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U광장   마로니에

오르막길 앞에선 팔에 힘이 빠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뒤에서 말없이 휠체어를 밀어주고
옆에서 함께 뛰어준 동료 학우들이 있었다.

 

제12회 ‘I Love 방송대 마라톤’ 대회 5km 코스를 열 살 딸과 함께 완주했다. 30대 때 휠체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은 경력이 있었기에 대회에 나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5km쯤이야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체중의 변화 때문인지, 휠체어에 몸을 싣고 달리는 5km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평지에서는 어느 정도 속도를 낼 수 있었지만, 오르막길 앞에서는 팔에 힘이 빠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순간, 뒤에서 말없이 휠체어를 밀어주고 옆에서 함께 뛰어 준 동료 학우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과 발 그리고 응원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결승선을 밟지 못했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딸과 함께 새벽이고 저녁이고 시간을 내어 연습했던 기억도, 돌아보면 마라톤 그 자체보다 더 값진 시간이었다.

 

스물일곱 살 되던 해, 낙상 사고로 척수경막내출혈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날 이후 내가 그리던 학업도, 그동안 이어 오던 생계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억울했다. 여전히 공부하고 싶었고, 일하고 싶었다. 먼저 일을 시작했지만, 정작 공부는 어디서부터 다시 붙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딸이 태어나고, 아이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하는 순간마다 부족한 학력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아이 앞에서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방송대를 만났다. 일하면서도, 육하하면서도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 온 장애인 복지를 전공으로 배울 수 있어 매일이 행복했다. 나는 방송대가 마라톤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버거운 길도 여럿이 함께라면 끝까지 걸어갈 수 있고, 몇 등으로 들어왔는지보다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는지가 훨씬 더 소중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면 너머로 만나는 얼굴 모를 동료들이지만,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마라톤이었다.

 

완주는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도저히 못 넘을 것 같던 오르막을 결국 넘어섰듯이, 나는 방송대 졸업이라는 또 하나의 완주도 반드시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딸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앞으로도 나는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딸과 함께 마라톤 결승선을 넘을 것이고, 언젠가는 딸과 나란히 학사모를 쓰고 졸업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

 

장애인 복지를 공부하면서, 나는 이론과 삶이 겹치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강의에서 배우는 자립생활, 장애인 이동권, 사회적지지 체계 같은 개념들이 나에게는 그저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이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배우고, 배운 것을 언젠가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다짐을 매번 새롭게 한다. 학과 대표를 맡으면서 만난 많은 학우들 역시 저마다의 사정으로 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들이 많았다. 서로의 사정을 굳이 묻지 않아도 이해하고 , 과제와 시험 앞에서 서로를 다독여주는 그 마음이 나에게는 또 다른 힘이 돼줬다.

 

완주란 결코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나를 밀어준 딸의 작은 손, 오르막에서 함께 뛰어준 학우들의 응원,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배움의 문을 열어준 방송대가 있었기에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이 완주가 끝이 아니라, 더 큰 완주를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오늘 이 마라톤에서 그러했듯이 나는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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