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동안 축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국내에 축제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886건의 지역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240개 시군구로 나누면 지자체당 3.7개꼴이다. 국내 축제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과열 현상이다. 숫자가 많은 것은 물론, 한 지자체에서 같은 소재로 두 개의 축제를 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콘텐츠의 차별화가 거의 안 된다는 것이다. 장소와 이름, 특산물 정도만 다를 뿐 어디를 가도 비슷한 프로그램의 축제가 펼쳐진다.또 하나의 특징은 ‘잡는’ 게 많다는 것이다. 강이나 갯벌에서 열리는 축제 현장에 가면 물고기든 조개든 게든 잡는 걸로 시작해서 잡는 걸로 끝난다. ‘생태’나 ‘환경’ 같은 타이틀을 걸어놓고도 반자연적인 포획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겨울축제에 가면 절정을 이룬다. 곳곳에서 송어, 산천어, 빙어 등을 잡는 축제가 벌어진다. 물고기는 움직임을 줄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게 겨울을 나는 방법이다. 그런 그들을 깨워서(대부분 축제를 위해 양식된 물고기들이다) 낚시 바늘 앞으로 몰아낸다.문제는 그런 축제의 주 고객이 아이들이 있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방학을 맞아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축제 현장을 찾는 것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며 동작이 굼뜬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가족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데려가서 기껏 하는 일이 물고기를 잡아 회를 치거나 굽고 끓이는 것이다. 그런 경험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까? 물론 부모들은 “축제라도 찾아가지 않으면 아이들을 어디로 데려가란 말이냐?”고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곳이 그곳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만한 것이 없다.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정책적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가족여행은 아이들을 ‘놀 만한’ 장소에 ‘부려놓는’ 게 아니다. 부모가 공부하고 아이들 중심의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다.
여행,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Hallstatt : 호수 이름이지만 마을 이름으로 흔히 쓰인다)에 갔을 때 인상 깊은 장면을 보았다. 지금은 관광지로 더 유명해졌지만 이 호수마을은 예전에 소금광산이었다. 이제는 소금을 캐지는 않고 전시관으로 쓴다. 그곳에 서양인 부부가 유치원생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견학을 시키는 방법이 독특했다. 우선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소금원석 앞에서 만져보고 맛을 보고 느끼도록 해줬다. 그 뒤 소금이 얼마나 유용한지, 인체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을 보탰다. 주입식이 아니라 문답식 학습이었다. 아이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히 줬다. 학습은 학습에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만져볼 수 있게 해야지?” “너는 이제 이쪽에 와서 보지 않을래?”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대중 속에서의 질서와 예의를 가르쳤다. 아이는 내내 뿌듯한 표정이었다. 반대의 기억도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에 갔을 때였다. 익숙한 말이 들려서 돌아보니 한국인들이 모여 있었다. 두 세 가족이 함께 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중고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여럿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사진을 다 찍자 곧바로 광장을 떠났다. 그곳이 왜 영웅광장인지, 헝가리는 어떻게 이민족의 침략을 물리쳤는지… 아니,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련의 지배와 반공의거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해주면 좋으련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여행 계획 짜보자
여행 강연을 하다보면 꼭 나오는 발언이 “한국에는 갈 곳이 없다”는 불만이다. 아이들과 함께 할 프로그램이 없다는 말도 단골메뉴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누가 짜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짜는 것이다. 가족여행을 계획할 때는 먼저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의논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몰이’하듯 아이들을 끌고 다니면 사진밖에 남는 게 없다. 보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다녀오고 나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와 같은 질문도 받는다. 별 노력을 안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찾아보면 나름대로의 개성을 갖춘 박물관과 미술관이 즐비하다. 여행을 계획할 때, 그 지역의 작은 박물관들을 미리 검색해보는 것도 좋다. 꼭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갈 필요는 없다. 그런 곳만 찾아다니면 아이들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도 좋다. 경북 예천에 가면 ‘삼강주막’이라는, 이 나라 마지막 주막이 있다. 그곳을 지키던 주모가 떠난 뒤 허물어진 집을 경상북도와 예천군이 수리하고 증축해서 옛 모습을 복구해 놓았다. 그곳에 가면 주막집 부엌에 꼭 들어가 봐야 한다. 부엌 벽에 부지깽이로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선(線)을 찾아보자. 그 짧은 선들이 외상장부다. 선의 길이와 굵기 등에 따라 사람과 액수를 구별했다고 한다. 한글을 못 배운 주모의 고육지책이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과서가 아닐까?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나는 대개 섬을 권한다. 우리의 전통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조금 멀기는 하지만 외연도라는 섬에 가면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상록수림을 만날 수 있다. 뭍에서 볼 수 없는 자연환경이다. 작은 섬답지 않게 전설도 풍부하다. 섬을 한 바퀴 도는 트래킹 코스는 환상적이다. 그곳을 함께 걸다 보면 사람 사이의 어떤 벽도 무너질 것 같다. 마음의 치유는 말할 것도 없다. 또 청산도에 가면 뭍에서는 볼 수 없는 초분(草墳)과 구들장논을 볼 수 있다.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유물이다. 그것들을 살피다 보면 지금의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행은 누가 마련해준 곳에 가서 마련해 놓은 프로그램대로 놀다오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서 찾아가는 것이다. 축제 현장만 찾아다니며 비슷비슷한 체험을 하지 말고, 자신의 가족에게 최적화된 여행을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세상에 여행보다 가치 있는 교과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