이에서 빛이 바래가던 소환장. ‘방송대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내 삶을 시의 세계로 이끌어준 바로 그 소환장이.
나는 출간 제의를 미루고 다시 시 앞으로 돌아왔다. 몇 해 뒤 계간지 신인상을 통해 재등단했고,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오래 닫힌 줄 알았던 내 시의 문은 한 번도 닫힌 적이 없었다는 것을.
50년 동안 방송대문학상은 수많은 학우들에게 저마다의 소환장을 보내왔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문학을 향한 첫 용기를 북돋웠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준 호명이 됐을 것이다.
제50회 방송대문학상 공모전이 진행되고 있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더불어 지금 이 문학상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완성된 작품을 기다리지 말고, 아직 설익은 마음이라도 먼저 세상에 내밀어 보라고. 때로는 한 편의 작품보다 그 작품을 세상으로 보내는 용기가 한 사람의 삶을 더 멀리 이끌어주기도 한다고.
나에게 방송대문학상은 단순히 상 하나를 안겨준 일이 아니었다. 나를 처음 시의 세계로 이끌어주고, 오래도록 시를 잊고 산 줄 알았던 나를 끝내 다시 시 앞으로 불러내 지금을 살게 해준,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소환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