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일년을 시작하는 조금 특별한 방법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를 가리킨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 시간에 대한 정의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과학적 관점, 철학이나 종교적 관점,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관점 등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간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우스갯소리를 보태자면 “누군가 호감스러운 이성과 1시간 동안 나란히 앉아 있으면 그 한 시간은 1분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뜨거운 난로 옆에 1분 동안 앉아 있으면 그 1분은 1시간처럼 느껴질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시간 개념과 관련해 같이 묶어 생각할 수 있는 게 바로 ‘달력’이다. 사실 달력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이며, 과학기술사에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우리에게 달력은 이미 생활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달력의 활용도로만 놓고 보면 그 쓰임새가 나날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2020년 초입, 새해를 달력과 함께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맞이해 보면 어떨까.      

 

달력의 역사와 유래
거칠게 표현하자면, 시간들이 하나로 모여 자취를 이룬 게 달력이다. 다시 달력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해와 달, 날과 시간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또 이것들을 기표로 만들어 기록해 달력으로 사용했다. 원래 ‘달력(calendar)’은 라틴어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유래됐다. ‘흥미 있는 기록’, ‘회계 장부’라는 뜻이 있다.
그렇다면 달력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달력의 사용은 기원전 4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할 때 주기적으로 보이는 별인 ‘시리우스’를 기준으로 한 해의 일수를 정했다. 1년은 열두 달, 한 달은 30일로 해서 총 360일이 됐고, 나머지 5일은 축제 기간으로 삼았다.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를 공격했고, 그 달력을 로마로 가져가 고대 로마력과 접목시키고자 애를 썼다. 여기에서 율리우스력이 나온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6년에 제정해 기원전 45년부터 시행한 양력(陽曆) 역법이다. 김충섭 교수가 쓴 『메톤이 들려주는 달력 이야기』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의 조언에 따라 기원전 45년부터 태양력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역법을 시행하게 됐다. 태양력을 기본으로 해 1년을 12개월 및 365.25일로 했다. 율리우스력은 태양력을 근간으로 4년마다 2월 29일을 추가하는 윤일을 두어 만들었다. 따라서 윤년에는 366일이 됐다. 하지만 그동안 로마에서 시행되던 로마력의 틀에 맞춰 제정됐다. 로마력의 1년은 355일이었으므로 10일이 늘어났는데, 이 늘어난 10일을 각 달의 끝에 나눠 넣어 달의 크기를 고르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역법과 실제 시간이 맞지 않자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그레고리력(신태양력)을 제정했다. 그레고리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 기존에 쓰이던 율리우스력의 역법상 오차를 수정해 공포한 것이다. 이 그레고리력이 오늘날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달력이다. 일곱 날이 요일로 되어 있는 주일과 30일, 31일로 교대되는 달을 두고 2월만 예외로 28일이되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윤달로 구성하는 식이다. 

우리 조상들, 농사·생활 지침서로 달력 활용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달력은 어땠을까. 과거 농경사회에서 달력은 계절 변화를 예측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료였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해야 했기에 날씨를 추측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예를 들어 춘분에는 어떤 농사일을 해야 하는지, 모내기가 한창일 때인 망종은 며칠인지 등을 알아야 성공적인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삼국시대 이전의 한반도로 가보자. 삼한시대의 경우 절기를 예측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었다. 마한 사람들은 매해 5월, 씨뿌리기 전에는 풍년을 빌었고, 10월에 추수가 끝나면 무사히 곡식을 걷게 해준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치렀다.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당(唐)의 선명력을 그대로 썼다. 고려시대 달력은 날짜별로 길흉을 예시한 사항들로 가득했다. 조선시대 달력은 책의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책력(冊曆)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렸다. 특히 책력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열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농경생활의 지침서로서 또는 절기와 의례, 길흉일 등을 볼 수 있는 생활의 지침서로 활용됐다. 조선 전기에 1만부 정도 발행되던 책력은 조선 후기에는 30만부 이상 발행됐다.
해방 이후 달력에는 시대적 흐름이 반영돼 있다. 1950년대는 애국심이, 1960년대는 국가 주요 시책이 달력에 포함됐다. 1970년대는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는 서울올림픽과 같은 국가적 행사가 등장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해온 달력의 변천사를 통해 당시의 시대 상황, 국가 정책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정성희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달력에 대해 “‘달력’은 시간의 흐름을 측정해 그 법칙을 깨달은 인간의 위대한 기록물”이라며 “우리 선조들은 무한한 우주의 시공에도 일정한 주기와 규칙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앞날을 예측하고 생활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삶을 통제하는 달력의 힘
오늘날에 쓰이는 달력도 시간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시간에 쫓겨사는 현대인들의 스케줄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측면이 훨씬 강해졌다. 독일 고전문학자인 외르크 뤼프케가 쓴 『시간과 권력의 역사』에 따르면 달력은 일상을 결정하는 시간의 리듬이 들어 있고, 집단이나 개인에 관한 역사적 침전물이자 상징으로서의 날짜인 기념일과 축제일들이 기록돼 있다.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통제의 도구로 활용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학생들은 학교생활 시간표를 받게 되고, 여기에 따라 통제와 관리를 받게 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달력에 나온 일정에 따라 어떤 일이 시작되고 마감된다. 계약이나 업무를 수행하는 일정을 표시하는 데 있어 달력이 인간의 생활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결국 시간과 달력이 갖는 사회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시대가 달라져도 달력의 내재적 특성은 변하지 않았다. 달력은 질서화된 생활을 하는 데 도구적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유용성이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하면서 종이달력 수요는 줄어들고 있으나 여전히 달력은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다. 따라서 달력이 우리의 시간과 일상을 통제하고, 사고와 감정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유리한 시간 관리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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