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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30여 년을 마치고 은퇴한 지 10년째다. 지난 세월을 부질없는 세상 걱정과 세월 탓이나 하면서 무위도식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동안 방송대에서 중국 문학과 일본학을 공부했는데 참으로 값진 시간이었다.
30여 년 만에 다시 시작한 공부가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千里之行始于足下)’라든가 ‘돌 위에도 3년(石の上にも三年)’이라는 속담을 위로 삼아 학습한 결과, 이제는 중국어나 일본어로 된 글을 더듬더듬 읽고 해독하는 수준이 되었다. 틈틈이 야후재팬과 바이두(百度)에 들어가 검색하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그야말로 눈의 비늘이 떨어진 느낌이다.
졸업을 앞두고 같이 공부했던 학우들과 ‘일본 명작 기행’을 흉내 내 다녀온 일본 북규슈 여행은 일본학 공부의 하이라이트였다. 일행 모두가 일본어를 할 수 있으니 모든 계획을 스스로 만들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찾아다니면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는 재미를 만끽했다.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1903~19
51)가 쓴 명작 『방랑기』의 무대를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가난으로 학교를 작파한 열두 살 후미코가 다녔던 강정 공장이 있던 마을, 후미코가 엄마와 같이 바나나 노점상을 했다는 신사 앞, 친구들과 어울려 걸었던 온가 강 제방 등등을 확인하면서 느낀 희열은 전율 그 자체였다.
후미코가 태어난 곳, 일본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였던 시모노세키의 바닷길을 걸으며 들렀던 슌판루(春帆樓), 거기서 만난 이토 히로부미와 이홍장 그리고 망국의 길로 접어든 조선의 모습을 보면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괴테의 말을 실감했다. 이 모두 방송대에서 학습한 결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졸업 후에도 계속 중국과 일본을 공부하련다. 특히 멀고도 가깝다는 일본, 일본을 알아야 이기든지, 지더라도 왜 지는지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학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일본어 번역연구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일단 지원했다. 앞으로 계속 일본과 인연을 이어가면서 더 공부하려는 희망이다.
희망을 품는다는 의미는 씨앗을 뿌리는 일. 이제 또 씨앗을 뿌렸으니 씨앗에 대한 예의로 물도 뿌려주고, 거름도 주면서 김도 잘 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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