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방송대 인권센터(센터장 이자명)가 시행한 ‘2026년 5월 가정의 달 맞이 인권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는 사회복지학과 3학년 김민아 학우였다. ‘인권백일장’은 올해 처음 개최된 행사였지만, 모두 461편이 접수될 정도로 재학생, 교직원의 관심이 뜨거웠다. 50대 중반인 김민아 학우는 1989년 여고를 졸업한 뒤 집안 사정으로 곧바로 취업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도 공부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아 취업과 함께 방송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결혼, 퇴사, 자녀 양육 등 우여곡절 끝에 9년 만인 1998년에 방송대를 졸업하고, 거의 30년 만에 다시 편입학해 새로운 공부에 도전하고 있다. 8월 19일 김 학우를 만나 인권백일장, 방송대 공부의 의미 등을 들었다.
최익현 선임기자 bukhak@knou.ac.kr
이번 인권백일장을 통해 제 삶의 경험도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예전에는 인권이라고 하면 저도 조금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권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요.
28년 만에 다시 첫 학기를 시작하면서 여느 때처럼 학교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김민아 학우의 눈에 어느 날 ‘인권백일장’ 안내가 쏙 들어왔다. 몇 번 망설이다가 용기를 냈다. 그가 인권백일장의 문을 두드린 계기는 의외로 소박하면서도 명확했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걸어온 삶의 궤적 안에서 그 의미를 스스로 질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인권’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게 느껴져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거대한 사회 문제 이전에 제가 살아온 일상과 지나온 삶의 순간들 속에도 분명 인권의 숨결이 있을 거로 생각했고, 정직하게 제 삶을 돌아보고 기록해보고 싶어 용기를 냈죠.”
일상의 기억에서 발견한 ‘인권의 무게’
김 학우가 백일장에서 선보인 글「큰 소리로 웃지 말아라」라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이자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한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늘 ‘여자가 큰 소리로 웃으면 복 달아난다’,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당시에는 저를 바르게 키우려는 사랑의 조언으로 받아들였지만, 머리가 커지고 사회를 경험하면서 그것이 여성이라는 특정 성별에 부여된 행동 양식이자, 한 인간으로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은연중에 제한하는 틀이었음을 깨닫게 됐죠. 나의 감정과 행동의 폭이 성별이라는 이유로 재단되는 것이 곧 인권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우수상 수상 소식을 접했을 당시 그는 놀라면서도 ‘내 글이?’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기쁨은 더욱 컸다. 이 기쁨을 가족과 함께 나눴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남았던 것은 아주 개인적인 제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이었죠. 저만의 기억이라고 여겼는데, 어쩌면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많은 여성의 기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상을 받고는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는 일이 누군가에는 ‘나도 그랬어’라고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구나, 저에게는 그것이 상만큼이나 기쁜 일이었죠.”
그는 백일장 글쓰기 과정을 거치며 어머니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배웠을 것이고, 그 시대에 딸을 잘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에 맞게 잘 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걸, 딸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제 글은 단순히 ‘이제부터 나는 큰 소리로 웃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아직도 누군가가 정해놓은 모습에 나를 맞추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제 글은 웃음에 관한 글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자기 삶의 주인이 돼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가 도달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어떤 모습일까.
“예전에는 인권이라고 하면 저도 조금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권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아닐까요. 글을 쓰면서 인권이 결코 투쟁의 현장이나 법전 속에만 갇혀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 목소리를 온전히 내는 것, 내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삶을 감히 나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가장 가까운 배려’가 바로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걸 깊이 성찰하게 됐어요.”
1989년과 2026년, 두 번째 만난 방송대
1989년 경제학과에 입학해 9년 만에 졸업하고, 50대에 다시 방송대를 찾은 김민아 학우의 두 번째 방송대 공부,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30년 근속한 회사를 퇴직한 남편이 보건환경안전학과를 선택해 함께 ‘든든한 동료 학우’가 됐다.
“20대 시절에 선택한 방송대는 생존을 위한 스펙이자 자아실현을 향한 간절한 통로였어요. 반면 50대가 된 지금 방송대 선택은 타인과 사회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제가 받은 따뜻함을 세상에 다시 나누기 위한 길입니다. 경제학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효율성을 배웠다면, 사회복지학을 통해서는 사람의 마음과 삶의 그늘을 보듬는 법을 배우고 있답니다. 마침 퇴직한 남편도 새로운 공부에 함께 도전하고 있어 듬직하고요.”
30년 만에 다시 들어선 방송대 교정은 그에게 매 순간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학교도, 강의도. 시스템도 모든 게 정말 ‘놀랍게’ 변화했더라고요. 무엇보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교재’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공부할수록 교재가 정말 좋은 학업 길잡이가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 시작한 공부는 젊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주더라고요. 이제는 시험 점수에 연연하기보다 배움 그 자체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됐죠. 방송대는 저에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고마운 학교입니다.”
그런 김 학우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라는 건 여전히 어려운가보다.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가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과제 마감은 다가오고, 진도는 안 나가고, 책을 읽어도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오는 날이 있어요. 저에게 이런 생활은 아주 낯선 일이 아니거든요. 20대 때에도 해운회사에 다니면서 경제학 공부를 했는데, 야근하고 돌아와 책을 펼쳤다가 많이 졸기도 했고, 계획대로 공부하지 못한 날도 많았어요. 그래도 조금씩 이어갔고, 결국 졸업했어요. 그래서 지금 힘들 때, 가끔 그때의 저를 생각하죠. ‘그때도 완벽하게 한 건 아니었는데 결국 끝냈잖아.’ 그 생각이 저에게 힘이 돼요. 지금 제가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완벽하게 하기’가 아니라 ‘공부와의 끈’을 놓지 않는 일입니다.”
“자기 속도로 함께 완주하자”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일이 너무 바빠서’라는 이유로 도전이나 배움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는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자기 속도를 유지하면서 같이 완주하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방송대 학우분들은 각자 책상 앞에 앉기까지의 사정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았으면 해요. 저도 다른 사람이 너무 잘하는 것처럼 보이면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못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때는 다른 사람 대신 예전의 저를 봅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다면, 그것도 분명한 변화니까요. 저에게 방송대는 오래전부터 그런 곳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제 공부는 한 번도 아주 빠르거나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이어졌죠. 그래서 제가 학우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학기가 있을 수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 잠깐 쉬어야 할 때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제 쉬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잠깐 쉬더라도 다시 이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늦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 너무 힘들다면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한 페이지면 한 페이지, 강의 하나면 강의 하나. 그렇게 하루하루 이어가다 보면 어느 날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여기까지 왔네’ 하는 순간이 올 거로 생각해요. 물론 저도 아직 그 길 위에 있고요. 그래서 그냥 함께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도 그렇게 걸어가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소소한 기억에서 출발해 타인의 인권과 삶까지 보듬어 안는 김민아 학우. 남의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조금 힘들어도 조금 늦어도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오래전 청춘의 시간을 지나온, 그래서 지금은 좀 더 깊어진 삶의 길목에 선 성숙한 학우의 당당함과 배움의 열정이 가득 엿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