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도 고려대 교수·언어학 - 파리10대학교에서 언어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기호학회 부회장, 학술지 <세미오티카>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도시 인간학』, 『호모 모빌리쿠스』, 『기호, 리듬, 우주』 등을 썼으며, 『소쉬르의 마지막 강의』, 『그라마톨로지』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대 언어학의 황금기는 20세기초 생산된, 구조언어학과 생성문법의 두 패러다임으로 압축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 두 개의 혁명적 에피스테메를 창조한 천재는 소쉬르와 촘스키다. 물론, 야콥슨, 블룸필드, 그레마스 등 현대 언어학의 빛나는 별들이 즐비하나, 이 두 명의 천재가 없었다면, 현대 언어학의 자산은 훨씬 빈약했을 것이며, 현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추동시킨 인식론적·방법론적 프로그램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세기 언어학이 누린 황금기는 두 번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정도로, 그것의 지성사적 업적은 눈부실 정도로 화려했다.
17세기의 고전주의 언어학이 창발된 근대 시기는 서양 언어의 근대화에 해당되며, 이른바 서양 인문학의 기본 삼학(Trivium) 즉, 문법, 수사학, 논리학의 전통을 계승했으며, 이 시대에 나온 가장 위대한 작품은 포르-루아얄 문법과 논리학을 꼽을 수 있다. 18세기에 라이프니츠를 비롯해 다수의 사상가들이 보편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루소와 콩디약, 헤르더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언어의 기원, 본질, 기능에 대해 치열한 성찰과 생산을 내놓으며, 20세기 못지않은 서양 언어 사상사의 가장 뜨거운 한 장을 장식했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의 사상적 자장 안에서, 인간 문명의 타락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 순수 언어의 뿌리 찾기와 민족어의 가치를 자각하고 방언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1850년부터 1916년(소쉬르의 유고작, 『일반언어학강의』 출간연도)은 역사언어학의 헤게모니 시대였으며, 그것을 추동시킨 강력한 엔진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20세기 초반기에 유럽에서 태동한 구조언어학은, 레비-스트로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첨단모델을 제공했다. 미국의 구조언어학은 보아스, 사피어, 워프 등이 미국 인디언 언어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목표로 삼았고, 철저하게 경험적인 관점을 취했으며, 언어 상대성 이론을 내놓았다. 구조언어학이라는 명칭만 공유했을 뿐, 유럽의 구조언어학과 미국의 구조언어학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관점은 물론, 방법론, 인식론 등의 차원에서 동상이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 위에서 당시 미국 행동주의의 태두였던 스키너와 불룸필드의 구조언어학의 경험주의를 비판하며 약관 25세에 미국 언어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청년 촘스키가 드디어 인문학의 과학화를 가능케 할 수 있는 발판을 놓았다. 그는 언어 능력의 생물학적 기제를 상정하고 생득설을 주장하며 언어에 대한 최초의 인지적 접근을 제시하면서 현대 인지과학 혁명의 기초를 수립했다.
촘스키의 등장과 그 후폭풍
그러나 화려했던 현대 언어학은 촘스키의 엄격한 과학주의로 인해, 언어학의 영토가 현격히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심리학과의 제도적 위상을 비교하면 이 같은 초라한 성적표는 분명히 부각된다. 2000년 초의 한 데이터에 의하면, 미국 전역에서 1년 동안 언어학개론을 수강하는 학생 수가 5만명인 데 비해, 심리학개론 수강자는 150만명이었다. 왜, 이렇게 언어학의 세는 오그라들었을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심리학을 비롯한 다른 사회과학이 1870~1920년대에 집중적인 제도화가 이뤄진 반면, 언어학의 제도적 공고화가 너무 늦게 진행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언어학과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50~1970년대였다. 두 번째는 촘스키 언어학의 치명적 원죄라 할 수 있다. 즉, 언어학의 연구 장에 대해 너무나 협소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언어학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가로막는 울타리를 쳤다는 점이다.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이 빅 텐트를 치며, 방대한 연구 영역을 개척한 반면, 현대 언어학을 이끈 생성언어학 분야에서 발표되는 최근 논문은, 언어학 전공자인 필자조차 단 한 페이지를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그 이론의 추상성과 난해함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졌다. 나아가 언어의 문학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차원을 철저하게 도외시함으로써 일반 대중과의 소통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현대 언어학은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언어와 관련한 그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라는 좌우명을 내걸었던 야콥슨의 보편적 정신을 망각한 채, 언어학 분야의 영토를 너무나 제한함으로써 그 제도적 힘은 미약해졌고, 밖을 향해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기보다는 갈수록 안으로 파고드는 자폐성을 노출하고 말았다. 그 결과, 당연히 언어학자가 개입해야 할 언어의 사회적·정치적 기능에 대한 공적 담론은 비언어학자 전공자들인 정치학자, 심리학자, 문학비평가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언어학의 쇄신 방안은 무엇인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팽배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무지의 현 상태는 그 역사적 전례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인간 언어에 대한 심오한 성찰의 부재는 곧 인간의 본성 이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인공지능 혁명과 탈근대화 시대에 언어학은 자신의 선명하고 강력한 정체성 수립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화려했던, 언어학의 역사를 다시 주창하며, 특히 언어학의 영토를 다시 ‘리세팅(resetting)’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언어학 지식을 효과적으로 생산, 산포시킬 수 있는 창발적인 제도들을 건설하고 연구와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21세기 벽두, 이제 세계는 언어의 디지털 시대에 진입했으며,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언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언어 연구의 장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학술 분야의 성장은 그것의 생산물의 양과 질에 달려 있다. 동시에, 그 생산물들은 다시 그 학술 분야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특정 학술 분야의 생산성과 성장은 선순환구조를 형성한다. 따라서 필자가 언어학의 부활을 위해 제안하는 인식론적 태도는 언어와 언어학에 대한 포용적 다원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앞서 언급한 야콥슨의 격언을 가슴에 새기며, 언어학자는 언어적 문제를 언어학의 텐트 밖으로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언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을 협업주체들로 맞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언어학의 부흥을 위해서는 교양과정, 학부 전공에 디지털 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사회적 관심과 수요를 반영한 매력적 과목들을 개발해 제시해야 한다. 한 마디로, 언어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다원주의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특히, 언어학은 지금까지 천착하지 않은, ‘큰 물음들’, 이를테면 언어의 기원과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와 동물 언어, 자동 번역 등의 문제를 도전적 과제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 시점에서 진행되는 언어 현상들에 주목해야 한다.
언어학의 쇄신과 부활을 위하여
20세기 전환기에 언어가 규제와 고정성의 시기였다면(1884~1928년에 완성된 뉴 옥스퍼드 사전을 상기할 것), 21세기는 탈표준화, 즉 새로운 언어 사용의 사용관례와 경쟁적 규범들의 창발을 목격할 것이다. 온라인의 세계에서 수미일관성과 정확성을 중시하는 기존의 언어 태도는 보다 완화될 것이고, 그 결과 상이한 변이적 철자법들이 수용될 것이며, 구두점들은 누락될 것이고, 소셜 미디어의 속도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축약어와 신조어를 만들어낼 것이며, 전자 언어의 새로운 기호와 상징들은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 언어학의 미래를 말할 때, 전산언어학을 생략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어의 수학적 모델화를 통해, 전산언어학은 인간이 의사소통할 때, 사용하는 일상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 다양한 문서 자료, 웹 페이지, 소셜 미디어의 비구조화된 정보의 기하급수적 성장은 전산언어학을 보다 긴급한 분야로 만들 것이다. 실제로, 인간-기계 커뮤니케이션은 전략적 통찰과 의사결정을 위해 사용 가능한 정보의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다. 전산언어학의 성공은 언어 해석과 프로그램 논리의 정확한 조합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의 성장은 전산언어학의 미래를 개선하기 위한 청신호다.
하지만, 자연어 처리과정은 복잡하다. 언어의 심층 분석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지적 컴퓨터 시스템을 실행시킬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시스템들은 인간언어의 이해 메커니즘을 복제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고유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온 영역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언어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의 신경 기계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NMT) 해결책은 업데이트된 언어 데이터의 방대한 분량을 팽창시킬 것이며, 언어학습을 한물 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NMT의 도움과 더불어, 개선된 인공지능의 궁극적 영역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자연어를 생성하고 번역함에 따라 우리는 의미와 맥락의 옮고 그름에 대해 보다 민감해질 것이다.
21세기 인공지능 혁명과 탈근대화 시대에 언어학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화려했던 언어학의 역사를 다시 주창하며,
특히 언어학의 영토를 다시 ‘리세팅(resetting)’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17세기의 고전주의 언어학이 창발된 근대 시기는 서양 언어의 근대화에 해당되며, 이른바 서양 인문학의 기본 삼학(Trivium) 즉, 문법, 수사학, 논리학의 전통을 계승했으며, 이 시대에 나온 가장 위대한 작품은 포르-루아얄 문법과 논리학을 꼽을 수 있다. 18세기에 라이프니츠를 비롯해 다수의 사상가들이 보편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루소와 콩디약, 헤르더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은 언어의 기원, 본질, 기능에 대해 치열한 성찰과 생산을 내놓으며, 20세기 못지않은 서양 언어 사상사의 가장 뜨거운 한 장을 장식했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의 사상적 자장 안에서, 인간 문명의 타락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 순수 언어의 뿌리 찾기와 민족어의 가치를 자각하고 방언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1850년부터 1916년(소쉬르의 유고작, 『일반언어학강의』 출간연도)은 역사언어학의 헤게모니 시대였으며, 그것을 추동시킨 강력한 엔진은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20세기 초반기에 유럽에서 태동한 구조언어학은, 레비-스트로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회과학과 인문학에 첨단모델을 제공했다. 미국의 구조언어학은 보아스, 사피어, 워프 등이 미국 인디언 언어들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목표로 삼았고, 철저하게 경험적인 관점을 취했으며, 언어 상대성 이론을 내놓았다. 구조언어학이라는 명칭만 공유했을 뿐, 유럽의 구조언어학과 미국의 구조언어학은 언어의 본질에 대한 관점은 물론, 방법론, 인식론 등의 차원에서 동상이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흐름 위에서 당시 미국 행동주의의 태두였던 스키너와 불룸필드의 구조언어학의 경험주의를 비판하며 약관 25세에 미국 언어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청년 촘스키가 드디어 인문학의 과학화를 가능케 할 수 있는 발판을 놓았다. 그는 언어 능력의 생물학적 기제를 상정하고 생득설을 주장하며 언어에 대한 최초의 인지적 접근을 제시하면서 현대 인지과학 혁명의 기초를 수립했다.
촘스키의 등장과 그 후폭풍
그러나 화려했던 현대 언어학은 촘스키의 엄격한 과학주의로 인해, 언어학의 영토가 현격히 줄어드는 역설적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심리학과의 제도적 위상을 비교하면 이 같은 초라한 성적표는 분명히 부각된다. 2000년 초의 한 데이터에 의하면, 미국 전역에서 1년 동안 언어학개론을 수강하는 학생 수가 5만명인 데 비해, 심리학개론 수강자는 150만명이었다. 왜, 이렇게 언어학의 세는 오그라들었을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심리학을 비롯한 다른 사회과학이 1870~1920년대에 집중적인 제도화가 이뤄진 반면, 언어학의 제도적 공고화가 너무 늦게 진행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언어학과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50~1970년대였다. 두 번째는 촘스키 언어학의 치명적 원죄라 할 수 있다. 즉, 언어학의 연구 장에 대해 너무나 협소한 정의를 내림으로써 언어학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가로막는 울타리를 쳤다는 점이다. 심리학, 인류학, 사회학 등이 빅 텐트를 치며, 방대한 연구 영역을 개척한 반면, 현대 언어학을 이끈 생성언어학 분야에서 발표되는 최근 논문은, 언어학 전공자인 필자조차 단 한 페이지를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그 이론의 추상성과 난해함으로 인해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졌다. 나아가 언어의 문학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경제적 차원을 철저하게 도외시함으로써 일반 대중과의 소통은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현대 언어학은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언어와 관련한 그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라는 좌우명을 내걸었던 야콥슨의 보편적 정신을 망각한 채, 언어학 분야의 영토를 너무나 제한함으로써 그 제도적 힘은 미약해졌고, 밖을 향해 새로운 영토를 확장하기보다는 갈수록 안으로 파고드는 자폐성을 노출하고 말았다. 그 결과, 당연히 언어학자가 개입해야 할 언어의 사회적·정치적 기능에 대한 공적 담론은 비언어학자 전공자들인 정치학자, 심리학자, 문학비평가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다면 언어학의 쇄신 방안은 무엇인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팽배하고 있는 언어에 대한 무지의 현 상태는 그 역사적 전례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인간 언어에 대한 심오한 성찰의 부재는 곧 인간의 본성 이해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인공지능 혁명과 탈근대화 시대에 언어학은 자신의 선명하고 강력한 정체성 수립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화려했던, 언어학의 역사를 다시 주창하며, 특히 언어학의 영토를 다시 ‘리세팅(resetting)’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언어학 지식을 효과적으로 생산, 산포시킬 수 있는 창발적인 제도들을 건설하고 연구와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21세기 벽두, 이제 세계는 언어의 디지털 시대에 진입했으며,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언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언어 연구의 장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학술 분야의 성장은 그것의 생산물의 양과 질에 달려 있다. 동시에, 그 생산물들은 다시 그 학술 분야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특정 학술 분야의 생산성과 성장은 선순환구조를 형성한다. 따라서 필자가 언어학의 부활을 위해 제안하는 인식론적 태도는 언어와 언어학에 대한 포용적 다원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앞서 언급한 야콥슨의 격언을 가슴에 새기며, 언어학자는 언어적 문제를 언어학의 텐트 밖으로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언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을 협업주체들로 맞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언어학의 부흥을 위해서는 교양과정, 학부 전공에 디지털 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사회적 관심과 수요를 반영한 매력적 과목들을 개발해 제시해야 한다. 한 마디로, 언어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다원주의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특히, 언어학은 지금까지 천착하지 않은, ‘큰 물음들’, 이를테면 언어의 기원과 커뮤니케이션의 진화와 동물 언어, 자동 번역 등의 문제를 도전적 과제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 시점에서 진행되는 언어 현상들에 주목해야 한다.
언어학의 쇄신과 부활을 위하여
20세기 전환기에 언어가 규제와 고정성의 시기였다면(1884~1928년에 완성된 뉴 옥스퍼드 사전을 상기할 것), 21세기는 탈표준화, 즉 새로운 언어 사용의 사용관례와 경쟁적 규범들의 창발을 목격할 것이다. 온라인의 세계에서 수미일관성과 정확성을 중시하는 기존의 언어 태도는 보다 완화될 것이고, 그 결과 상이한 변이적 철자법들이 수용될 것이며, 구두점들은 누락될 것이고, 소셜 미디어의 속도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축약어와 신조어를 만들어낼 것이며, 전자 언어의 새로운 기호와 상징들은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또한 21세기 언어학의 미래를 말할 때, 전산언어학을 생략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어의 수학적 모델화를 통해, 전산언어학은 인간이 의사소통할 때, 사용하는 일상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 다양한 문서 자료, 웹 페이지, 소셜 미디어의 비구조화된 정보의 기하급수적 성장은 전산언어학을 보다 긴급한 분야로 만들 것이다. 실제로, 인간-기계 커뮤니케이션은 전략적 통찰과 의사결정을 위해 사용 가능한 정보의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다. 전산언어학의 성공은 언어 해석과 프로그램 논리의 정확한 조합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의 성장은 전산언어학의 미래를 개선하기 위한 청신호다.
하지만, 자연어 처리과정은 복잡하다. 언어의 심층 분석을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들과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인지적 컴퓨터 시스템을 실행시킬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시스템들은 인간언어의 이해 메커니즘을 복제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고유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온 영역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언어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미래의 신경 기계 번역(Neural machine translation=NMT) 해결책은 업데이트된 언어 데이터의 방대한 분량을 팽창시킬 것이며, 언어학습을 한물 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 NMT의 도움과 더불어, 개선된 인공지능의 궁극적 영역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자연어를 생성하고 번역함에 따라 우리는 의미와 맥락의 옮고 그름에 대해 보다 민감해질 것이다.
21세기 인공지능 혁명과 탈근대화 시대에 언어학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화려했던 언어학의 역사를 다시 주창하며,
특히 언어학의 영토를 다시 ‘리세팅(resetting)’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