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30년 앞서간 ‘시간 여행자’라는 수식어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가수 양준일이 그 주인공이다. 양준일이 ‘시간 여행자’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 뮤지션과는 다른 차원의 특별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패션과 세련된 음악적 성향으로 앞서 갔지만 당대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2020년 현재, 양준일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대세로 떠오르며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사실 그가 이렇게 주목받고 있는 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힐링’ 때문이다. 양준일을 통해 힐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양준일에 열광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이 형 잘 됐으면 좋겠다”, “보는 것만으로 힐링이 된다”, “스토리 자체가 힐링이다”등 응원이 봇물을 이룬다. 점점 치열해지고 각박해지는 현대사회에서 양준일이 꿋꿋이 견뎌온 삶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울림을 가져다 주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갈증 채워주는 무엇?
힐링(healing)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뜻이다. 그리스어 ‘홀로스(holos)’에서 유래해 건강(health)과 어원이 같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질병과 허약함이 없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well-being)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힐링은 개인의 심리적 안녕과 행복을 지키는 것 외에도 사회 공동체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정신적 공허함이 커져가는 증상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달리 얘기하면 압축적 고속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으로 인해 전통적 인간관계가 깨지고 1인 가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됐다. 이는 다시 자기반성과 성찰로 이어지고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신적 갈증을 충족켜야 할 ‘무엇’이 필요했는데 문제해결의 대안적 방안으로 ‘힐링’이 대두된 것이다.
2010년대 미디어·출판시장 대세는 ‘힐링’
당시 미디어가 이러한 흐름을 감지하고 대중들이 원하는 힐링 관련 상품을 내놓았다. 대략 10년 전 즈음이다. 2011년 7월, 소통과 치유를 내세운 ‘힐링캠프’가 첫 방송을 타기에 이른다. ‘힐링’이라는 분위기에 맞춰 당시 공격적이거나 자극적 토크쇼와는 달리 착한 토크쇼를 표방, 5년 가까이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방영될 수 있었던 것은 인물에 대한 속 깊은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출연한 게스트도 자신의 고민과 아픔 등 속내를 밝히면서 마음의 치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유명세 덕분에 프로그램에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명사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출판업계에서도 힐링 트렌드가 급속하게 확산된 시절이 있었다. 2011년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대표적이다. 당시 출간 한 달만에 판매 부수 10만부를 돌파하고 같은 해 8월 100만부를 넘어섰다. 청춘의 고민을 꿰뚫는 날카로움도 있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었다. 김 교수가 청년들에게 건넨 위로와 격려가 힐링으로 작용한 것이다. 힐링 서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책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2012년 1월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이 책은 최단 기간 100만부를 돌파하며 이듬해에도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힐링 열풍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당시 출판계의 키워드는 ‘힐링’이었고, 베스트셀러들은 ‘힐링’을 주제로 한 서적들로 대거 채워졌다. 그만큼 힐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힐링 찾아 삼만리, 방식은 맞춤형으로
자, 이제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여전히 힐링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거나 레저 활동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꾀하거나,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면서 오히려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고된 노동으로 땀을 흘릴 때 힐링하는 느낌이 든다거나, 자기계발을 통해 스펙업을 이뤄가며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 가운데 여행이나 레저는 다른 방식들보다 훨씬 보편적인 힐링이라고 할 수 있다. 서동철 여행작가는 “여행이나 캠핑의 경우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새로운 환경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탐험함으로 새로운 자신 또는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데서 힐링을 얻는 것 같다. 반면 레저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전문성 획득과 자아성취를 이뤄내 힐링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여행이 주는 힐링과 관련해 국내 대표 여행 커뮤니티 ‘여행에미치다’ 조병관 브랜드팀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조 팀장은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지역의 음식을 먹으면서 얻는 행복감 그리고 대자연을 마주하면서 느꼈던 소름과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릴 수 있는 액티비티의 짜릿한 순간들이 모두 힐링이 아니겠나”라며 “다만 누구의 어떤 힐링이 더욱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힐링을 느끼는 순간들이 다른 것처럼 진정한 힐링은 기준이 따로 없다”고 밝혔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자기계발을 통해 힐링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부류의 사람들은 성장해가는 본인의 모습을 보면서 힐링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화심리·자기계발전문가 오수향 SHO대화심리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직장에서만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갖는 데 있어서도 성장하는 사람이 매력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자기계발을 통해 학습해가면서 조금씩 발전하고 성취해가면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트레스와 지친 일상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누구나 힐링하기를 원한다. 다만 각자 힐링을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고 힐링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 뿐이다. 이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힐링이다. 이를 위해 우울과 불안 등 부정적 감정을 힐링을 통해 덜어내는 훈련과 ‘자아’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노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