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는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 해석을 보조하는 작가의 전기적 사실은 여전히 2차적이지만 매우 중요하고, 육성 회고나 증언도 유용하다.
2018년 7월 23일 투병 끝에 타계한 작가 최인훈은 한국 문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인이다. 문단 어느 곳에 기댄 인물이 아니라, 어느날 홀로 ‘1960년대 한국 현대문학’을 스스로 열고 나타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생전 그는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정병준 교수가 2017년 7월 15일 그의 고양시 자택을 찾아 진행했던 인터뷰는 역사학자와 작가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 역사학자가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사를 보완할 수 있는 사료적 의미를 지닌다. <역사비평> 2019년 봄호(126호)에 발표된 ‘대담 최인훈 인터뷰’에는 이 인터뷰 해설글과 「『광장』과 4·19의 연관성이 실려 있다. 4·19의 자장 안에서 탄생한 『광장』의 의미론적 지평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뷰 주요 장면을 발췌했다.


정병준:『광장』은 1960년 4·19가 나고 나서 10월인가 11월에 발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쓰게된 데는 4·19라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 동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최인훈: 4·19 이전까지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한국문학조차도 정치적인 반공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거든요. 하여튼 1960년 그 1년과 5·16 사이에 해방 이후 남한에 존재했던 일체의 모순들이 폭발한 건데, 이제는 뭔가 좀 말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에는 ‘반민법’(반민족행위처벌에 관한 법률)이 존재했습니다. 반민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었다는 건, 큰 정치의식이, 그럴 만한 ‘분위기’가 존재했다는 겁니다. ‘분위기’라는 막연한 말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뭔가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그 사람들한테는 기본적으로 헌법 이전의 헌법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게 있었다는 얘깁니다. 반공법이 등장하면서 반민법은 사라져버렸지만요. 그런 데 해방 직후 반민법 시절의 그런 분위기가 1960년에 있었다는 거예요. 내가 『광장』을 발표한 잡지 <새벽>도 그런 데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병준: 원고를 미리 써놓은 것은 아니었나요?
최인훈: 미리 써놓은 것은 아니었어요. 나는 그때 그게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뭔가 쓰고 싶은 것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전문적인 재료가 없었음에도, 그보다 더 중요하게 큰 시대가 열렸다는 정신적인 해방감 같은 것이 집필에 작용했습니다. 내가 무슨 논문을 쓰거나 학술잡지에 발표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소설을 쓴 거니까.

정병준: 선생님도 『광장』을 쓰실 때는 이 소설이 지니게 될 사회적·역사적 파장에 대해 명확한 자각이 없었던 거지요?
최인훈: 없었지요. 무슨 위험한 일을 한다든지 하는 생각도 안했어요. 그때 저는 정치적인 식견은 고사하고 세계 정치사나 한국 정치사, 한국 현대사 같은 것에 대해서 뭔가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거지요. 작가로서 만들어진 것처럼.

정병준: 제 생각으로는, 만약 선생님이 그 이전에 정치나 이념, 사상 같은 것에 대해 민감했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면 오히려 이걸 쓰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최인훈: 『광장』을 쓸 무렵의 나를 돌이켜보면, 남한 출신 작가들 특유의 완전히 비정치적인 의식, 대단히 막연하고 비사회적인 전통, 이런 작가들이 심취하기 쉬웠던 ‘조국의식’ 같은 것에 푹 빠질 만한 남한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내가 『광장』을 쓴 것은 운명적인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생물학자가 생태 연구를 하듯이 남북을 오가며 가볍게, 심오하지 못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물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내놓기에 대단히 적절한 정신상태였다 이거지요. (웃음)

정병준: ‘광장’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된 건가요?
최인훈: 그거는 왜 ‘광장’이라고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뭐라고 꼭 집어서 장담할 게 없어요. 왜 광장이라고 했을까. 그때 내가 막연히 광장을 비교적 정치적 공간으로 생각한 모양이죠. 혁명이라는 게 광장에서 결판나고 시작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왜 광장이라고 지었는지 그것은 모르겠어요.

정병준: 소설을 다 쓰고 나서 광장이라는 제목을 지었나요, 아니면 처음부터 광장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소설을 쓰셨나요?
최인훈: 처음부터 제목을 가지고 쓰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그 속에 광장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기도 하고. 이 게 주제와 꽤 관계가 있다,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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