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은 국민이 배우는 대학’이 어떤 기준을 세우느냐는,
결국 이 사회가 AI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이번 학기 중간과제물을 평가하며 한참 고민한 과제물이 있었다. 문장은 흠잡을 데 없었지만, 생성형 AI로 작성한 것이 명백해 보였다. 점수를 어떻게 줘야 할까. 감점하자니 근거 삼을 기준이 없었고, 그냥 점수를 주자니 밤늦게 자신의 문장으로 써낸 다른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지금 대학 곳곳에서 이런 고민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답은 저마다의 판단에 맡겨진다. 활용은 이미 일상이 됐는데 기준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는 이 간극, 그것이 지금 방송대에 ‘AI 윤리 원칙’이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참고할 사례는 적지 않다. 이미 여러 대학이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고, UNESCO와 OECD도 AI 원칙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들을 참조해 비슷한 문서 하나를 보태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방송대의 윤리 원칙은 다른 대학의 것과는 결이 다른 무게를 지니기 때문인데, 그 무게는 원칙의 내용이 아니라 원칙을 세우는 방송대의 위치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방송대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첫째, 방송대는 국립대학이다. 국립대학이 세우는 기준은 한 기관의 선택을 넘어 공공 부문 전체가 참조하는 준거가 된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들이 저마다 AI 활용 지침을 마련해 가는 지금, 국립 원격대학의 윤리 원칙은 ‘교육 영역에서 공공은 AI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공적 답안으로 읽히게 된다. 그렇기에 방송대의 원칙은 다른 문서의 번안이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길어 올린 고유한 답이어야 한다.
둘째, 방송대는 원격대학이다. 대면 수업이 중심인 대학에서 AI 윤리는 여러 규범 가운데 하나지만, 교육의 전 과정이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원격대학에서 AI 윤리는 교육 그 자체의 신뢰를 떠받치는 기둥이 된다. 학습과 평가, 소통이 모두 화면 너머에서 일어나는 환경에서는 ‘무엇이 정직한 학습인가’에 대한 합의가 흔들리는 순간 교육 전체가 흔들린다. AI 시대 원격교육의 질문들을 방송대는 누구보다 먼저, 가장 절실하게 만나게 된다. 그래서 방송대의 원칙은 원격교육 반세기의 경험을 담아, 뒤따라올 온라인 교육기관들의 이정표가 돼야 한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방송대의 윤리 원칙은 시차 없이 사회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여느 대학이라면 윤리 교육의 효과는 학생들이 졸업해 사회로 나간 뒤에야 나타나지만, 방송대의 학습자들은 이미 사회 안에 있다. 오늘 저녁 강의에서 익힌 ‘AI를 대하는 태도’는 내일 아침 일터에서 곧바로 실천된다. 간호사는 환자 정보를 AI에 입력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고, 공무원은 AI가 작성한 문서를 검증 없이 결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배움과 실천 사이의 간격이 이토록 짧은 대학은 달리 찾기 어렵다. 그렇기에 방송대의 윤리 원칙은 학내 규범을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시민의 감각을 기르는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윤리 원칙은 완성된 규범집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는 약속이어야 한다. AI 기술은 문서의 개정 속도보다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원칙의 권위는 조문의 완결성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그것을 놓고 계속 묻고 토론하고 고쳐 쓰는 과정에서 나온다.
‘가장 많은 국민이 배우는 대학’이 어떤 기준을 세우느냐는, 결국 이 사회가 AI와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방송대의 윤리원칙이 학내의 문서로 머물지 않고, 우리 사회가 오래도록 돌아볼 든든한 기준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